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브론테>의 분석과 후기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내내 치열했고, 존재했으므로 이미 충분했다.'
뮤지컬 <브론테>는 빅토리아 시대, 작가로서 살아간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세 자매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이다. 브론테 자매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의 시선으로 이 작품을 관람한 후기와 분석 내용을 나눠보고자 한다.
*본 후기는 뮤지컬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와 개인적인 견해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필자는 그저 뮤지컬과 연극을 사랑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기에, 아래 내용 중 오류나 기타 부족한 내용이 포착된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빅토리아 시대는 대영제국 시기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했던 1837년부터 1901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빅토리아 시대는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도덕주의와 엄숙주의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시기다. 또 차티스트 운동과 같이 노동자 참정권과 사회권 확보를 위한 운동이 일어나며 피지배층이었던 이들이 목소리를 낸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에게 부여된 정치적 권리는 여성에게 부여되지 않았고 사회 내에서 여성의 자유와 권리 역시 인정받지 못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연극이나 뮤지컬의 소재로 자주 다뤄지는 문학도와 문학 작품이 대거 등장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찰스 디킨스(올리버 트위스트의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저자),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 브램 스토커(드라큘라의 저자), 오스카 와일드(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저자) 등이 있다. 또 국내에서 뮤지컬로 제작되어 공연된 몬테크리스토 백작, 스위니 토드, 카르밀라, 드라큘라 등이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 부흥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성의 문예 창작 활동이 금지되었고, 사회적으로 불온하게 여겨졌다. 또한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짙었고,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이 존재했다. 여성들은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했고, 공직에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1870년 전까지는 사유 재산을 가질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브론테 자매 역시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익명이나 남성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적으로 그녀들의 머릿글자를 딴 필명으로 낸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이 있다. 뮤지컬 <브론테> 속에서도 '우리만의 놀이'라는 넘버를 통해 이러한 사회상에 대해 넌지시 보여준다. 가사를 살펴보면 '여자가 먹고살 길은 결혼 아니면 가정교사', '멍청한 세상 편협과 아집에 잡아먹혔어', '숙녀에게 허락된 인생이란 따분해 누군가와 결혼하고 애를 낳고 병이 들어 눈 감으면 끝이지' 등과 같이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이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였는지를 드러내며 세 자매가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노래한다.
샬럿 브론테는 1816년 4월 21일에 영국 웨스트요크셔 손턴에서 출생하였다. 6명의 브론테 남매 중 셋째였으나, 첫째와 둘째가 폐병으로 죽은 후 브론테의 실질적인 첫째가 되었다. 그녀가 남긴 작품으로는 '제인 에어', '빌레트', '셜리', '교수' 등이 있다. 이 중 1847년에 발표한 소설 '제인 에어'가 크게 호평을 받으며 높은 인기를 끌었고, 여전히 명작 고전으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샬럿은 '제인 에어'를 발표한 뒤 '셜리'를 쓰던 도중 에밀리와 앤을 결핵으로 떠나보내게 된다. 이후 '빌레트'를 쓰고 1년 후에 아서 벨 니콜스와 결혼을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1855년 3월 31일 향년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샬럿의 대표작 '제인 에어'는 독립적이고 격정적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타난,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모습에선 상상조차 수 없는 획기적인 소설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보수적인 몇몇 비평가들은 제인 에어의 지나치게 독립적인 모습에 정치적 반역을 들먹이며 금서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이제 '제인 에어'의 줄거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고아였던 제인 에어가 외사촌과 외숙모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아오다가 로우드 자선 학교로 가게 되고, 로체스터라는 남자를 만나 대화를 주고받으며 매력을 느끼게 되어 종국에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은 여러 갈등을 거치고 결국 사랑을 고백하여 결혼을 준비하게 되는데, 로체스터와의 큰 싸움 이후 그의 곁을 떠나 자선학교에 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러던 중 신 존이 제인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될 뻔했지만, 그녀가 흔들리던 찰나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고 손필드로 향한다. 손필드에 도착했을 때, 로체스터의 집은 그의 부인 버사로 인해 완전히 불타 있었고, 고용인들은 흩어진 데다 로체스터는 장님이 되었고, 한쪽 팔도 잃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제인 에어는 "독자여, 저는 그와 결혼했습니다.(Reader, I married him.)"이라고 말하며 남은 생을 로체스터와 사는 엔딩으로 끝난다.
