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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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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13. 2024

2024.05.13 (월)

사십 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딱 한 번 그만둘 생각을 한 일이 있다. 인사이동으로 만난 상사와 갈등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견뎌보려고 애썼고, 그런 마음을 포기하지 않도록 붙들어주시기를 기도했다. 어느 날 문득 이 문제가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포기하고 돌아가야 할 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모든 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사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이동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아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일 년 넘게 일주일에 최소 서너 번, 한 시간 반씩 운동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오래 규칙적으로 운동한 건 처음이다. 그런데도 올해 들어 부쩍 몸이 무겁다. 평지는 모르겠는데 조금만 비탈진 길을 걸어도 쉽게 숨이 찬다. 아내는 걷는데 내가 자꾸 발을 끈다며 걱정한다. 병원에서 당분간 운동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열흘 넘게 운동도 중단하고 치료도 받았지만 차이도 모르겠고 몸만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치료는 보름 만에 접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허리 디스크가 생긴 게 이십 년도 넘었는데 그동안 별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증상으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이제는 그런 느낌이 겉으로 드러나는지 어제 교회에서 만난 친구는 내가 몹시 힘들어 보인다고 걱정스러워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데 이게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인지 적응하고 살아야 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 마치 오래전에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 그게 극복해야 하는 일인지 포기하고 돌아서야 하는 일인지 구분하지 못했던 그 상황처럼.     


두어 달 전에 혈액검사를 하고서도 며칠 전 병원에서 결과 보러 오라고 연락할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요산 수치가 높다며, 이 정도면 언제든 통풍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니 전문의에게 진료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진료하기 전에 키와 몸무게를 재라는데, 글쎄 키가 2센티나 줄어들었다. 나이 들면 키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던 모양이다. 무척 놀랐거든.     


요즘 남성 평균 수명이 여든셋이 채 안 된다던데 대충 적응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했더니 친구가 그건 일찍 죽은 사람까지 포함해서 그런 것이라며 엉뚱한 소리 하지 말라고 면박을 준다. 친구 말대로 적응하고 사는 건 아직 기회가 있으니 일단 고쳐 가며 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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