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눈물의 설거지(1)

by 쓰는 사람

위장은 아주 천천히 망가져갔다. 모래시계의 작은 틈으로 모래알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렸지만 몇 개월 단위로 살펴보면 몸상태는 확연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고기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져 고생했다. 아이스크림, 현미밥 등 먹을 수 없는 음식 가짓수가 늘어갔고 몇 개월 후엔 과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음식을 일정량 이상 먹으면 몸이 배겨내질 못해서 하루 두 끼의 식사 외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초등학교 이학년 여자애만큼 밖에 음식을 먹을 수 없었지만 이따금 컨디션이 나빠질 때면 그마저도 소화하기가 버거웠다. 뒤가 낭떠러지인 절벽으로 매일 일 미리씩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나도 한때는 배부른 상태에서도 꾸역꾸역 음식을 욱여넣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만 아픈 뒤에는 늘 체할까봐 불안해하며 밥을 삼켰다. 한번 체하면 두세 시간 동안 괴로움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서 체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수칙을 만들었다.

1. 작은 유아용 그릇을 사서 그릇의 2/3 만큼만 밥을 담아 먹는다.

2. 흰쌀 외에 현미, 콩 등 잡곡류는 먹지 않는다.

3. 야채는 익혀 먹는다.

4. 물은 꼭 데워 마신다.

5. 한 숟갈에 150번 이상 씹어서 천천히 먹는다.

6. 식사 후 4시간은 눕지 않는다.


지키기가 까다로운 생활수칙이었지만 이 중 한 가지라도 어기면 대번에 체했다. 음식의 종류와 양을 지나치게 제한하다 보니 음식에 대한 갈망이 몸속에 차곡차곡 쌓였고 먹는 꿈도 자주 꿨다. 빼빼 마른 몸이 본능적으로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 했기에 매 식사시간마다 음식에 대한 욕구를 억눌러야 했다.



체할 때면 온몸의 피가 느리게 돈다. 혈액이 항상 온몸을 순환하고 있다는 과학상식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명치에 시멘트를 들이부은 듯 답답해져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신다. 사혈기와 사혈침을 구해다 체할 때마다 손을 땄다. 보통의 경우 손가락만 따면 체기가 가시지만 나는 혈액순환이 워낙 나빠 양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 네 곳에 피를 내고서야 겨우 막힌 가슴이 뚫렸다. 사혈침으로 찌른 부분을 짓눌러 검붉은 피를 짜내고 티슈로 닦아내기를 반복한다. 그 무렵 내 엄지발가락에는 사혈해서 멍든 자국이 늘 푸르댕댕하게 남아 있었다.



체중이 43 킬로그램쯤 나갔을 무렵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갔다. 나는 비쩍 말라서 군복을 걸어놓은 옷걸이 같았다. 국방의 의무는 마치 사채빚처럼 평생 동안 한국 남자를 따라다닌다. 군대를 가지 않으려면 감옥이라도 가야 한다. 예비군 훈련에 빠질 때마다 내야 할 벌금이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으로 점차 늘어나는데, 억울한 건 돈을 내더라도 훈련일수는 채워야 한다는 거다. 군대 안 가는 연예인들에게 한국 남자들이 쌍욕을 내뱉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당했던 730일의 오욕을 누군가는 요리조리 피해 가는 게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는 거다. 걷기도 힘든데 훈련을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예비군 간부에게 다가가 부탁했다. 보다시피 몸이 이렇게 안 좋은데 실내에 있으면 안 되겠냐고. 그는 병원 진단서를 떼 오면 연기는(면제 말고) 가능하지만 열외는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융통성 없는 그의 일처리에 기가 찼다. 그의 눈에는 힘겹게 서있는 내 몰골이 보이지 않는 걸까. 뼈와 가죽만 남은 사람에게 각개전투와 방독면 착용법을 가르쳐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걸까.



