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내렸던 비는 금세 굵어졌다

둥글게 살아가고 싶은 Z는 그저 웃었다.

by 김슬지

뭔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학교에서 임상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유난히 기분은 꿀꿀했고 또 비가 와서 더욱 더 그런 감정이었다. 뒤쳐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글을 써 온 인생이 나름 길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은 어렸을 적이라고 말해 왔을 것이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어린이집을 다니고, 학교를 들어가면서도 글을 종종 썼었다. 그래왔던 내가 글을 써 오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져 왔다. 내가 쓴 보고서는 아무 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건가? 내가 한 것 중에서 가장 자신감이 넘치고 특기라고 하면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었던 나였는데. 계속해서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 건가. 소설과 보고서 쓰기는 다른 건가. 이 전까지는 나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은 주관적인 생각이 담겨 있고 내가 생각하는 주제가 들어있고 의미도, 상징도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보고서와는 다르지만 말이다. 보고서는 내가 보는 사람의 인생을 보고 객관적으로 글을 써 내려 가는 것이다. 의미도 상징도 주제도 뭐도 없지만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초기평가를 썼고 계획서를 써야 하는데 교수님은 내게 초평만을 다시 고쳐 보라는 식으로 말하였다. 다들 비슷한 내용과 글이었는데. 내 글이 그렇게 별로였나. 아니면 나를 싫어하셔서 그런 건가. 그 날은 유독 그렇게 느낀 감정이었다. 모든 애들한테는 초평은 그냥 됐고 계획서를 쓰자 이런 식으로 넘어 갔는데. 수업이 끝난 후에는 결국 모두 다 계획서를 써서 제출하라곤 했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는 것이었는데 혼자서 찝찝하고 열등감을 가졌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보니 이슬비 같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서 빠르게 걸었고 나름 맞을만한 비여서 괜찮았다. 정류장은 코앞이었고 차도 금방 와서 고생없이 버스로 올라 탔다. 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봤다. 날씨가 흐렸다. 우산을 펼쳐서 쓰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창문에는 사선으로 내려 떨어진 빗방울 자국이 묻어나 있었다.

동네로 와서 버스에서 내렸다. 이제 한 걸음을 떼 나아가려는데 조금씩 내렸던 비가 금세 굵어졌다.

비가 오니 뛰어서 가야 하는데 온 몸이 축 쳐져서 그냥 걸어갔다.

한번은 가족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실패자 인생인 것 같다고. 내게는 혈육이 있다. 그와 비교가 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부모님과 혈육은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현역으로 문창과를 입시하고 재수를 했을 때 말한 것이었다. 뒤쳐지고 있다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건 혈육이 나보다 더 여유롭고 행복해보인다는 건가. 나보다 오래 살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사랑을 좀 더 받았다는 건가. 나와 같은 동갑인 애들이 나 먼저 취업한다는 건가. 뒤쳐진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잘하고 싶은 마음도 의지도 모두가 다 가득한데 내 몸은 그에 비해 따라오고 있지 않다. 뭔가 허무하다.
그냥 그런 것이다. 열등감이고, 그냥 자격지심인 거다. 그냥 그 사람들이 부러워서 그런 것이다. 나도 그들과 함께 걸어 가고 싶은 것이었다.

비는 내 옷으로 들어와 스며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우산을 펼쳐서 써 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걸어 갔다.

빗물에 닿아서 머리카락이 축축해졌다. 이대로 가지는 못해 주머니 속에 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혈육이 어디선가에서 집에 일찍 왔다는 것을 기억해 전화를 걸었다. 귀에 갖다 댄 후 받기를 기다렸다. 신호음이 갔다. 길게 이어졌다. 아직 안 온 건가. 아니면 자고 있는 건가. 그래서 못 받는 건가. 이런 저런 생각에 가고 있는 신호가 끊겼다.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그대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의식이 됐다. 그렇다. 그냥 그런 거였다. 우산을 가져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그렇게 묵묵히 빗 속에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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