이 소설 초반에 외사촌과 외숙모가 제인 에어를 가둬뒀던 '붉은 방'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녀가 외사촌에게 저항할 때마다 그 방에 갇혔다. 즉, 제인 에어에게 '붉은 방'은 공포와 두려움의 공간 그 자체였다. 이는 뮤지컬 <브론테> 속의 연출로도 활용되는데, 샬럿의 넘버 '이것이 소설이라면'에서 자매를 모두 잃고 괴로워하는 샬럿의 주변이 붉게 변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소설 속에 대입하며 자신을 악역이라고 표현한다. 자매들이 곁을 떠난 고통의 순간마저도 그 상황을 '소설'에 대입하여 느끼는 그녀가 안타까웠고, 그 심정이 연출과 음악을 통해 너무도 잘 전달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에밀리 브론테는 1818년 7월 30일 영국 요크셔 손턴에서 출생하였다. 6명의 브론테 남매 중 다섯째였으나, 사실상 차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녀가 남긴 작품 중 유일하게 출간된 것은 '폭풍의 언덕'이고, 그밖에 1844년에 샬럿, 앤과 함께 출간한 공동 시집이 있다. '폭풍의 언덕'은 샬럿의 작품인 '제인 에어'와 다르게 브론테 자매 생존 당시 대중들로부터 외면과 혹평을 받았다. 뮤지컬 <브론테>의 넘버 '명과 암'에서도 두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대조적인 평가가 표현되는데, 샬럿의 작품은 '모두가 열광해'라고 노래하는 반면 앤의 작품은 '끔찍하고 기괴해', '악마가 쓴 게 분명해', '가치 없는 쓰레기'라고 노래하는 등 당시의 엇갈린 평가들을 보여준다. 에밀리의 작품을 읽은 샬럿도 그녀의 소설을 읽고 악몽을 꿨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M. 찢겨진 페이지처럼)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에밀리는 거침없고 야성적이며, 자기주장과 자존심이 강했고 다른 자매들에 비해 공상과 사색이 많았으며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유롭게 사는 것을 중시했다고 한다.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을 발표한 후 1년 뒤인 1848년 12월 19일 향년 30세의 나이로 영국 그녀가 사랑했던 황야, 요크셔 하워스에서 생을 마감한다.
에밀리의 작품 '폭풍의 언덕'은 애증의 관계와 격정적인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는데, 당시 잊혀지던 이 작품을 영국의 대작가인 서머셋 몸이 걸작이라고 예찬하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영국 문학 불멸의 걸작으로 뽑히며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거론된다. 브론테 자매 생존했던 당시와는 반대로 오히려 20세기에 들어서서는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이 훨씬 더 호평을 받으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서는 2021년, 2023년에 더플케이필름앤씨어터에서 연극 <폭풍의 언덕>을 제작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지금껏 본 연극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완성도가 높은 연극이었다. 소설 '폭풍의 언덕'을 재밌게 읽은 사람이나, 뮤지컬 <브론테>를 통해 에밀리 브론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라면 삼연이 왔을 때 한 번쯤 관람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폭풍의 언덕'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섣부른 내용 요약으로 작품을 다 담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뮤지컬 <브론테>를 재미있게 관람한 이라면 한 번쯤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기에 내용 요약은 건너뛰도록 하겠다. 그래도 혹시나 궁금하다면, 나무위키를 찾아보길 바란다.
