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가려고 채비를 하다가 오늘이 광복절이라 도서관이 쉬는 날이란 게 떠올랐다. 안 그래도 요즘 갑갑했는데 천성산 제일봉에 다녀올까? 전국에서 찾아오는 명산인데 난 집 옆인데도 한번도 안 가봤잖아. 뜨거운 물 가져가서 정상에서 컵라면 해먹으면... 크아... 죽인다. 그냥 휙 가버릴까 하다가 너무 충동적인 것 같아서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내일도 휴일이니까 미리 등산준비를 해서 내일 아침 일찍 가자고 마음먹었다.
산에 오를 때 먹으려고 전날 저녁때 오백미리 생수병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감자를 삶아두었다. 토마토를 잘라 설탕도 뿌려두었다.
오전 일곱시 오십분 쯤 집을 나섰다. 나는 천성산에 가는 길을 모른다. 전날 한결씨에게 연락해 길을 물어보긴 했는데 문자로 하는 설명은 잘 이해가 안됐다. 네이버 지도에 찍힌대로 가보기로 했다. 밝은덕중학교 앞에 차를 세워두고 지도를 따라 무지개폭포쪽으로 10분쯤 걸어가니 무슨무슨 농원 입구가 나왔다. 그곳을 지나려면 4천원을 내야했는데 통행료받는 아주머니께 여기로 가면 천성산 제일봉 갈 수 있냐고 물어보니 질러가는 길이라고 했다. 들어가보니 계곡을 따라 사람들이 텐트 치고 물놀이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노는 모습이 생경했다. 나는 휴일에 집에서 쉴 때가 많아서 이렇게 노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고 즐기고 노는 건 나랑 잘 언어울리고 어색하단 느낌이 든다. 물놀이 하는 사람들 옆을 등반가의 비장함으로 지나친다.
등산로로 들어섰는데 여기가 천성산 가는 길이 맞나 싶다. 산길이 너무 좁고 길 가로 키 작은 나무가지들이 우거져 있어 가는 게 불편하다. 좁은 길에 낙엽이 잔뜩 쌓여있어 미끄럽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은 표가 나는데 이곳은 사람들이 거의 안다니는 길같다. 심지어 버섯이 산비탈이 아니라 길 중간에 듬성듬성 나 있다. 얼마나 사람이 안다니면 버섯이 길 중앙에 핀다는 말인가!!
오랜만에 산길을 걸으면서 스스로도 되돌아보고, 아니면 아예 생각없이 걸어볼 요량으로 산을 오르려 한 거였다. 일단 생각을 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벌거지들이 너무 심하게 달라붙었다. 손을 휘저어 쫓아내도 얼굴이며 머리근처에 계속 앵앵거려서 정신이 없다. 느긋한 산행을 생각해서 반바지를 입고왔는데 산모기들 좋은 일만 시키게 됐다. 길이 하도 좁은데다 낙엽까지 쌓여있고 이정표도 제대로 없어서 도대체 어디가 등산로인지가 알기 어렵다. 걷다보면 자꾸 뚝뚝 길이 끊겨서 어디가 등산로인지 한참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네이버지도를 확인했다가 아주 정신이 없다.
"으즈머니가... 츤승산 흔번도 안 가브고 그능 믈흣그나...(이 악물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이게 뭐냐고"- 타인원망
"내가 미쳤지 이 한여름에 해발 천미터 가까운 곳에 가겠다면서 반바지를 입고오고... 차라리 에베레스트를 오르지 그랬냐"-자기원망
티셔츠 등판이 순식간에 땀으로 젖는다. 가파른 곳을 헤매느라 금새 지쳐버렸는데 바위마다 이끼가 끼어있고 모기와 날벌레들이 앵앵대서 잠시도 앉을 수 없다. 벌거지들이 달라붙어서 간식먹는 건 커녕 한 순간도 몸을 안 움직일 수가 없다. 나무 옆을 지나는데 큰 나방 몇머리가 우글우글해서 다가가기도 겁난다. 산을 오르며 웅상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길 바랬는데 수풀이 우거져서 풍경은 커녕 오십미터 앞도 잘 안보인다. 길은 왜이리 좁고 미끄러운 거야. 주변에 사람도 없어서 혼자 투덜투덜 대면서 걸어간다.
커다란 거미가 친 거미줄이 길을 막고 있다. 인상을 찌푸리며 나뭇가지를 주워 거미줄을 걷어내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땅에서 정체모를 생명체가 확 튀어나오며 물줄기를 뿜어 왼쪽 종아리에 조금 묻었다. 나는 으어어어 괴성을 내며 뒤로 도망갔다. 뱀이 독을 뱉은건가? 아니면 개구리가 오줌을 싼건가. 충격에 잠시 넋을 잃고 겁도 나서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그래도 큰맘먹고 나왔으니 가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벌레 우글우글 정말 싫다. 아마존 정글 같다. 너무 싫다.
길을 따라가다 계곡이 있어 건넜는데... 비탈진 둔덕이 나온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더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다. 산을 오른지 한시간 쯤 된 것 같다. 몸이 힘들어도 어디로 걸어가면 될지 알면 갈 수 있겠는데 길이 안보이니까 마음이 힘들다. 이쪽 코스는 어디가 정상으로 가는 길인지 알 수가 없다. 앞에 보이는 게 길인지 아니면 길처럼보이는것뿐인지 구분하기가 너무 어렵다. 모험심을 발휘해서 길을 더 찾아볼까 하다가 개고생하지말고 그냥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반바지를 입고온 것부터가 글러먹었어. 왼다리 열방 오른다리 일곱방쯤은 물린 것 같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집 바로 옆에 있는 등잔산이나 갈 껄! 통행료까지 내고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
내려가는 길에 입장료 받던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이 길로 천성산 제일봉 가보셨어요?' 하고 물어볼지 고민했다. 결국 이걸 물어보려는 건 '아주머니때문에 내가 고생했어''아주머니가 잘못했어'라고 티내고 싶은, 원망하고싶은 마음 아닌가? 내가 고생한 건 고도 천미터 산을 오른다면서 제대로 안 알아보고 무작정 온 내 책임이다. 괜히 말해서 서로 기분 상할 게 뭐 있어...원한을 만들지 말자!!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간다. 한참 걷다보니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와 안심이 된다. 거의 다 왔다 싶었는데 낙엽깔린 내리막길에서 주욱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넘어지며 바닥을 손으로 짚을 때 왼쪽 어깨관절이 휙 돌아간 것 같은데 다친데는 없었다. 종아리가 땀으로 젖어있어 흙이며 나뭇잎부스러기가 인절미의 콩고물처럼 잘 달라붙었다.^^ 흙을털고 걸어가는데 자꾸 종아리에 툭툭 물기가 느껴진다. 풀에 묻은 이슬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넘어질 때 가방에 있던 자연드림기픈물팩이 터져 가방 아랫쪽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다시 농원입구에 도착했을 때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들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일부러 그쪽 반대편을 쳐다보면서 얼른 지나쳐 빠져나왔다. 산길을 다 내려오니 길은 넓고 벌레는 없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서 아주 쾌적했다. 등산은 언제나 즐겁다. 등산 할 때 안 즐겁다면 끝날 때는 반드시 즐겁다!
집에 와서 등산 갈 때 깜빡 놓고갔던 설탕 친 토마토를 먹었다. 씻고 세탁기 돌리고 책을 보려했는데 책상앞에 앉은채로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