예비군 병사들과 열을 맞춰 언덕을 올라 훈련장으로 간다. 중간에 서면 못 따라갈게 뻔해서 일부러 맨 뒤에 섰다. 숨이 턱에 닿아 헉헉대며 비틀비틀 따라가지만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내 다리는 산길을 걷기에 너무 빈약하고 군화는 납이라도 넣은 듯 무겁다. 나들이하듯 걷는 그들을 달리기 하듯 쫓는다. 본격적인 훈련을 받는 것도 아니고 훈련장으로 가는 길일뿐인데 왜 이렇게 힘겨운 걸까. 관료제의 모순과 나의 질병이 빚어낸 이 상황이 슬프면서도 한편으론 우습다. 훈련장 가는 길은 마치 내 인생 같다. 죽을 둥 살 둥 노력해도 결코 평균에 도달하지 못하는 삶. 시간이 지날수록 평균에서 멀어지는 삶.



아픈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아버지 대신 가게를 봤다. 남자 목욕탕 구석에 딸린 조그마한 매점에서 칫솔, 때밀이타올, 훈제계란과 천하장사 소시지를 팔았다. 목욕탕은 주말장사라 내가 가게를 보는 평일에는 손님이 얼마 없었다. 그곳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작은 노트북을 가져가 영화도 봤다. 아픈지 6년째 되는 여름이었다. 나는 소화가 안돼서 먹고 체하고 손따는 생활을 몇 주째 반복하고 있었다. 그날도 오전에 먹은 밥이 체했는지 못 견디게 괴로웠다. 사혈침으로 손을 따고 피를 닦으며 체기가 사라지길 기다리는데 눈물이 났다. 서럽거나 슬퍼서가 아니라 그저 지치고 몸이 아파서 울었다.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다가와 면도기와 샴푸를 달라고 하기에 눈가에 묻은 눈물을 훔치며 물건과 거스름돈을 건넸다. 다 큰 남자가 물건을 팔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아저씨도 당황스러웠을 거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워서 티브이 뉴스에 종종 일사병 사망자가 보도됐다. 땡볕에 밭에서 일하다 돌아가셨다는 어느 할아버지의 사건을 보며 어처구니없게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사병이라면 자살도 아니고 그렇게 괴롭게 돌아가시지도 않았을 거란 추측에...



한날은 저녁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집에는 나밖에 없었다. 요사이 며칠은 먹는 족족 체했다. 저녁때는 한번 사혈해서는 체기가 가시질 않아 손발을 두 번이나 땄다. 살아있는 일 자체가 너무 힘겹게 느껴졌다. 며칠간 꾹꾹 내리눌렀던 울분과 독기가 눈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난 엉엉 오열하면서 혼잣말로 한탄했다.


이제 할 만큼 했잖아.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않아? 고통이라면 진저리날만큼 겪었어. 6년이야, 6년... 이 정도면 낫게 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도대체 왜 나한테만 그래, 도대체 나한테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신이라면 좀 공평해야 하는 거 아냐? 젠장!빌어먹을! 왜 나한테만 이런 고통을... 도대체 왜... 뭐야 이게...이게 사는거야? 너무 비참해. 너무 비참해서 어이가 없어...이렇게 살게 하느니 차라리 그냥 죽여...



그릇이 담긴 대야를 쾅쾅 내리치자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흘러내리는 콧물을 고무장갑으로 닦아내며 한참동안 울었다. 교회에 다니지도 않으면서, 절에 시주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애꿏은 신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 말고는 누구에게도 이런 투정을 부릴 수 없었으니까...



그분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은 땅과 같아서 반은 태양에 의해 빛나고 나머지 반은 그늘 속에서 빛난다는 거지. 성인(聖人)들 조차도 어디서든 빛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 육체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우린 어쨌든 그림자를 갖고 있지요. 그건 마치 수륙 양생의 동물들과 같아서 우리들 중 일부는 저 밑에 살고 또 다른 부분은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경향과 같은 겁니다. 산다는 것은 그저 그것에 대해 인지하는 것, 그것을 알고 빛이 그림자에 압도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투쟁하는 것일 뿐입니다.
수산나 타마로의 <마음가는대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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