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 동안 나는 몇 개의 게임, 특히 시리어스 게임을 만들었다. 크든 작든 하나의 게임을 완성한다는 건 재미있지만, 힘들고, 지루한 과정을 지났다는 걸 의미한다. 여러 번 의식 같은 과정을 통과하면서 정리된 생각들, 좋았거나 나빴던 경험들, 혹은 약간의 노하우가 쌓였다. 이것들을 하나씩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게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할 때 나는 아래 세 줄부터 시작한다.
게임을 만든다.
내가 만든 게임을 해본다.
내가 만든 게임이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워크숍 때 3번째 문구를 읽을 때면 모두들 ‘빵'하고 터진다. 그러고 나서 한 문장을 더 덧붙인다.
다시 1번으로 돌아간다.
실제로도 개발에 들어가면 1번부터 4번까지 반복이다. 오늘은 ‘반복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플레이 테스트를 수십 회 하다 보면 지치게 된다. 게다가 처음 하는 플레이 테스트의 경우 게임의 완성도가 낮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게임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많고, 크고 작은 에러는 사방에서 일어난다. 이 괴로운 시간을 의미 있게, 오히려 가끔은 재미있게 만든다면 ‘1번으로 돌아갈 힘'이 생긴다.
처음 게임의 뼈대를 만들어 돌릴 때는 특히 더 최소한의 자원만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펜, A4용지, 포스트잇으로 충분하다. 가위, 풀, 테이프마저도 안 쓸 때가 있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서 1차 구상을 끝내고 시각화하는 것이 좋다.
최소한의 자원만을 가지고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초기 아이디어는 폐기되기 때문이다. 초기 프로토타입은 이 게임이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방향성과 맞는 아이디어인가, 게임이 일정 부분 돌아가는가, 재미있는가 혹은 재미있을 거 같은가 등을 확인할 정도면 된다. 이쁜 그림도 필요 없고, 규격에 맞춰 잘 잘라진 카드도 필요 없다.
첫 번째 사진은 The Day After라는 자원 재활용을 주제로한 보드게임의 초기 프로토타입이다. 심지어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의 플레이 테스트용 게임 카드이다. 두 번째 사진은 완성된 카드이다.
외부 플레이 테스트를 하거나, 디자인을 보기 위한 테스트를 하거나, 도구에 대한 검증을 할 때는 각각의 상황에 맞게 정교한 프로토타입을 만들게 되니 걱정하지 말고 처음에는 최소한의 시간과 자원을 들여 만들자.
초반에는 ‘게임의 장르를 정한다’라는 목표로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도 있고, 머릿속으로 구성한 ‘게임 룰이 제대로 돌아가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다. 처음부터 ‘이 게임이 재미있게 잘 돌아가는가’를 테스트 목표로 삼으면 남는 건 좌절뿐이다. 단계별 목표를 알맞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게임 개발이 중간을 넘어가면 ‘플레이어의 경험이 설계한 대로 진행되는가’, ‘게임의 난이도는 적당한가', ‘A를 변경했을 때 B가 작동하는가' 등을 목표로 둘 수 있다. 개발 기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달성해야 할 목표를 최대한 잘게 쪼개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
리더십 게임인 Voyage의 경우 초기 테스트할 때는 ‘게임의 장르와 형태를 정한다'가 목표였다. ‘팀원을 키운다'라는 교육 주제에 맞게 ‘팀원을 육성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라는 플레이어의 경험을 카드 게임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게임의 장르를 정하거나, 기본적인 게임 룰이 구상한 게임의 주제와 맞는지, 우선 게임이 돌아가는지 등을 목표로 두고 테스트를 하고, 중반에는 플레이어의 경험이 구현되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플레이 도중 진행이 막힌다거나 등을 찾아보고, 마지막에는 게임의 밸런싱을 맞추기 위해 테스트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그 사이에 더 자세한 세부 목표를 세울 수 있다. 만약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라면 이 게임의 내용이 플레이어를 매료하는지, 혹은 게임의 컨셉이 비주얼로 잘 구현되었는지 등을 여러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
큰 목표를 한 번에 달성하려고 하기보다는 작은 목표로 나누어 한 걸음씩 가는 것이 좋다.
3번, 내가 만든 게임이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데 개발 중에는 비일비재한 일이기도 하다. 플레이 테스트를 할 때마다 내상을 입는다면 1번으로 돌아갈 힘을 유지하기 힘들다. 때문에 나와 게임을 분리하여 생각해야 한다.
플레이를 거절하는 것이지 나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만들게 되면 내가 만든 대상에 대해 애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그럴 때일수록 나와 대상을 분리해야 한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주문 중에 하나는 ‘지금(플레이 테스트 때) 욕먹는 것이 출시되고 욕먹는 것보다 백 배 낫다’이다. 내가 사랑하는 게임이 제대로 만들어져 출시되려면 오히려 지금 받을 수 있는 피드백을 최대한 받아야 한다.
4년째 운영 중이고, 지금은 게임 만족도가 5점 만점에 4점이 넘은 로스트시티라는 금융 교육 게임의 경우 내가 받은 최악의 피드백은 ‘게임이 재미없어요'도 아니었고(이런 말은 자주 듣는다.) ‘제가 이걸 지금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였다. 이날은 살짝 내상을 입어 초콜릿을 우걱우걱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때 해주신 피드백 덕분에 게임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포인트를 찾아내어 플레이어의 경험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The Day After 초기 외부 플레이 테스트 중 받은 피드백]
연구소가 나오는데 좀 교육적인 게 약한 게 아닌가.(어떤 스토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원이 순환되는 게 이해가 되지만 연구소는 이런 부분에서 좀 생뚱맞지 않은가
처음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사람 수만큼 똥이 나오는데, 주머니에서 가지고 오는 행위는 좀 단조롭다.
[The Day After 후반 외부 플레이 테스트 중 받은 피드백]
잘 만들어서 재미있고 또 하고 싶어요.
라이트하고, 룰 설명이 쉬워서 입문자에게 좋다.
낮은 카드를 구매할지 자원을 더 모아 높은 카드를 구매할지 고민하다가 재난 카드에 털리는 묘미.
처음 받는 피드백이 다 좋을 리 없다. 다 좋았다면 매우 운이 좋았던가 아니면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가. 받은 피드백을 정리해서 게임의 다음 개발 방향을 정하고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게임이 완성된다.
사실은 이 외에도 여러 팁이 있지만 오늘 소개한 세 가지는 내가 처음 게임을 만들 때 잘못해서 삽질했던 것들이다. 정리하면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 개발 기간 동안 개발 자원을 잘 분배해서 사용해야 한다.
*헤드 사진 출처: Photo by Jaciel Melnik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