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의 응급

입원실의 창가 자리

by 서인석

응급실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응급실을 경험해보지 않는다는게 당연한 일이 아니다. 나 또한 행복한 사람이고 싶었고, 내 주변이 행복하길 바랐다.



의료 대란과 관련된 기사가 나왔을 때, 언론과 여론은 응급실 전체가 보이는 뷰를 보여줬고, 그 안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군집 전체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개별의 환자들이다. 개별 환자들에게는 개별의 응급이 존재한다. 그 고통의 깊이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고, 환산한다고 하더라도 내 옆에 앉아있는 응급환자의 숫자가 나보다 높다고 한들 내 응급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응급실의 환자는 모두 각각의 응급환자들이다.



응급실에서 나는 무례했다. 침대를 배정받지 못했지만 대기 좌석에 멀쩡히 앉아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의자 두칸을 써서 누워야만 했다. 나로 인해 어떤 다른 개별의 응급환자는 의자 하나를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분 단위로 의식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계속 아픈 배가 왜 아픈지 몰랐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만큼 내가 언제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대형 병원의 응급실을 가면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감정, '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정말 많구나'. 환자와 보호자는 시야가 좁아진다. 내 몸가짐과 옷차림에는 어떤 관심도 갖지 않게 된다. 오로지 살아나고 싶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이다. 울음 소리와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는 응급환자가 아닌 사람도 응급하게 미쳐지기에 충분한 곳이다.


제 손가락을 들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과 거품을 물고 눈이 까 뒤집어져 있는 사람 중에 누가 응급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칼로 배를 찌르는 고통에 비명 지를 힘까지 잃어버렸던 나는 내가 더 응급으로 판단되길 바랄 뿐이었다.



이틀을 꼬박 의자에서 방치된 후 응급실의 의사를 만났을때, 의사는 아무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고통이 어느정도인지를 물었다. 나는 고통이 어느정도인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깊은 통증 와중에도 어리둥절했다. 의사는 '고통의 크기가 1부터 10까지 중에 어느정도인지'로 질문을 구체화했다. 나는 1이 뭐고 10이 뭐인지를 몰랐다. 의사는 다시 '칼에 찔린 것 같은 고통이면 10'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칼에 찔려보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


응급실의 의사는 실제로 1짜리 환자와 10짜리 환자를 하루에도 수십명씩을 봐야 할테다. 그러니까 의사에게 이 질문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질문이었을 것이다. 의사는 정말로 칼에 찔린 사람들도 적잖이 봤을테니.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개별의 환자고 적어도 아직 칼에 찔려본적이 없었다. 여러번 반복해 표현했듯 모든 환자는 환자 개개인일 뿐 1과 10을 모두 겪어본 경험을 모두가 갖고 있진 않을 테다.


의사가 맞이하는 군집과, 개개인일 뿐인 환자는, 의사가 제시한 구체적인 숫자 1과 10사이 어딘가 정도의 괴리를 유지한 채 소통해야 한다.



의사의 진료 후에도 침상은 허락되지 않는다. 의사의 진료와 다르게 침상의 갯수는 제한되어 있고, 누군가가 입원실로 이동하거나 나아져서 밖으로 걸어나가거나 혹은 장례식장으로 이동하지 않는 한, 규칙적으로 몇분 며칠을 기다린다고 배정되는 것이 아니다.


고통에 지친 나와 보호자는 결국 지나다니는 간호사와 의사를 붙잡고 협진가능한 병원으로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번도 가본적 없는 동네에 한번도 가 본적 없는 병원으로 가서 일주일 남짓한 입원기간을 보내게 된다.


일주일의 기간은 희미하다. 의사는 조치할 수 있는것이 없었고, 나와 부모님은 병에 대해 아는게 없었다. 링거의 주사만 떨어지는대로 바꾸고, 금식을 했다. 차도 없이 체중만 줄고 줄었다. 그렇게 그 병원에서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나와 가족은 드디어 이틀을 보냈던 응급실의 병원 입원실에 자리가 났다는 사실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표현이 있다. 응급실을 떠올리면 고개를 젓게 되는 표현이다. 그곳엔 지옥과 더 뜨거운 지옥만 존재했고, 그곳에서 벗어난 협진 병원 또한 다른 행정구역의 지옥이었다. 1분 1초는 천천히, 느리게 흘러갔다.


그렇게 '응급'이라는 꼬리표를 떼게 되는 건 입원실의 내 침대를 배정받게 된 이후이다. 그렇다고 그곳이 천국일리는 없다. 중증의 병을 가진 환자가 급한 상황을 맞이하고 병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응급실인지 아닌지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응급이 아닐 뿐인, 또 다른 지옥일 뿐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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