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문학기행, 여덟번째 이야기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상대를 잘 알지 못한다. 콩깍지가 씌었으니 일단 다 좋아 보이기 마련이다. 어차피 누군가를 완벽히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지만, 처음에는 상대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가 사귀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경우가 많다.
당장 계나만 해도 큰 결심을 하고 호주로 떠난 것이지만, 정작 호주가 어디에 있는지 주변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는 찾아보지 않았던 듯하다. 인도네시아인 남자친구 리키를 만나기 전까지는 호주가 인도네시아랑 가까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리키는 자카르타에서 온 부잣집 넷째 아들인데, 호주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나라 중 가장 가까운 나라라서 온 거라고 했다.
“인도네시아가 호주랑 가까워?”
내 질문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떡 벌리는 시늉만 하더군. 나중에 지도를 봤더니 호주와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가깝더라고.(p.86-87)
호주랑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물론 인도네시아랑 호주 둘 다 꽤 큰 나라니까, 어느 도시에서 어느 도시로 가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하지만 책에서 지명이와 함께 여행을 갔던 발리부터 호주 북부의 다윈이라는 도시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어쩐지 발리에 호주 분위기의 카페가 많더라니.
어찌보면 우리는 호주를 잘 알거나 호주 사람들의 시각을 가질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당장 지도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지도를 떠올리면 북쪽이 위에 있는 지도를 주로 상상하지만,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는 남극이 위쪽에 있는 지도도 많이 쓰인다고 한다. 세계를 보는 방식부터 완전히 뒤집어져 있는 거다.
‘지도’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메르카토르 도법이라는 방식으로 그려진 지도다. 이 방법은 네덜란드의 지도학자 메르카토르가 1569년에 고안했다고 한다. 위도와 경도를 안다면 그 위치를 지도에서 좌표로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지도 위에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그릴 수 있어서, 당시 정확한 지도가 절실했던 항해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기 있는 지도지만, 이 지도에는 문제가 있다. 적도를 중심으로 구형의 지구를 평면으로 펼쳐내다 보니 면적의 왜곡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극지방으로 갈수록 면적이 심하게 확대되기 때문에, 적도에서 멀면 멀수록 더 크게 그려졌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지도 왜곡의 피해자라면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우리나라를 ‘동방의 작은 나라’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작지만은 않다. 정확한 크기를 재보면, 한반도 전체가 220,877km2으로 242,900km2인 영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영국이 더 북쪽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커 보이는 것뿐이다. 그래도 그동안 속아왔다고 억울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진짜 억울한 나라나 대륙은 따로 있으니까. 당장 아프리카 대륙은 대서양 북쪽에 있는 그린란드랑 크기가 비슷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아프리카가 그린란드보다 14배 정도 더 크다. 멕시코도 알래스카 지역보다 더 작아보이지만, 크기를 계산해보면 알래스카의 3배에 달한다. 남미 지역 전체도 유럽보다 작아 보이지만, 사실 남미가 유럽 전체보다 두 배나 더 크다.
이런 문제점을 비판하며 페터스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도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엄청나게 큰데 왜 맨날 작게 그리냐!’라는 억울한 마음에 새로운 도법을 제안한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독일 사람이라고 한다. 페터스의 지도도 둥근 지구를 평면에 그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왜곡은 있지만, 각 대륙의 면적은 더 정확하게 반영되었다. 이 지도를 처음 보면 아프리카 대륙이 이렇게 크냐고 놀라게 된다. 브라질도 거의 미국만큼 크다. 유럽 대부분 나라는 쥐똥만 하고, 흔히 크다고 생각하는 러시아는 생각보다 작다. 우리가 주로 쓰던 지도가 그만큼 북반구, 서구, 유럽 중심이었던 거다.
계나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지도에서 호주를 찾아봤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하늘을 보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 지구 반대편의 거대한 섬나라로 떠났다. 그 뒤집어진 세상에서는 계나의 삶이 달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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