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상태가 너무 나빠 잠을 잘 수 없는 밤이 여러 날 있었다. 뜬눈으로 몇 시간을 누워있다가 명치가 아프고 메스꺼워 일어난다.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어 서랍장에 허리를 기대고 엉거주춤 서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레드가 독방의 긴 밤에 대해 말했듯이 이럴 때 시간은 칼날처럼 길게 길게 늘어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온갖 상념과 몸의 통증이 곤죽처럼 뒤섞인다. 죽음이나 자살 같은 단어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내려고 희망이나 엄마 같은 밝은 것들을 떠올리려 애쓴다. 어떻게든 견뎌내고 살아가자고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설득한다.
목욕탕 매점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빠른 길을 놔두고 일부러 멀리멀리 돌아가는 버스를 탄 적이 있다. 고민과 불안이 뒤섞여 엉망인 마음을 버스 밖 풍경을 보며 정돈하고 싶었다. 113번 버스는 해양대를 지나 동삼동 국민은행을 지나서 남포동 시내로 향한다. 바깥 풍경이 휙휙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차창으로 들어온 햇볕이 승객들 옷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든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이렇게 버스도 타고 햇볕도 쐴 수 있는 거다. 살아있으니까 가끔씩 독서모임도 나가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나는 거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부모님은 기뻐하신다. 평생 유치원생만큼만 먹으며 살아가야 하더라도, 평생 동안 취직도 못하고 백수로 지내더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살고 싶다. 살려주세요...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정신없이 체하던 시기를 지나 몸이 어느 정도 괜찮아진 가을날, 밖으로 걸으러 나갔다. 신평역 지하도를 통해 낙동강변 쪽으로 걸어가다 문득 하늘을 봤다. 윈도우바탕화면 색처럼새파란 하늘이 참 예뻤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 달간 하늘을 보지 않았는데 아픈 몸에 온통 정신이 쏠려 마음에 조그마한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던 나는 한 구절에 멈춰서 엉엉 울고 말았다.
"달린다, 신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이르면 벽을 만나게 된다. 이게 내가 아는 마라톤의 피로다. 그 벽이라는 것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나 하나 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 나를 반대 방향으로 밀어 대는 듯한 느낌이다. 한 발자국도 더 내디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런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억울한 마음이 든다....
마라톤은 절묘하게도 모든 인간들을 동등하게 만드는 거리만큼 달리는 일이다. 적어도 근육의 피로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러므로 러너는 절망이란 희망에서 몇 킬로미터 부족한 상태를 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이 말은 러너의 가장 친한 친구는 피로라는 것, 러너가 온몸으로 껴안아야만 하는 것은 바로 절망이라는 것을 뜻한다. 희망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절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러너는 이해해야만 한다...
지난 몇년간정신적,육체적으로 끝없이 고통받았다. 그 시간이 너무 버거웠던 나는 이 시련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내심 내 진짜 인생은 더 번듯하고 멋진 것이어야 하며 몇 년의 투병은 내 인생의 예외적인 시간일 뿐이라고 믿었다. 나는 정말 많이 아프고서야 눈물과 콧물, 한탄, 비참, 한숨, 무력감, 기나긴 질병, 잠들지 못하는 밤들 또한 내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은 기쁘고, 감동적이고, 따뜻한 순간들만큼이나 명확하게 나의 소중한 일부였다.
김연수 씨의 글을 읽고 울었던 건 그의 글을 통해 인생의 본 모습을 설핏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탕과 과자만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인생이 무난하고 평온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런 인생은 삼류 웹소설에나 존재할 뿐이었다. 고통과 아픔은 삶의 예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나는 병을 앓으면서 고통과 아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한,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제대로 살아낼 수도 없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을 참되게 하는 건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아픔일지도 몰랐다.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타인을 이해해보려 하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과정과 결과, 삶과 죽음... 정반대라 여겼던 인생의 요소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섞이고 스며들어 온전한 하나를 이루고 있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절망도 넓게 보면 희망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절망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외면하고 체념해버린다면 나는 또 인생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흘린 채 지나쳐버릴지도 몰랐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엎드려 울면서 이상하게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면 글을 쓰겠다는, 내가 겪어낸 아픔을 재료로 누군가의 마음에 위안을 줄 수 있는 글을, 어두운 시간을 견디는 동안 마음에 품고 버틸 수 있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