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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22. 2023

여진의 공포에 싸인 스페이스 캠프

이스탄불에서 마흔셋


2.20(월) 20:04분 하타이 주 데프네 지역에서 진도 6.4의 지진이, 3분 후인 20:07 하타이 주 사만다 지역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추가로 발생했다. 현재까지 정확한 피해 규모가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하타이 광역시장은 21:00경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추가 지진으로 붕괴 건물이 발생하였으며, 잔해에 깔린 국민들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고 주한 이스탄불 대사관에서 인근지역을 방문 또는 거주 중인 우리 국민들에게 즉시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가 모두 두려워하는 일이 지금 같은 시간, 튀르키에 남동부에서 꽤 큰 강도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미 큰 지진이 발생했지만 여진의 공포는 우리를 더욱 겁에 질리게 했다.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1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제 남동부 여진 이후의 대지진의 순서가 이스탄불이 될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하다. 지질학자들에서 무지한 일반인들까지 각자의 소식통에 따라 이스탄불 지진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터키 티브이 방송에서는 매일같이 저명한 지질학자들의 분석과 예측이 쏟아져 나오고, 심하게는 몇 달 후에 바로 이스탄불에도 지진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남동부 대지진 이후 죽음의 그림자가 온 나라를 뒤덮은 기분이었다. 여행이나 침목 도모 행사와 같이 신나고 즐거운 이벤트는 모두 취소되고 있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우리는 이 나라에 세 들어 산 사람들이니, 더욱 그들의 슬픔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우리끼리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일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이 와중에 아들이 이즈미르로 스페이스 캠프를 갔다.

https://youtu.be/ymrbKz-yMj8

미국의 나사에서 운영하는 스페이스 캠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스페이스 캠프가 튀르키예의 이즈미르에 있다. 이즈미르는 1999년에 대지진으로 1만5천명이 사망했고 2020년에도 지진 발생했던 지역으로 지진 발생 빈도도 높고 피해도 컸던 곳이다.


남동부 대지진이 나기 전에 이미 아들이 다니는 학교와 계약을 마친 여행이어서 그냥 보내려고 했는데, 막상 이 상황에 아이와 떨어지려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튀르키예 살면서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이고 아들에게 우주라는 공간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프로그램 참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데 이 대지진에 신음하는 튀르키예에서 하필 여진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는 시점에 수학여행이라니. 세월호의 비애 같은 안 좋은 수학여행의 잔상들이 내 머릿속에 난무하며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에 시달려서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아들의 캠프 배웅 때문에 일찍 일어난 탓도 있겠지만 불안한 마음의 상태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아침내 몸과 마음이 피로했다. 재난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의 온 시간을 점령한 듯, 여진의 공포에 아이와의 불리 불안까지 겹쳐서 내 마음에도 지진이 지나간듯 평정심에 균열이 생겼다.


타국살이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늘 존재했다. 사소한 언어 소통의 문제부터 코로나나 지진 같이 큰 사건들까지 나는 힘겨운 일들에 집중하기보다는 해외 생활에서 누리 수 있는 새로운 경험과 도전에 감사했기 때문에 그때그때 적절히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2년여간의 코로나 기간도 살이 쪘다 빼졌다를 반복하며 정상 체중의 범위를 왔다 갔다 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것은 순환하고 회복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에 대지진이라는 재난을 맞닥뜨리고 나니, 팬데믹 대역병의 시대가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시 땅이 흔들리는 대재난의 시대가 왔다는 생각에 기운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여기서, 나는 세상살이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명확한지를 철저히 자각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이 저절로 생긴다. 온갖 컨탠츠가 난무하는 유튜브나 희로애락애오욕의 감정 속으로 나를 빨려 들어가게 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넷플릭스도, 그저 위로나 감정적인 해소로는 해결되지 않는 나의 생의 질문들. 나의 이 질문에 누가? 무엇이? 답을 줄 수 있을까?


요즘 이스탄불에서 한인교회 목장 사람들과 함께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보일 것이다. 대지진 이후 황폐해진 마음을 다 잡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 매일 아침 경건해지기로 했던것 같다. 삶의 고난과 역경은 사람들을 저절로 한마음이 되게 하는 걸까?


사실 우리는 만나서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는 사람들이었다. '예배는 교회에서, 우리의 침목은 핫플레이스에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교회 목장 사람들은 신자의 경건함을 대신해 일상의 즐거움과 활기를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진이 난 이후 우리의 마음이 저절로 모아졌다. 각자 집에서 이불과 담요를 찾고, 두껍고 잘 안 입는 옷을 정리해서 교회로 가지고 왔다. 생활비를 쪼개서 기부금을 모으고 구호 물품 수송을 위한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 각자가 할 일을 찾고 소유한 것을 나누고 튀르키예의 이재민들의 고통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함께 하루에 한번씩 성경을 읽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카톡 말씀 릴레이를 시작했다.


나는 바울의 이야기인 로마서를 읽고 있다. 사도 바울은 바리새파에 속하는 유대인 랍비로 유대교식 모세의 전통과 토라를 중시했던 인물이다. 그가 사울이라고 불리던 시절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경계하던 자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받고 예수님에 의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세워졌다.


로마에 여러 지역을 돌며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초대 교회를 세웠고 이방인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고 교회를 연합하기 위한 서신을 써서 그리스도인들을 규합했다. 이 서신들이 이후에 로마서로 편찬되었다. 로마서는 신약 성경에서 장문의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고 매우 중요한데, 나는 바울이 제도화 되기 이전의 초기 기독교의 모습, 예수님의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로마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교훈이 될 만하고 사유할 수 있는 구절도 많기 때문에 읽어 볼 것을 권할 수 있는 신약성경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처럼 경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이 지체들이 다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따라 우리가 받은 선물이 각각 다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수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  그 선물이 예언이라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하고 섬기는 일이라면 봉사함으로, 교사는 잘 가르침으로 하십시오. 권면하는 사람은 격려의 말로, 남을 구제하는 사람은 후하게, 지도자는 열심히,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쁨으로 하십시오. 사랑은 순수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로 12:4-9)


우리가 각자 맡은 바를 최선을 다하고 그 일을 행함에 선함과 사랑이 함께 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오늘도 여진의 공포 속에 있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해와 달을 맞이한다. 아들도 이즈미르에 스페이스 캠프에서 나와 같은 해와 달을 보고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 또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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