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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Aug 13. 2016

다시,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걷다

일본 가마쿠라, 에노시마 배경여행



요코하마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1년을 지내는 동안, 가까이에 있는 가마쿠라엔 서너 번 다녀온 것 같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난해. 가마쿠라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든 것은 느닷없이 빠져버린 만화책 때문이었다.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시리즈.




웃 기 게  생 긴  모 양 에  비 하 여

가마쿠라에 살고 있는 세 자매의 집에서 이복동생 스즈가 함께 살기로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마쿠라 시민병원에서 일하는 첫째 언니 사치, 신용금고에 다니는 술꾼 요시노는 둘째, 스포츠용품점에서 일하는 셋째 치카, 그리고 스즈는 축구를 좋아한다. 일을 나가고 학교에 다니고, 연애를 하고, 때때로 넷이 함께 저녁을 먹고……. 소소하고 평범한 삶이 평화롭게 담겨 있다. 만화 속 풍경들은 대부분 가마쿠라의 실제 장소를 모델로 한다.  


 

도쿄 근교에 위치한 가마쿠라 일대는 에노덴 전차만 익숙해지면 큰 불편함 없이 여행할 수 있다. 에노덴은 후지사와에서 가마쿠라까지 약 10km의 구간을 달리는 작은 전차. 마을 구석구석을 지난다. '노리 오리군'이라고 하여 하루 600엔에 무제한으로 타고 내릴 수 있는 승차권을 사서 여행했다.




황금 같은 휴가를 얻어 훌쩍 떠난 가마쿠라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장 먼저 향한 곳. 축구선수를 꿈꾸던 스즈의 친구 유야가 자살시도를 하는 줄 오해한 고료 신사 御霊神社 였다. 신사의 바로 앞으로 에노덴 전차가 지나가는데, 나의 부족한 사진 실력으론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신사에서 바닷가 쪽으로 걸어 나오니 스즈와 친구 후타가 즐겨 먹는 후쿠멘 만주집이 있다. 나도 하나 사서 먹어본다. 웃기게 생긴 모양에 비하여 맛은 비교적 평범하다.



출 세 운 도  따 라 와  줬 을 까

가마쿠라 곳곳엔 고민가 古民家 가 남아있어 풍취가 감돈다. 특별히 어디로 향하지 않아도 바다와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걷는 것만으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만화에서 큰 언니 사치와 스즈, 두 자매가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속 찻집을 찾아가고자 와다즈카역에 내렸다. 지도상 찻집은 분명 철로변에 있는 데 돌고 돌아도 도저히 입구를 만나기 어려웠다. 30-40분을 헤맨 끝에 선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


 




만화 속에서 사치가 먹은 안마메칸은 떡 두 개와 앙꼬, 한천과 조린 완두콩에 흑설탕 조청인 쿠로미츠를 끼얹어 먹는 디저트였다. 달달한 것들을 입에 가득 넣으니 오랜 시간을 헤매며 쌓아온 피로가 녹아내렸다. 딴딴하게 알이 꽉 차있는 콩은 식감이 좋았고, 극도로 단 음식과 곁들여 나온 씁쓸한 우롱차가 참 잘 어울렸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날씨가 조금 궃기 시작해서 망설이다 사스케 신사에 가보기로 했다. 스즈와 셋째 언니 치카가 ‘둘째 언니 요시노의 남자 친구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는 의심에 뒤를 밟으며 따라간 곳.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源頼朝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사스케이나리신사 佐助稲荷神社는 출세운, 사업운이 있는 신사로 유명하다. 실은 이 여행은 이직을 앞두고 남은 연차를 소진하는 휴가였다. 회사를 옮기기 전 가게 되었으니 절묘하게 잘 찾아갔던 것인가?



숲이 우거진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신사는 혼자 들어가기엔 좀 으스스했다. 식은땀을 잔뜩 뿜어 내며 조금씩 올라가다가 신사에 다다랐을 땐. 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보는 여우 동상들 때문에 놀라 자지러질 뻔했다. 이들은 신의 심부름꾼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와주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작 누군가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경내를 간단히 둘러보고 황급히 뛰어내려 갔다.




과연 출세운도 따라와 줬을 것인가......?


 


 

같 이  살 아 도  다 르 다
대단한 출세까진 못했지만, 그럭저럭 큰 실수 없이 1년을 보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같은 호텔을 예약했다. 작년에도 두 밤을 보낸 바닷마을에서 올해는 한 달 정도 늦은 시기에 또다시 사흘을 머물기로 한 것이다. 그 사이에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영화로도 개봉하였다.





