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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27. 2024

2024.05.26 (일)

독서모임에서 몇 달째 <박완서 읽기>를 계속하고 있다. 시작할 무렵에는 박완서 선생의 소설을 전공하는 분이 참석해 작품 전체의 맥락을 함께 살필 수 있었고, 그분께 선생의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읽으면 좋을지 조언도 들었다. 책을 지식을 취하는 도구로 여기고 읽다 보니 아무래도 소설에는 손이 덜 가게 된다. 그런 내게 이번 <박완서 읽기>는 내게 여러 모로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


박완서 선생께서는 어머니와 동갑이시다. 어머니는 아직 정정하신데 선생께서 돌아가신 게 13년 전이니 너무 서둘러 떠나셨다. 사실 이번 모임을 하기까지 선생께서 어머니 또래시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머니와 나 사이 어디쯤이 아니실까 생각했다. 선생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등단하셨는데, 그랬으니 누님뻘 되려니 여겼을 것이다.


아무래도 소설 읽기에 익숙하지 않으니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의 배경이나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당시 모습에 더 관심을 두게 된다. 송은영 선생께서 한국 문학작품 백여 편에 묘사된 당시 사회상을 정리해서 서울이 생겨나는 과정을 복원해 낸 <서울 탄생기>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박완서 선생께서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서울은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역사가 되겠지만 내게는 아직도 기억으로 남아있는 게 대부분이다. 어제 읽은 <조그만 체험기>에도 그런 흔적이 무수히 많았다. 통행금지가 그랬고 서대문 구치소가 그랬다. 서울지검과 서울지법이 들어서 서초동을 영동 어디 산등성이라고 표현해놓은 것을 보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 소설 발표하기 3년 전인 1973년 겨울에 개청식을 한다는 뉴스들은 게 또렷이 기억나는데, 요즘 사람들이야 그 글 읽고 그게 어딘지 짐작이나 하겠나.


독서 모임은 워낙 탈북한 젊은이들을 위한 모임이었다고 했다. 아직도 절반은 북한에서 자란 젊은이들이다. 그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박완서 선생 소설의 배경이 자기들이 자란 환경과 너무 흡사해서 흥미롭다고 입을 모은다. 나는 소설의 배경이 내가 자란 시대여서 흥미로웠는데. 그러고 보면 남한과 북한은 한 세대 이상 차이가 나는 게 아닌가 싶다. 나하고 사십 년쯤 차이 나는 젊은이들이 어렸을 때 북한에서 겪은 시절과 내가 어렸을 때 이곳에서 겪은 시절이 비슷하다니 말이다.


다음번 모임부터는 아예 소설 배경에 초점을 맞춰 읽어볼까 싶다. 그러고 보면 시대소설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문학작품의 기능 말고도 시대를 박제해 역사로 남기는 기능 또한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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