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와 중증

입원실의 창가 자리

by 서인석

'중증난치질환'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은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고, 그것은 원할때 떼어내거나 원할때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3자가 이 단어를 마주하면 마치 슬픈 표정을 지어보인다거나 숙연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이다.


내가 갖고 있는 질병에는 '중증난치질환'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일상인데, 이것은 사회속에서 모순을 야기하곤 한다. 교류하는 이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내 병을 알리면, 상대방은 어려워한다. 나에게 존재하는 일상이, 타인에게는 숙연한 무언가, 어려운 무언가로 다가간다.


정치인들이 동네방네 걸어놓은 사거리 플랫카드처럼 내 질병이 아무곳에서나 떠벌일 것은 아니겠지만, 때론 이것을 알려야만 하는 때가 있다. 꽁꽁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필요할 때는 내 병을 말하기에 꺼려하지 않는다. 가령 식사 약속을 잡는다거나, 병원 일정 때문에 다른 일정에 참석하지 못할 때 등.



젊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막연하다. 그러나 모두가 결국 죽게된다는 것은 안다. 구체적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가 자연사하길 바라고, 가급적 장수하길 바라며, 자연사하는 순간에 단지 '노환'으로 죽길 바란다. 그래서 혹여 죽음의 모습을 떠올리면 다들 편안한 침대에 누워 옅은 미소를 머금은채 눈을 감고 서서히 죽어가는 그림을 그린다.


대장에 중증난치질환, 그것도 특별한 의학의 진화가 없으면 평생 그 이름을 떼기 힘든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죽음의 모습은 이상일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내가 바랄 수 있는 내 죽음의 모습은 '대장암이 아니길' 바라는게 가장 현실적인 가정 중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만큼 '중증난치질환'의 진원지를 잘 관리해왔다는 증명일 테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반대 상황이 오히려 이상적인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종종 한다. 앞서 이야기한 '편안한 자연사'의 모습이 사실은 드문 편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죽음의 모습과 형태를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죽음을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왜 왔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 땅을 떠날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죽음의 모습이 예측가능하면 더 나은게 아닐까. 예를들어 담배 한대도 피우지 않는 내가, 갑자기 폐암으로 사망하게 된다면 나도, 주변인들도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어쩌면 억울할지 모른다. '억울'이라는 표현을 무료로 주어진 삶에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혹은 어떤 가족력도 없는 다른 신체 부위, 췌장이나 뇌, 심장 등의 질환이 갑자기 찾아와서 요절하게 된다면 그 또한 나도, 주변인들도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른다. 그래, 어쩌면 차라리 '중증난치질환'이 계속 잔존하고 있는 그 신체 부위의 고장으로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 예측이라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내가 가진 질병은 원래 '희귀난치질환'으로 분류되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희귀'대신 '중증'이 됐다. 희귀라는 단어보다 중증이라는 단어는 덜 희귀하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조금 나아진 기분이다. 환자란 그렇다. 이런 두음절 단어의 변경만으로도 기분이 좌지우지되곤 한다. 마치 정복가능한 질병이 되었다는 착각도 준다.


분류가 변경된 이유는 국내에서 그만큼 이 병이 '덜 희귀'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같은 환자가 늘어나서, 병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즐거워해야 하는지, 혹은 슬퍼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 분류가 바뀌었다고 내 삶에 바뀐건 없다. 그나마 환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의학의 발달과 환경의 변화로 인해 '중증'혹은 '난치'라는 단어가 다른 단어로 바뀔 가능성이 0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뭐가 좋을까. 이 병과 관련된 아픔으로 맞이하는 죽음과, 어떻게든 이 병과의 싸움은 이겨낸 상태에서 맞이하는 죽음. 모르겠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건강한 일상을 살고 있는 환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배부른 고민일지도. MBTI의 두번째 알파벳이 'N'인 사람이라 굳이 할 필요없는 상상을 '죽음'의 시점까지 굳이 굳이 길게 펼치는 것일지도. 그러나 다짐해야하는 것, 그리고 만성 질환을 가진 이 땅의 모든 사람이 공감할 것은 바로, 환자들에게는 'S'스러운 생활이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죽음보다 오늘, 내일의 건강.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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