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의 창가 자리
나는 먹는 것에 그다지 취미가 없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다. 유명 유튜버들 중 상당수가 먹방으로 인기를 끌고, 영향력도 상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해는 못한다. 타인이 먹는게 왜 좋을까, 뭐가 재밌을까 라는 생각.
그래서 식사시간은 나같은 사람에게 그저 '배고픔의 해소'일 뿐이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즐겁고, 맛없는 것을 먹으면 다음 끼니에 맛있는 것을 먹으면 된다- 이상의 깊이 있는 고찰은 없다.
병원에서의 시간 중 나는 정확히 44일을 금식했다.(물까지 못먹는 금식이다.) 어떤 처치를 하든 할 수 없든 간에 일단 대장 환자에게 금식은 기본적인 처치였다. 주사줄로 들어오는 최소한의 영양만 공급받았고, 내 체중은 결국 51킬로그램까지 찍게 된다.
금식이 길어지자, 병실에서 내 성향은 많이 뒤집혔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힘든 시기였지만, 여섯시 내고향 같은 프로가 병실 TV에 나오는 시간이면 단침을 삼키며 집중했다. 어제나 지난주에 TV나 유튜브에서 본 맛집은 기억나지 않고, 오늘 점심에 먹은 끼니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시기에 병실 TV로 본 음식들은 기억날 정도다.
누군가가 숟가락을 들고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면서 경이로웠다. 그 감정이 뭔지 아직 알 수 없다. 그저 부러움이었을까, 아니면 맛에 대한 공감이었을까. 입에 고이는 침과 아랫배의 칼로 찌르는 통증은 전혀 상반된 무언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혀에 어떤 것이라도 대어보고 싶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먹는 일은 사경을 헤매는 통증 속에서도 본능에 속하는 무언가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글들에 묻어있는 여러 과정과 시기를 지나보낸 뒤, 결국 물이 허락되고, 또 죽이 허락되는데 이르렀다. 이윽고 식사까지 먹는 과정에 이르렀다. 그렇게 환자복을 벗고 결국에는 병실 밖으로 나가게 되고.
퇴원 후 나는 다시 나로 돌아왔다. 먹는 것은 먹는 것일 뿐. 맛들어지게 엄청난 양을 먹는 쯔양 님이나 먹는 표현이 기가 막힌 이영자 님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구나', '저렇게 맛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까지의 생각. 그리고 거기서 딱 멈춘다. '나도 저렇게 구체적인 맛있음을 느끼고 싶다'까지 가지 않는다. 배가 차면 그만인 것, 그것이 다시 돌아온 음식에 대한 나의 자세이다.
음식이 누군가에겐 큰 재미이고 취미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맛집에 줄을 서고 몇시간까지 기다리기도 할 테다. 병실의 나 또한 뭐라도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입에 대어보고 싶었다.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던 거의 유일한 기간, 병원에 누워서 보냈던 기간이다.
그래서 나는 먹는 것에 다시 무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체성을 갈망하는 마음은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 먹는 재미가 없어도, 안 아프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