작년엔 사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겠다며 찾아간 여행이었다. 무리해서 바다가 보이는 방을 예약하고 넓은 공간을 굴러다니는 사치를 부렸다. 하지만 푹 쉬겠다고 해놓곤 전혀 쉬지 못했다.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뿐 아니라 드라마 ‘최후로부터 두 번째 사랑’, ‘비브리아 고서당의 사건 수첩’ 등... 여러 작품 속 명소를 매일 두세 곳씩 걸어 다녔고, 방에 돌아갔을 땐 탱탱 부은 발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었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출처 : Daum 영화)



올해는 같은 장소를 다시 간 덕에 작년보다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에노덴 전차를 타고 내리는 일도, 골목길 구석구석이 모두 익숙했다. 일정은 작년에 가보지 못한 두어 개의 명소만 가보면 됐다.


가마쿠라로 이사와 입단한 축구부에서 스즈는 미호, 유야, 마사, 후타 등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 축구부의 에이스 유야는 갑작스러운 병을 얻으며 다리를 절단하게 되는데...



재활치료를 받은 후 축구부에 복귀한 유야가 어느 날 등교를 하지 않았다. 스즈와 후타는 유야가 아버지와 낚시를 하러 자주 갔다던 에노시마로 향한다. 전에도 느꼈는데 이곳 에노시마 주변 바닷마을은 서핑을 하는 사람도 많고 가게들의 분위기도 특색 있어 어딘지 모르게 서양의 느낌이 난다. 실제로 서양인을 자주 마주치게 되고.





작년엔 에노시마를 코앞에 두고 있었으면서 정작 그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 했다. 올해는 에노시마 안을 구경하기도 했고, 주변 바닷가에 한참을 앉아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일본 후지사와시에 있는 에노시마 江ノ島는 면적 0.38 km²둘레 4㎞의 작은 섬이다. 해발고도는 60m 정도로, 에노시마 다리가 섬을 육지와 연결한다. 들어가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굉장하다 싶은 곳까진 아니었다. 작은 섬에 서양식 정원도 있고 타워도 있고 신사도 있고 야경도 볼 수 있고, 잔멸치 덮밥도 맛있고. 모든 것이 아기자기하게 갖춰있다.


도쿄에서 전차로 쉽게 올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에 이 정도로 즐길만한 섬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젊은 커플이 참 많았다.




타워도 신사도 정원도 작지만 순수한 매력이 넘쳤다. 모두 제 역할을 착실히 하고 있었으니까. 타워 옆으로 노을이 늘어선 하늘엔 후지산이 보였고, 저물어가는 바닷마을의 여유를 내려다보았다. 이 지역의 신기한 점 중 또 하나는 서양 인구만큼이나 강아지 인구? (견구?) 도 많다는 사실이다. 애견 백화점도 크게 하나 있다.



바닷가에 두 마리의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부부가 있었다. 회색빛이 도는 강아지는 신이 나서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수십 차례. 다른 검정 강아지는 소심하게 주인 옆에 얌전히 서서 회색 강아지를 쳐다보고 있다.


같이 살아도 참 다르구나.


그리고 월요일 오전에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엄청 부러워졌다.

(나도 쉬고 있으면서.)



INFORMATION

- 고료 신사 (御霊神社)

주소 :  神奈川県鎌倉市坂ノ下4-9

가는 법 : 하세 역에서 도보로 6분


- 치카라모치야 (力餅家)

주소 : 神奈川県鎌倉市坂ノ下18-18

가는 법 : 하세 역에서 도보로 4

영업시간 : 9:00 ~ 18:00


- 무신안 (無心庵)

주소 : 神奈川県鎌倉市由比ガ浜3-2-13

가는 법 : 와다즈카역에서 내려 선로 따라 2분


- 사스케이나리신사 (佐助稲荷神社)

 주소 : 神奈川県鎌倉市佐助 2-22-12

가는 법 : 가마쿠라 역에서 도보로 20분 (1.5km)


- 에노시마 전망 등대
- 가는 법 : 에노덴 전차 에노시마 역에서 도보로 25분
- 위치 : 〒251-0036 神奈川県藤沢市江の島2丁目3番
- 영업시간 : 9:00~20:00 (연중무휴)
- 입장료 : 어른 500엔, 어린이 250엔



(바닷마을 다이어리 여행지도가 필요하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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