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게임 중독이라니!!

by 쓰는 사람

그런 밤이 있었다. 왠지 무료하고 가슴이 헛헛해서 뭔가 짜릿한 게 없을까 찾아 헤매게 되는 밤이. 만화책도, 드라마도 심드렁해져서 더 재미있고 신나는 게 없을까 궁리하게 되는 밤이. 게임을 해볼까? 사실 며칠전부터 예전에 재미나게 했던 삼국지 조조전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조조전은 중국의 고전소설 삼국지를 원작으로 하는, 조조군을 지휘해 상대편과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다.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롤(리그 오브 레전드)이나 와우(워크래프트)를 하겠지만 나는 옛날 영화를 즐겨보고 샐러드를 사라다라고 말하는 옛날 사람인 것이다. 더구나 나는 삼국지를 16권짜리 소설로도 보고 60권짜리 만화책으로도 섭렵한,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관우장군님께 장문의 편지까지 썼던 삼국지의 애독자가 아닌가.

용량이 작은 옛날 게임이라 인터넷에서 금방 다운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설치해서 잠깐만 해보려 했다. 몇 년전에 즐겁해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이동시키고, 적군을 향해 돌격명령을 내려보는 정도만 해보고 싶었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이미 게임에 빠져들어 있었다. 삼국지의 이야기전개를 따라가며 전투를 벌이는 재미가 쏠쏠했다. 평소 잠자는 시간인 11시가 됐을 때 생각했다. 그래, 11시 30분 까지만 하자. 12시가 됐을 때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이고, 목도 뻐근하고 허리도 아프다, 내일 출근도 해야되는데 더 늦게 자면 하루가 엉망진창이 될 거야, 이제 그만해야 돼! 새벽 한시가 됐을 때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양손으로 머리를 탁탁 쳤다. 정신차려, 임마! 뭐하는 짓이야! 이대로 계속하다 밤새겠다, 지금 씻고 곧바로 자는거다?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나온 나는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고 새벽 세시까지 게임을 하고 말았다. 아침 일곱시쯤 일어나니 밤새 참호에 웅크려 쪽잠을 잔 병사처럼 몸상태가 엉망이었다. 오늘도 이러면 큰일나겠다 싶어 일어나자마자 컴퓨터에서 조조전을 삭제해버렸다.

처음 조조전을 해본 건 몸이 아픈지 6년이 되던 해였다. 당시에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안좋아서 취업은 엄두도 못냈고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재활운동을 하고 영화를 보고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게 내 주된 일과였다.

우연히 조조전을 접하게 된 나는 다른 일과를 내팽개친채 게임에 빠져들었다. 중학교 때 유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삼국지 영걸전을 해본 적이 있는데 조조전은 그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이 게임은 1990년대에 만들어진 게임임에도 캐릭터 디자인이 아기자기하고 정교했다. 공격할 땐 두꺼운 가죽을 베는듯한 ‘쉬익!’ 소리가, 방어할 땐 창과 방패가 맞부딪치는 ‘쨍강!’ 소리가 나서 효과음을 듣는 맛도 있었다. 이런 롤 플레잉 게임의 묘미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캐릭터가 성장하는 것인데 조조전은 캐릭터뿐만 아니라 캐릭터가 가진 무기도 레벌업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내가 가진 방천화극이나 흑룡도복의 성능이 게임이 진행될수록 향상되는 것이다. 공격과 방어가 확률로 정해진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운이 좋으면 한번에 적을 두 번 때릴 수도 있고, 적의 반격에 재반격도 가능하다. 한번의 공격기회로 적에게 화살을 두 번 날리고, 상대의 반격에 재차 화살공격이 들어가고, 마침 그 반격이 캐릭터가 형광등처럼 깜빡깜빡 빛을 내면서 필살공격으로 들어갈때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출근하고 나면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실행한다. 여포와 장비가 일기토를 벌이고 적벽에서는 강에 떠 있는 수천척의 배에 불이 옮겨 붙는다. 나는 등장인물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해, 좋은 무기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골몰한다. 게임의 진행상황에 따라 환호하기도 실망하기도 한다. 게임을 할때면 시간감각이 기묘하게 뭉개진다. 문득 시계를 볼 때마다 한시간, 두시간이 뭉텅뭉텅 지나있다. 점심이 되면 허겁지겁 엄마가 지어둔 밥을 먹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목과 등과 허리가 아프단 걸, 내 암울한 처지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보면 어느새 방이 주황빛으로 어둑하게 물들어 있다. 해가 저물어 노을이 진 것이다. 부모님이 집에 오실 때쯤 게임을 안한척 하려고 바깥에서 한시간 정도 걷고 온다. 밤에는 다시 잠자기 직전까지 게임을 한다. 이부자리에 누우면 마취가스라도 흡입한 듯 머릿속이 흐리멍텅하다. 하루종일 게임 말고는 한 게 없다. 오늘은 생각 자체를 거의 안한 것 같다. 내 뇌가 포유류에서 파충류로 퇴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갈망했을 오늘을 나는 코푼 휴지를 버리듯 하찮게 써버리고 말았다.

