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옷을 입어왔다

by 쓰는 사람


나는 옷을 잘 못입는 청소년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늘 엄마가 사다준 옷만 입었다. 17살의 어느 토요일, 게임을 좋아하는 반 아이들과 피시방에서 밤샘을 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사복 차림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연주황색 남방위에 진녹색과 베이지색 줄무늬 니트를 걸치고, 옅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었다. 집에서 거울에 비춰볼 때는 썩 괜찮아 보였는데 약속장소에서 만난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옷이 진짜 이상하다‘고 했다. 밤새 옷을 못입었다는 말을 대여섯번은 들었다.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도 가슴이 갑갑했다.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명치에 체기같은 수치심이 느껴졌다.

이후에도 소풍이나 운동회때 비슷한 일을 되풀이 해 겪었다. 내 딴에는 괜찮다고 생각한 옷이 ‘할아버지같다’거나 '촌스럽다'는 말을 들을때면 풀이 죽었고 스스로가 볼폼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겐 옷사러 가는 게 부담스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백화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멋지게 차려입은 듯 보였다. 세련된 사람들 곁을 지날때면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매장 직원들이 내 추레한 옷차림을 비웃는 것 같아 연신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막상 옷을 사려해도 어떤 기준으로 옷을 선택해야하는지, 어떤 옷이 내게 어울리는지 알지 못했다. 매장에선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집에와서 살펴보면 무늬가 지나치게 요란하거나 몸에 맞지 않았다. 조악한 소재로 만든 보세점퍼를 비싼 돈을 주고 샀다. 두 번도 입지 않고 옷장에만 넣어둔 니트도 있었다. 직접 옷을 사면 왠지 이상한 옷을 고를 것만 같아서 두 살 터울인 누나에게 옷을 대신 사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옷을 못입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내가 스스로를 미워했다는 것이지만 17살의 나는 그걸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날 낮잡아 볼 것이라는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 당시에는 명백한 현실처럼 느껴졌다.

나는 반 아이들과 잦은 마찰을 겪으며 괴롭고 쓸쓸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활은 이전과 다르게 보내고 싶었다. 교실에서 시끌벅적 어울리던 잘나가는 애들처럼 농담 잘하고, 쾌활하고, 옷도 잘 입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인기있는 사람이 됐으면 했다. 대학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 과거를 모르니까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관심받고 싶은 열망을 간직한 채 이따금씩 옷가게를 배회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옷 잘 입는 법’, ‘남자 겨울 코디’ 등을 검색했다. 이 매장, 저 매장을 돌아다니며 한참동안 옷과 가격표를 들여다보곤 했다. 내가 대학생이 된 이천년대 중반은 인터넷 쇼핑몰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때이기도 했다. 한번 컴퓨터 앞에 앉으면 희귀한 옷을 찾아 몇 시간씩 인터넷을 헤맸다. 인터넷 쇼핑은 한번 올라타면 내릴 수 없는 급행열차 같았다. 상품은 끝도 없이 많았고 살 순 없더라도 구경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상품들을 일일이 클릭해보자면 30년이 주어져도 모자랄 것 같았다. ‘○○○매니아’라는 인터넷 카페도 들락거렸다.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착용사진을 올리거나 발매정보를 교환하는 곳이었다. 카페회원 중에는 150족만 ‘한정발매’되는 수십만원짜리 농구화를 사려고 한겨울에 매장 앞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지도 않을 신발을 종류별로 수집해 신발장에 채워두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어차피 사지도 못할 비싼 제품들을 검색하며 수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스스로가 옷을 고를 능력이 없다고 믿었던 나는 사람들이 옷 입은 걸 주의깊게 관찰했다. 누군가 옷 입은 걸 봐뒀다가 따라사려 한 것이다. 프린팅이 이쁜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동기가 입은 잠바가 멋져보이면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았다. 지하철 앞좌석에 앉은 사내의 운동화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한번은 열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내의 옷차림을 살피다 친구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람을 노려보냐’며 핀잔을 들었다. 언젠가 캠퍼스에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값비싼 옷과 신발로 치장한 청년을 지나친 적이 있다. 그가 입고있는 복장의 총액수는 200만원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그의 뒷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다 뒤돌아보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자족과 자만이 섞인 웃음이 그의 얼굴에 언뜻 비쳤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면 지금도 쓸쓸한 마음이 든다. 사실 내게 필요했던 건 비싼 옷이 아니라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였다.

대학시절의 나는 사람들 앞에서 쾌활한 어릿광대처럼 행동했다. 억지로 미소짓고 관심을 끌려고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생활은 고등학교때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과 동기들과 섞이지 못하고 겉돌았다. 학교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사람은 다짐만으론 바뀌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자,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해야지, 지금부터 난 자신감 넘치는 인간이야!’라고 수십번 외쳐봤자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20년의 습관과 생각의 경향성과 경험이 차곡차곡 쌓인 게 오늘의 나였다. 과거를 부정해도 과거는 여전히 강한 완력으로 내 발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인간이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그때 처음으로 체감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허리가 아프고 소화가 잘 안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상태는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악화된 후에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재활치료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시간이 남았다. 무얼 하며 보낼지 고민하던 나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쓰기로 했다. 이전부터 마음과 인간관계의 문제가 심각하단 걸 알았지만 오랜 시간 외면하며 방치해왔기 때문이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심리치료, 천주교, 불교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 스스로의 말과 생각을 관찰했고 살아오며 겪었던 일을 글로 썼다. 과거의 경험을 기록한 공책이 한권, 두권 쌓여갈수록 혼란스럽던 마음이 차츰 안정됐다. 나는 내 문제가 외모나 옷이 아니었음을 아님을 차츰 알게되었다.

