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당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면(2)

by 쓰는 사람

까닭 없이 가끔 떠오르던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의 기억이 있다. 명절날 오랜만에 외가를 방문한 우리 가족은 저녁 무렵 친척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태어나 처음 가본 장소였다. 어두운 조명과 탁한 공기는 불쾌했고, 낯선 친척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지루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아버지는 자꾸 노래를 하라고 재촉했지만 할 노래도 없고 부를 마음도 없어 한 시간 반 동안 한곡도 부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나를 앉혀놓고 한참 동안 꾸짖었다. 사내자식이 노래 하나도 못 부르냐고, 그렇게 숫기가 없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냐고.


이 사건 하나 때문에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먹은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성장하는 내내 가정과 사회에서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을 터였다. 외향성이 우월하다는 전제는 사람들의 언행과 시선에 은근하게 스며 있었다. '사내자식이 호들갑스럽게! , 남자 새끼가 쪼잔하게' 같은 말들, '과대표 한번 하면 성격이 확 바뀐다더라', '나도 너처럼 그랬는데 부사관하고 전역한 후에 많이 좋아졌어' 같은 조언에 깔려 있었다. 그들에게서 들은 말은 도깨비풀처럼 붙어 나를 따라다녔고 난 내 문제가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노래방 사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건 이 일에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상징처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기억의 의미를 알게 되자 다른 깨달음이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올라왔다. 살다 보면 간혹 나보다 더 내향적인 사람을 만날 때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으면서 신기하게도 이 수줍은 사람들 앞에 서면 말이 술술 나왔다. 그럴 때면 나는 기분이 좋아져 우쭐댔다. 왜 그랬던 걸까? 눈앞의 내향적인 사람보다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으로 느껴서였다. 이 기준을 뒤집어 적용하면 나보다 외향적인 사람들 앞에서 나는 열등한 인간이 된다. 그래서 잘 나가는 애들 앞에 서면 마음이 쪼글아들었던 것이다. 내가 사람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관점은 이처럼 왜곡되고 뒤틀려 있었다.


열등감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열등감이란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내향적인 성격을 수치스러워하는 나는 만나는 사람들을 내향성/외향성의 척도로 등급화하게 되었다. 무리의 중심에서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사람들을 한없이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조용히 꾸려가는 사람들을 별 볼 일 없다고 여겼다. 타인에게 받는 주목을 중요시하다 보니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는 사람이 됐고 결과적으로 화술과 유머 따위를 익히고 자기계발서를 읽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습성이 생겼다. 값비싼 옷을 걸친 잘생긴 사람들을 높게 평가한 반면 수수하게 차려입은 평범한 사람들을 낮잡아봤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상대의 내면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그 사람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는 잘 알아보지 못했다. 내 빈곤한 마음은 상대의 진짜 모습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시각은 스스로에게 가장 해로웠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내게도 그대로 적용해서 스스로를 외모 때문에 자책하고 통념적인 잣대로 스스로의 가치를 규정해버리는 불쌍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만을 신경 쓰며 살아온 나는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해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내 성격은 극복해야 할 질병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순하게 수용해야 할 나 자신의 모습일 뿐이었다. 내향적인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그저 그 모습으로 살아가면 되었다. 내향과 외향을 열등과 우등으로 규정하는 건 인간에 대한 이해라곤 전혀 없는 파괴적인 사고다. 결국 내 문제는 내향적인 성격이 아니라, 예민하고 세심한 성격을 문제로 규정하고 바뀌려고 노력한 것 그 자체였다.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인생은 삐걱거렸다. 그 노력은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였으니까. 내 본래 모습을 억누르니 내면은 항상 갈등에 시달린다. 억지로 뒤집어쓴 외향성은 나의 본모습이 아니니 다른 사람들에게 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죽어라 열심히 하며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괴롭혀왔다.



남들이 그럴듯하다고 믿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순간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냉이가 참나무가 될 수 없듯이 나는 결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사람의 성격은 기다란 산맥과 같아서 우뚝 솟은 곳이 있으면 푹 꺼진 곳이 있다. 그 높음과 낮음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수많은 개개인의 인격을 형성한다. 인간이 저마다 유일한 존재라는 건 듣는 사람 좋으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골짜기가 있기에 봉우리가 존재하듯이 사람의 장점은 약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잡하고 미묘한 성향을 억지로 조작하려 하는 순간 전체 밸런스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내게 필요했던 건 바뀌려는 강박이 아니라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로운 마음이었다. 예전의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 되면 인생이 바뀔 거라고 믿었지만 진짜 긍정적인 변화는 내향적인 속성을 받아들이는 데서 왔다. 내향성을 억누르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으니 마음이 이전보다 한결 편하고 여유로워졌다. 마음속의 외향성과 내향성은 사람마다 특정한 비율로 섞여 있다. 스스로의 내향성을 받아들인후엔 역설적이게도 내 안에 있던 외향성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 외향성은 작위적으로 연출하던 예전의 그것보다 한결 자연스러웠으며 내 본모습과도 충돌하지 않았다. 외향성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난 뒤 나는 예전보다 잘 웃고 잘 웃기는 사람이 됐다. 나의 개그 성공률은 기존 4%에서 9% 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은 늘여서도 안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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