사흘을 줄창 게임만 하고 나니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았다. 엄마를 생각하니 게임하는게 죄스러웠다. 서른 넘은 아들이 병으로 집에 있는 걸 안그래도 안타까워하는데,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걸 알면 엄마가 너무 슬플 것 같았다. 아파서 집에 있더라도 마음만은 망가지지 않는 것, 흐트러지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같았다.

아픈채로 꽤 긴 시간을 보내야 된다는 걸 받아들였을 때 다짐한 게 있다. 이 시간동안 취업준비를 하거나 돈을 벌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정신적, 지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보자는 것이었다. 게임이 시간낭비라고 느꼈던 건 게임을 하며 내 삶에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 속 캐릭터가 천하무적이 된다한들 그게 실제의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좋은 영화는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렸고, 지혜로운 이들의 말과 글은 세상을 다른 식으로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하다못해 길거리를 몇시간이고 걷다보면 세상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배우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하루종일 게임을 하고나면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모조리 수챗구멍으로 부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면 나중에 몸이 낫든 낫지 않든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며칠간 수십시간 들여 키워왔던 캐릭터들이 아까웠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게임을 삭제했다. 게임을 지웠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막상 게임을 지우고나니 다시 하고 싶었던 것이다. 머릿속에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울리고, 발석차가 돌덩이를 발사해 여러 적군에게 돌덩이를 맞출때의 통쾌함이 떠올랐다. 민첩성이 높아서 적의 공격은 대부분 피하고 자신의 공격은 모조리 성공시키는 무적의 캐릭터 ‘전위’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새해가 되어 금연캠프에 참여했다가 곧바로 후회하는 20년차 골초처럼 컴퓨터방과 거실을 오가며 안절부절 못했다. 딱 한시간만, 아니 딱 한판만 해보면 안될까? 나는 결국 복원 프로그램을 설치해 삭제했던 세이브 파일을 고스란히 살려냈고 남은 하루를 꼬박 게임에 날리고 말았다.

이후 며칠간 게임 삭제와 설치를 되풀이하다보니 게임에 대한 내 집착이 꽤 심각하다고 여겨졌다. 인터넷에서 ‘게임중독 증상’을 살펴보니 누군가 나를 관찰하고 작성한 듯한 목록이 있었다.

1. 다른 취미나 활동보다 게임을 최우선으로 함.

2. 게임을 하는 행동을 멈출 수 없음.

3. 문제가 생기더라도 게임을 계속하거나 시간을 늘림

내가 게임 중독이라니! 3D 온라인 게임도 아니고 이전 세기에 만들어진 1인용 게임에 중독된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안그래도 난감한 문제들이 얽혀 빨간등이 깜빡거리는 내 인생에 게임중독이 겹쳐지면 그야말로 막장으로 치달을지도 몰랐다. 나는 어떻게든 게임을 끊어야겠다고 마음먹고, 게임을 삭제한 다음 복원프로그램까지 삭제해버렸다. 유혹에 못이겨 다시 복원프로그램을 설치하기도 했지만 이전의 세이브 파일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게임을 하고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솟을때면 집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걷거나 구립도서관에서 책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며칠동안 게임을 안하며 지내다보니 게임에 대한 욕구가 차츰 잦아들었다.