아프게 된 지 3년쯤 지나고부터는 예전보다 옷에 신경을 덜 쓰게 됐다. 누군가를 자주 만나지 않아서 옷이 별로 필요없기도 했지만 옷차림이 내 인간관계와 별로 상관이 없었단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어떤 시기든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옷을 잘 입었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 문제는 옷차림이 아니라 배배 꼬인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옷차림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했던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그걸 깨닫고나자 신기하게도 옷에 대한 집착이 한결 덜어졌다.

예전에는 머리를 안 감으면 집 앞 마트도 못나갈 정도로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했다. 행인들이 나를 못난 사람으로 볼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 스스로를 폄하하는 건 자신이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얕본다고 느끼는 것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세상은 왜곡되고 뒤틀린 모습으로 보인다. 내가 만들어낸 망상이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전까지는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스스로를 조금은 긍정할 수 있게 된 뒤부터는 머리를 감지 않고 면도도 안하고 추레한 청바지를 입은 채 동네를 돌아다녔다. 사실 행인들은 내 청결에 신경쓸 만큼 한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옷에 대한 집착은 줄었지만 예전보다 더 어울리는 방식으로 옷을 입게 됐다. 사람은 자신이 규정한 대로의 사람이 된다. 예전에는 스스로가 옷을 못 입는 사람이라 믿었다. 그래서 누가 입어도 멋스런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사거나 남들을 따라입으려 했다. 사실 옷을 고르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내 패션감각이 완전히 꽝인 것도 아니었다. 패션에 대한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옷차림을 반복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체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가슴팍에 커다란 곰그림이 있는 티셔츠, 등뒤에 커다란 브랜드 로고가 있는 후드티를 입었다. 튀는 걸 부담스러워하면서 형광색깔의 신발이나 화려한 무늬의 잠바를 산 적도 있다. 스스로를 알지 못했던 시절에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내게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옷을 입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옷입기도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하는 거였다. 내게는 후드티나 야전상의처럼 활동적인 스타일보다 셔츠나 니트같이 차분한 옷차림이 더 맞았다. 발랄하고 튀는 파랑, 노랑 등의 색깔보다는 차분한 회색, 남색 등이 더 잘 받았다. 선호와 취향이 확실해질수록 이상한 옷을 사는 일이 점점 줄었다.

옷을 고르는 건 진로선택과 비슷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5급 행정직 공무원이 된다 해도 정작 본인이 그 일을 하며 불행하다면 소용이 없다. 값비싼 명품 옷이라도 자신에게 불편하다면 집에서조차 입을 수 없다. 이걸 깨닫고 나니 옷을 사는 기준이 브랜드와 타인의 평판에서 ‘나’로 바뀌었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중고 옷이라도 내게 편하고 잘 어울리면 그만이었다.


옷차림이 인간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직후에는 오로지 인성‘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빠져있기도 했다. 그때는 유명 브랜드 옷을 번드르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흥, 필요이상으로 치장에 돈과 관심을 쏟고 있구먼. 보나마나 내면을 가꾸는데는 신경도 안 쓸거야! 의류비의 10분의 1이라도 책 사는데 써봐라!!!’

사실 겉모습과 내면에는 별다른 인과관계가 없었다. 맵시있게 잘 차려입은 사람의 마음이 너그러울 수 있고, 후줄근하게 입은 사람의 마음이 옹졸할 수 있었다. 사실 내게는 그들처럼 멋지게 보이고픈 심리가 있었다. 세련된 사람들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던 건 ‘난 내면을 중시하는 고상한 사람이야! 겉모습에 신경쓰는건 미성숙한 태도야!’란 생각에 사로잡혀 잘 차려입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서당훈장처럼 심성을 강조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그들처럼 잘 차려입어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픈 마음이 여전히 있었다. 인정욕구에 얽매여 있으면서 초연한 척 하기보단 스스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나았다. 나는 추레한 몰골이 부끄럽고 옷 잘입은 사람들이 부러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난 꾸며봤자 별볼 일 없으니 인성이라도 좋아야 해’라는 생각에서 그토록 인성을 부르짖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사십대 된 지금도 여전히 옷차림과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게 어울리는 블레이져를 걸친 날이면 스스로의 모습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잘생기고 이쁜 젊은이들 앞에서 왠지 기가 죽을 때가 있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면 속이 상한다. 이따금씩 인터넷 중고장터를 검색하느라 새벽 1시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한때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야 당당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는 동기부여 강연자들의 주장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겐 이루기 힘든 이상인 것 같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과 스스로의 시선 사이의 어디쯤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매력적인 겉모습에는 분명 무시하기 어려운 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생에서 본질적인 건 내면의 힘이며 외면은 부차적인 영역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삶의 체험에서 얻은 생각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어려운 국면에서 상황을 진전시키는 힘은 마음에서 나왔다. 장기적인 관계일수록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집단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다. 아무리 화려한 옷도 내면의 결핍을 덮을 순 없단 걸, 아무리 추레한 옷을 걸쳐도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은 빛난다는 걸 삶에서 수 차례 목격했다. ‘강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뻔한 금언의 의미를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요즘의 내 지향은 옷은 조금 잘입고 마음은 많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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