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사실은 삶 전체가 모험이었던 것을

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by 서인석

헝가리에서 마지막 일주일은 1년 중 가장 바빴던 기억이다.

지난 1년의 일상처럼 어학원을 가거나, 고프로와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촬영하러 가거나,

프로젝트를 기획한다거나, 약속을 잡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오히려 가장 시간에 쪼들렸다.


1년 동안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한 행정적 절차를 일주일 동안 끝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이 일주일을 바쁘게 보냈던 더 큰 이유는 ‘이 생활이 끝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타지에서의 생활을 정리했다.

계약된 집을 처분하고, 보증금을 돌려 받았다. 은행업무와 자동차 계약을 정리했다.

짐들을 모두 패킹해서 일주일동안 머물 호텔 투숙을 계약했다.

어학원과의 계약을 정리했고, 회사에 제출해야 되는 사용 내역서 영수증 1년치를 정리했다.


헝가리에서 새로 생긴 인연들과의 인사도 중요한 일정이었다.

현지 친구들과의 약속을 틈틈히 소화했다.

또 한국에서부터 가깝게 지내온 ‘신한GYC 프로그램’ 친구들과의 인사도 나누었다.

특히 가깝게 지낸 재민, 채현, 민정과는 마지막 출국 날까지도 연락하며

부다페스트에서의 건승을 기원했다.


20250304_193321_1.jpg 1년 동안 내 헝가리어를 가장 오래 들어준 아꼬시 선생님

1년 동안 헝가리어 선생님이었던 아꼬시와의 인사,

여러 행사들을 통해 알게된 밀라와 커터,

한국인 패치가 120% 되어있는 베로니카(한국어가 너무 능숙해서 ‘배론희 씨’라고 부르곤 했다.)

헝가리 생활 후반기의 언어 선생님이었던 이사벨라 등등.

그리고 헝가리 한국대사관의 서기관님을 비롯하여

주헝가리 한국대사님과도 공식 석식 자리를 통해 감사히 작별을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1년 동안, 어쩌면 내가 전혀 몰랐을지도 모르는 나라, 전혀 몰랐을지도 모르는 도시에서 살며 많은 인연들이 생겼다. 하나하나 다 한번에 떠올리기에는 빠트리는 사람들이 있을만큼.


20250304_194100.jpg 베로니카와의 마지막 인사는 정말 우연히 이루어져서 더 반가웠고 더 아쉬웠다. 약속없이 우연히 길에서 만났고, 그래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 2025년 3월 6일.

1년치의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현지 친구들 중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이 된 번더와 비키가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짐을 같이 옮겨주기 위해 내 차(곧 공항에서 반납할)로 함께 이동했다.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 마음은, 모든 것이 잘 정리되었는지, 빠진 것은 없는지 때문에 복잡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거리를 마지막으로 운전한다는 생각 때문에 좀 착잡하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그 무게감은 실로 달라진다는 것을 체감하며,

낡았지만 클래식한 부다페스트 거리 한 블록 한 블록을

마음 한 켠 한 켠에 쌓아가며 엑셀을 밟았다.


1741576773746.jpg 현지 계좌와 카드 정리를 도와주고 있는 번더


뒷자리에 앉은 비키는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함께 즐겼던 시간들을 복기했다.

조수석의 번더는 훌쩍이고 있었다.

자신이 동경하는 나라에서 온 친구와 가까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체감상 금방 떠나는 것 같아 아쉬운 모양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번더가 눈물을 닦을 시간따윈 없었다.

1년치 짐을 차에서 내려야 했고, 차량 반납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또, 1년치 짐을 주차장에서 공항까지 옮겨야 했다.


사실 나는 출국을 혼자 하고 싶었다.

원래 모든 일을 혼자 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고, 또 그게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번더, 비키와도 작별인사를 출국 전날 정도에 할 참이었다.

그러나 번더는 완강했고, 자신의 모든 수업을 한달 전부터 나의 출국 일정에 맞춰 변경해 두었더라.

비키도 마찬가지였다.

가녀린 헝가리 여성들이, 한국인 아저씨의 1년치 짐 옮기기를 도와주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미 두 사람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배웅 계획을 세워 놓은 상태였다.


20250306_162137.jpg 모든 출국 절차를 도와준 후 뿌듯한 표정의 비키와 번더


그런데 사실 한달치도 아니고 1년치 짐이다.

큰 이민가방 하나와 두 거대한 캐리어를 혼자 수월하게 옮길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번더와 비키는 씩씩하게 하나씩의 짐을 맡았고,

나는 이민가방만을 끌고 가면 되었다.

번더와 비키는 “거 봐라. 우리가 안왔으면 어쩔 뻔했냐.”며

적어도 10분은 넘게 공항 수속대로 가는 동안 잔소리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맞았고, 도움된다는 사실에 매우 뿌듯해 보였다.




공항에서 있었던 일들은 모두 우당탕탕이었다.

렌트카 보증금 입금 절차가 더뎠고, 카드에도 여러 제한이 있었다.

또 짐을 보낼 때는 무게 초과가 떠서 다시 정리해야 했다.

이 모든 절차는 번더와 비키가 함께 도와준 일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끝내고 출국장을 나가기 전, 둘과 인사를 나누었다.


라운지에 털썩 앉았을 때,

그 자리에서 재민의 작별 메시지를 받았을 때,

영상통화로 민정에게 잘 돌아가고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들었을 때,

비로소 다른 잡념은 들지 않고

‘이제 정말 부다페스트에서의 1년이 정리되는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마일리지를 탈탈 털어 인생 처음으로 비즈니스를 탑승했다.

그래서 돌아오는 비행기는 복잡스럽거나 혼란스럽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좌석에 널찍하게 앉아 그동안의 사진들을 정리하고,

노트에 메모해 놓은 내용들을 체크할 수 있었다.


20250306_192318.jpg 인생 첫 비즈니스클래스에 앉은 후 '내가 이걸 언제 다시 타겠어'라는 생각으로 사진을 남기고 있다.


그렇게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헝가리에서의 생활을 잘 정리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지난 일주일치의 잠을 한꺼번에 맞이한듯 잠들어버렸다.


그러다가 잠에서 슬며시 깼다.

그때 문득 ‘모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1년동안 나는 모험을 했구나.

하루하루, 일주일 또 일주일, 한달 한달,

그렇게 모험으로 바쁘게 다른 세상에서의 일상을 채웠구나.




10시간 정도 비행이 지나자 좌석 앞 화면의 지도는 한반도에 가깝게 붙어있었다.

비행기의 고도는 빠르게 낮아졌다.

그러자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아, 헝가리여서 모험이었던 것이 아니구나.

이제 다시 원래 살던 터전에서 모험같은 일상을 채워나가겠구나.

원래부터 삶이란 건 모험이었구나.




부다페스트 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인천공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활주로에 바퀴가 가까워지고 이윽고 땅에 닿으며 큰 마찰음이 들렸다.

기지개를 켜며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감은 눈 앞에 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