게임중독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때를 떠올려보면 중독이란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토록 얻고 싶어했던 아이템은 실제 물건이 아니라 모니터에 보이는 작은 그림조각일 뿐이었다. 나에게만 중요할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백원짜리 동전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게임에 빠져든 그 시점에는 그것이 소중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게임이 주는 쾌감은 내 마음과 긴밀하게 뒤얽혀 게임이 내게 무익하단 사실을 알면서도 도무지 그만둘 수가 없었다.

게임에 쉽게 빠져들었던 건 내 생활이 모래를 씹는 것처럼 삭막했기 때문일 것이다. 몇년째 식단을 조절하며 소식을 했지만 소화능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아침저녁으로 척추교정운동을 하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밖에 나가 걸었지만 허리와 목이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벌 받듯이 견디는 하루가 매일같이 되풀이됐다. 내게 현실의 세계는 아무리 걸어도 빠져나갈 수 없을것만 같은 아득한 사막과 같았다. 게임의 세계에서는 행동에 대한 결과가 바로 눈앞에 나타났고, 시간을 들인 만큼 캐릭터가 성장했다. 노력이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 모순된 현실에 비하면 게임속 세계는 오히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게임의 세계에는 고통이 없었다. 게임의 세계에는 나와 대척점에 있는 타자가 없었고, 그래서 나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자기연민이나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불안, 외로움과 대면하지 않아도 되었고 생각의 숲에서 혼란스럽게 헤맬 필요도 없었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내가 게임에 빠져든 원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환멸을 느낀 계기이기도 했다. 나는 지난 삶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통해 고통에는 무언가 배울점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통에는 환상이나 기만이 없다. 고통은 고요하지만 분명하게 내가 당면한 현실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뭔가를 해보라고 등떠민다. 고통을 느낀다면 적어도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뜻이다. 게임에 취해 몽롱하게 살아가기보단 종잡을 수 없고 괴로운 삶이라도 그것을 직면하며 살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게임을 악착같이 지우려 했던 건 가상세계의 행복한 인간보다 현실세계의 비참한 인간이 차라리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에 갑작스럽게 조조전을 설치해 새벽까지 했던 것도 현실이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인 것 같다. 얼마전부터 몸상태가 안좋아져서 채식을 해야했는데 내리 몇 달을 야채반찬만 먹으며 살려니 죽을 맛이었다. 직장생활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하기 싫은 숙제하듯 업무를 보고 있었다. 사는게 침울하고 팍팍하니 손쉽게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게임에 눈이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6년전과 마찬가지로 인생에 뚫린 구멍을 게임으로 틀어막으려 하고 있었다. 내가 일상의 활동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원하는 형태로 삶을 만들어가려 애쓰지 않느다면 게임을 끊더라도 다른 형태의 중독을 찾아 헤매게 될지도 몰랐다.

삼국지 4/5/6/7탄, 슈퍼마리오, 프린세스메이커, 영걸전, 디아블로2... 중학교 무렵부터 늘 게임의 세계로 숨어들곤 했기에, 나는 수천시간에 걸쳐 여러 게임의 마지막에 도달한 적이 있다. 그토록 마무리짓고 싶었던 게임의 끝에 도착해 엔딩 동영상을 보고나면 늘 황망하고 쓸쓸했다. 고작 이거야? 내가 이걸 보려고 그 많은 시간동안 게임을 한거야? 내가 씁쓸했던 건 게임의 끝에 도착하는 순간이 그동안 내팽개쳐뒀던 내 삶과 마주해야하는 순간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을 하는동안 조금의 진척도 없는 인생의 문제와, 어떤 변화와 성장도 이루지 못한 초라한 자신을 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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