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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Jan 24. 2024

40대는 어디서 옷을 사야 할까.

우리 집에는 옷에 관해 정반대의 생각을 지닌 두 사람이 산다.

나는 유행을 타지 않는 무난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쇼핑에는 재능이 없다. 싼 가격만 보고 옷을 샀다가 낭패를 보고, 정작 입을 옷이 없다고 푸념만 한다. 우유부단한 나와 달리 남편은 옷에 대해서 주관이 확실하다. 타인의 시선은 중요치 않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옷을 산다. 유행에 민감하고, 쇼핑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옷을 좋아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싸고 좋은 옷을 잘 찾아낸다.      


 옷에 관해 우리 두 사람이 유일하게 합의하는 지점은 옷은 입어보고 사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우리는 백화점에는 가지 않는다. 명품은 안(못) 산다. 우리의 쇼핑에서 최우선 순위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결국 우리가 향하는 곳은 아울렛이다.


남편이 옷을 자주 사다 보니, 알게 된 것은 여자 옷보다 남자 옷이 더 싸다는 사실이다. 40대 남자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쇼핑의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나는 집단이다. 아이가 있는 집들은 아이가 먼저다. 그러다 보니 남편, 아빠 옷까지 살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 것 같다. 아이가 없는 우리는 이런 면에선 아이 있는 집과 다른 상황을 만난다. 아이가 있는 평범한 아빠들보다는 좀 더 옷을 살 수 있다. 더구나 남편은 평범한 체형을 무사히 유지 중이라 매대에서 싼 가격에 옷을 산다.      


옷 좋아하는 남편이 얼마 전 아울렛에 갔다 아쉬운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브랜드 매장이 폐점한다는 소식이었다. 운영이 어려워 매장을 철수하고 온라인판매만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직원 말로는 옷에 돈을 쓰는 사람들은 명품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했다. 명품을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저렴한 옷을 주로 구매하기 때문에 매장을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을 것 같다. 패션계에도 양극화로 바람이 불고 있다.      


남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번은 남편이 인스타에서 본 재킷을 입어본다며 자라(ZARA) 매장에 갔다. 남편이 본 건 화사한 올리브 그린 컬러의 워크재킷이었다. 40대 남자가 그런 화사한 옷을 입겠다는 발상에 내 속에서 깊은 회의가 올라왔지만, 남편의 확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 탈의실에서 호기롭게 재킷을 걸치고 나온 남편은 거울을 보고서야 자신의 현실을 자각했다. 청바지에 재킷을 입은 남편은 미드에서 봤던 미국 청소부 그 자체였다. 허리에 닿을 듯 말 듯 짧고 넉넉한 핏의 올리브 그린 재킷은 40대가 입어서는 안 되는 옷이었다.


  그 후에도 다른 매장을 여러 곳 갔지만 비슷했다. 하나같이 유행이 반영된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쇼핑몰에서 우리는 마치 금지 구역에 들어온 사람들처럼 위축됐다. 아이들을 위한 옷 매장도 많고, MZ들을 위한 옷도 많아 보였다. 40대들이 살만한 가성비의 매장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남성복 브랜드매장은 부담스러운 가격에 재킷을 팔고 있었다. 남편은 살만한 옷이 없다며 실망했지만, 문제는 우리의 나이가 아니었을까.


나도 마찬가지다. 영캐주얼 매장에 가면 ‘내가 이런 옷을 입어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발랄한 옷들이 대부분이다. 화려하고 튀는 컬러가 대다수고, 좀 무난한 컬러의 니트나 재킷도 다들 허리가 간당간당하게 짧다. 허리 라인을 감출 필요가 있는 내게는 적당치 않다. 결국 다른 층에 있는 여성복매장으로 가본다. 여성복매장은 어머니들이 입을 법한 스타일에 가격도 좀 더 높다. 항아리처럼 허리라인을 넉넉히 감싸주는 옷들도 있다. 그런데 역시나 40대인 내가 입기에는 약간 과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원하는 옷을 찾지 못한다. 

     

옷에는 돈을 쓸 여력이 없는 게 40대다. 이들은 쇼핑에 큰 지출을 할 여력이 없다고 패션업계는 판단한 것 같다. 젊을 때는 중년의 아버지들이 왜 등산복만 입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내가 그 비슷한 나이에 와보니 이유를 알 것 같다.     


온라인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온라인쇼핑몰을 훤히 꿰고 있는 남편은 온라인에서도, 20-30대가 입을 옷뿐이라고 말한다. 온라인쇼핑몰이 많지만, 가성비 좋고 40대가 입을 만한 옷을 파는 곳은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도 편하게 맬 가방을 사려고 애써봤지만, 대부분이 너무 학생 같은 스타일이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무난하고 튼튼한 가방을 찾다 보면, 어르신들이 주로 애용하시는 레스포섹 스타일이다. 옷도 가방도 30대에 산 것들을 적당히 활용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요즘은 청바지통으로 나이대를 짐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전철 안에서 사람들 바지통을 보면, 20년 전 유행하던 통 넓은 바지를 입은 사람들은 전부 MZ들이다. 나이대가 올라갈수록 유행이 한참 지난 스키니진을 입은 분들이 많다. 유행에 민감한 남편이 통 넓은 청바지를 산다며 온라인 여기저기를 찾아 헤매다 바지를 샀다. 처음 보기엔 어색했는데 남편은 꿋꿋이 잘 입는다. 남편은 내게도 통 넓은 청바지를 사라고 했지만, 용기가 안 났다. 젊은 사람들만 입는 옷을 연예인도 아닌 내가 입는다는 게 뭔가 어색하다. 다행히 눈썰미 좋은 남편은 가성비 좋은 통 넓은 바지를 찾아냈다. 이쁜 컬러는 다 팔리고 그나마 남은 괜찮은 컬러를 사는 데 성공했다.


 통 넓은 바지를 입는 게 죄짓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 젊은이들의 특권을 침해하는 건 아닐까,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용기를 내서 입어본 통 넓은 바지는 편하고 좋았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 된 듯한 약간의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40대는 오래전부터 소외된 세대였나보다. 40대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그 나이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40대는 의류업계에서 아예 처음부터 구매력이 없는 대상으로 판단해  넘어가는 그런 계층이 였는지 모른다. 젊은 시절의 내가 등산복만 입는다며 이상히 여겼던 어른들은, 사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는 고민을 저마다 하면서 혹은 그런 고민조차 할 여력없이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40대는 어디 가서 옷을 사야 하나. 명품을 사지 않는 사람들은 이 나이를 함께해 줄 옷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유행에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닌데, 그 마음이 점점 작아짐을 느끼고, 쇼핑몰에 가면 자꾸 위축된다. 명품이거나 MZ들을 위한 옷, 둘 중 하나로 귀결되는 세상에서 40대는 어디로 쇼핑하러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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