https://namu.wiki/w/%ED%8F%AD%ED%92%8D%EC%9D%98%20%EC%96%B8%EB%8D%95
뮤지컬 <브론테> 속에서는 에밀리의 솔로 넘버 '폭풍우'를 통해 '폭풍의 언덕'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장면에서의 연출이 가히 압권이다. 몰아치는 선율과 황야의 바람 소리, 그리고 넘버 중간중간에 삽입된 '폭풍에 언덕'에 관한 내용들이 어우러져 '에밀리 브론테'라는 사람을 관객들에게 온전히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앤 브론테는 1820년 1월 17일 영국 요크셔 손턴에서 출생하였다. 6명의 브론테 남매들 중 막내였고, 브론테 세 자매 중에서도 막내였다. 앤이 남긴 소설로는 '아그네스 그레이'와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이 있다. 앤의 작품들은 샬럿과 에밀리에 비해 뛰어난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대중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샬럿은 작가로서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를 혹평하기도 했다. '아그네스 그레이'도 필력이 나쁜 작품은 아니지만, 샬럿과 에밀리에 비해 격정적인 사건이 없기에 당시 언니들의 작품에 묻히게 된 것 같다. 뮤지컬 <브론테> 속에서도 출판사에서 앤의 작품을 에밀리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실수를 저지르며 폭풍의 언덕과 함께 혹평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앤은 1849년 5월 28일 향년 2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샬럿과 에밀리의 소설에 비해서는 잔잔하고 간단한 사건을 담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도덕적인 이야기를 하며, 세상의 가치를 돈이나 외모가 아닌 진실과 사랑에 둔다. 어찌 보면 진부한 내용일 수 있지만, 이러한 내용을 담은 '아그네스 그레이'가 그 어떤 것보다도 앤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뮤지컬 <브론테> 속에서 앤은 경주하듯 글을 쓰는 언니들 사이에서 자신의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가고(M. 균열), 샬럿과 에밀리의 갈등을 중재하기도 하며(M. 찢겨진 페이지처럼), 느리고 평범하고 소박했지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했던 그들의 풍경을 사랑했다(M. 비유 없는 풍경). 비록 앤이 샬럿이나 에밀리에 비해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그녀는 브론테 자매가 비유 없는 풍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녀 자신만의 속도로 지닌 작가로서 충분했다고 말하고 싶다.
재연에 앤의 넘버인 '비유 없는 풍경'이 추가되었는데, 조민영 연출가는 인터뷰에서 "작가님이 앤이라는 인물은 '브론테'의 이야기를 삶으로 확장시키는 캐릭터라고 얘기해주셨고, 그래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어떻게 그려내는지가 넘버 안에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라고 넘버 추가의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재연의 연출, 특히 앤의 경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세 자매가 글을 쓰는 장면이 음악으로 표현되는 '트레이드 장면'이었다. 샬럿과 에밀리가 핀 조명을 받는 부분에선 각각 드럼과 기타가 빠르고 강한 선율로 연주되는 것과 대비되게 앤이 핀 조명을 받을 때 느릿하고 여유로운 첼로 선율이 나오는 장면에 마음을 빼앗겼다. 개인적으로 밤의 낭독회 다음으로 가장 애정하는 장면이다. 세 자매의 캐릭터성과 분위기를 그 어떤 말보다 음악으로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브론테> 속 넘버 '이상한 편지 part.1'에서 자매들은 발신인을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에게
난 너희가 어떻게 죽는지 모두 지켜봤어
너무 짧았던 너희의 삶에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누구도 해줄 수 없던, 해주지 않을 고백
샬럿, 너의 오만함 너의 이기심 너는 깨달아야 해 결국 사랑을 잃고 후회하기 전에 먼저 변하길 바래
앤, 내가 누군지 너는 알고 있어 오직 너만이 나를 찾을 수 있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에밀리, 너는 폭풍이 몰아치는 언덕 비난이 쏟아져도 멈추지 마 시간이 흐르면 너의 글은 더욱더 빛나게 될 거야 오직 너만을 믿으면 돼
이 편지를 기점으로, 샬럿과 에밀리의 다툼이 심해지고 결국 샬럿은 에밀리와 앤을 떠나게 된다. 사실 이 편지는, 에밀리와 앤이 죽은 미래에서 홀로 살아남은 샬럿이 과거의 자매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앤의 넘버 '답장'을 통해 이 사실이 관객들에게 전해지는데, '흐른 세월 때문에 달라진 글씨 때문에 당신을 찾는 데 참 오래 걸렸지. 후회하던 뒷모습 기적을 바라던 얼굴 나는 결국 당신을 찾았어. 안녕, 샬럿 브론테'라는 가사를 통해 편지에 적힌 대로 결국 앤이 편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찾아냄을 알 수 있다.
미래에서 과거로 온 편지, 사실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얘기가 맞지만 나는 이 요소는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처럼 여겨졌다. '써 내려가'라는 넘버에서 이 신비로운 편지를 '연서'라고 표현하는데, 끝에 다다랐을 때 결국 그 편지의 발신인이 샬럿이었다는 점에서 결국 이 편지가 뮤지컬 <브론테>의 가장 중심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느껴졌다. 편지는 사랑하는 자매들을 모두 잃은 후 샬럿이 쓴 편지는 당시 샬럿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연서'라고 느껴질 정도로 다정했던 편지의 말들을 통해 뮤지컬 속에서 어떻게 보면 오만하고, 한편으론 강압적이라고 느껴졌던 그녀의 모습들 너머에 있는, 그 '사랑'을 보라고 얘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신비로운 편지와 목소리로 미친 말 뒤에 몸을 맡긴 채 달릴 수 있었던, 그렇기에 폭풍의 언덕을 써 내려갈 수 있었던 에밀리와 너만이 나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할 수 있었던 샬럿 스스로까지. 결국 그 편지는 브론테가 브론테에게 바치는 가장 아름답고 다정한 '연서'이자, 사랑 그 자체라고 느껴졌다.
'그녀가 죽고 없는 미래에서 그녀를 잃은 누군가가 보낸' 그 편지는 브론테 자매들로 하여금 '시간을 넘어 영원해질 그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해 주었고, 어느 작가에게 '죽어가면서도 포기 않고 글을 쓰게 만들 힘을 주었으며, 어느 작가에게 천사처럼 다가가 그녀의 삶은 '이미 충분'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기에 브론테는 브론테에게 '모든 사랑'이며 가장 열정을 쏟은 '나의 글'이고, 암담했던 상황에도 '마침내 올 내일'을 꿈꾸게 해 주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브론테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밤의 낭독회'를 꼽을 것 같다. 그림자를 활용한 탁월한 연출과, 고요함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이야기 낭독의 연출이 참 아름다웠다. 세 자매의 소설이 결국 세 자매의 삶을 드러낸다는 자전적인 요소가 더욱 장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조민영 연출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초연 때 이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자는 것을 목격했다며 밤의 낭독회가 중요한 장면이기에 관객이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림자 연출을 추가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그림자 연출이 정말 특색 있었고, 자매들의 삶을 소설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장면에서 잘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기숙사에 입소하며 두 달가량 관극을 하지 못하다가 두 달 만에 한 첫 관극이 뮤지컬 <브론테>였다. 보고 싶은 뮤지컬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브론테는 꼭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브론테>를 예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품을 관람한 뒤, 챙겨 온 휴지가 모자랄 정도로 펑펑 울었다. 앤의 마음이 내게 닿았기 때문이고, 에밀리의 마음이 내게 닿았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샬럿의 마음이 내게 닿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샬럿의 마음과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가 미숙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자매들을 떠나보내고 편지를 쓰는 샬럿의 그 마음만큼은 어렴풋하게 와닿은 것 같아 후반부 내내 마음이 참 아렸다. 브론테 자매들이 브론테만의 언어로 말하는 그 '사랑'이 당시의 내겐 너무나 큰 위로로 다가왔다. 매 장면이 지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아름답고, 치열했으며, '브론테'다웠다.
작품을 관람하며 샬럿, 에밀리, 앤 모두에게 마음이 갔지만, 나는 특히 앤에게 가장 이입해서 작품을 관람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의 첫 학기를 시작하며 뛰어난 아이들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계속 옆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고, 타인과 나를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고 있었는데 <브론테> 속 자매들과 함께하면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가는 앤을 보며, 또 편지에 쓰인 대로 편지의 발신인을 찾아내는 앤을 보며, 마지막으로 비유 없는 풍경을 사랑하는 앤의 모습을 보며 앤을 꼬옥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샬럿이 떠나고 에밀리가 병들어 아파할 때, 가난으로 힘든 시기를 지낼 때 그 많은 순간을 묵묵히 채워나간 앤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에밀리 역시 많은 부분에서 내 마음을 건드렸는데, 특히 편지의 말 덕분에 글을 써 내려갈 힘을 얻고 자신의 온몸을 바쳐 작품을 완성하는 에밀리의 모습이 가장 이입이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사랑했고, 시 쓰는 것을 사랑했고, 책 읽는 것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글 쓰는 걸 업으로 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부모님과의 갈등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입시의 길 위에서 나는 나 자신과 타협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만약 그때 누군가 내게 편지의 말처럼 '비난이 쏟아져도 멈추지 마. 시간이 흐르면 너의 글은 더욱더 빛나게 될 거야.'라고 얘기해 줬다면 나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하는 덧없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길을 선택했기에 내가 새롭게 배우고, 성장하고 얻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선택한 길 속에서 편지가 해준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며 글을 계속해서 써 내려가고 있고, 앞으로도 써 내려갈 것이다.
언젠가 나의 삶에서 스스로를 믿지 않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고,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는 순간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갔던 브론테 자매들을 떠올리며 내가 아직 꾸지 않은 꿈을 써 내려가고 싶다. 과거 브론테 자매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슴 깊숙한 곳에 울림을 주는 것처럼 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또 힘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또 어딘가, 나와 닮은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