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당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면(1)

by 쓰는 사람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있는 단체 카톡방에 그림 몇 장을 올렸다. 내 딴에는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공유했는데 한 친구가 내가 올린 그림에 딴지를 걸었다. 커다란 고양이에 쫓겨 도망가는 어린이 그림은 아이의 어려운 상황을 비웃고 있고, 꼬마가 양다리를 벌리고 통나무에 걸터앉은 그림이 아이를 성적으로 모독했다고 한다. 삐뚤게 보자면 한없이 삐뚤게 볼 수 있는 게 세상이다. 웃자고 올린 그림에 열을 내는 친구의 태도가 당혹스러웠다. 자기가 방송통신위원회 심의위원장이라도 되나?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미켈란젤로나 모네의 그림도 욕을 먹겠다 싶었다.


얘는 꼭 나한테만 이랬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 그 애는 유독 나에게만 틱틱거렸다. 다른 아이가 말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도 내가 입만 열면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나를 깍아내리는 농담을 할 때 그 애 눈에는 늘 웃음기가 있었다. 단톡방에서 그 애와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다가 안 되겠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그림 한 장도 마음대로 못 올리냐,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고 따져 물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커지겠다 싶어서 우리는 둘 다 한 발씩 물러서며 감정을 추슬렀고 서로의 입장을 전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 일 이후로 그 애가 나를 걸고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며칠간 이 일을 곱씹어보니 단순히 친구 잘못으로 넘기기에는 나에게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나 또한 그 아이의 말에 과민 반응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애들이 내게 짓궂게 굴 때는 그러려니 하며 넘기면서도 유독 그 아이의 말은 참아 넘기지 못했다. 나는 왜 그랬던 걸까? 내게는 만나는 사람을 누구는 C급, 누구는 B급 하는 식으로 등급 화해서 판단하는 습성이 있었다. 나는 그 애를 나보다 낮잡아보고 있었기에, 나보다 못한 인간이 나를 함부로 대한다고 느껴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내가 그 애를 낮잡아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애가 나보다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 일에서 훤히 드러났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활발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반에서 인기 있는 아이들은 붙임성이 좋다. 동무들에 둘러싸여 복작복작 지낸다. 수업시간에는 웃긴 소리를 해서 반 아이들을 깔깔 웃게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넉살 좋게 말도 잘 건넨다. 나는 혼자서 어색하게 굳어있을 때가 많고 다른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아이들이 날 좋아할까? 활발하게 행동하면 나도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은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지만 좀처럼 그 애들 같이 행동할 수 없다. 그들처럼 말을 조리 있고 재미나게 하질 못하겠다.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기는커녕 붙일 말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애정이 부러웠다. 그 애들은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여유 있고 당당하다. 나는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들과 친해지면 그들과 동급이 되는 거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언제인가부터 인기 많고 잘 나가는 애들 앞에 서면 가슴이 덜덜 떨렸다. 그들 앞에서 말하고 행동할 때면 내 모습은 잔뜩 굳어서 부자연스러워졌다.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청소년기 무렵 강한 강박으로 변했다. 나는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에 심하게 굶주려 있었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는 건 내 문제의 해결책 같아 보였다.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는 건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이다. 작은 일에도 덜덜 떠는 나의 연약한 심성 탓이다. 내가 신정환처럼 재치가 있다면, 강호동처럼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싹싹하게 다가갈 수 있다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 텐데... 난 이상과 동떨어진 스스로의 모습을 답답해했고 자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내향적인 성격을 외향적으로 교정하려고 애썼다. 앞에 누군가가 있으면 별로 할 말이 없으면서도 억지로 말을 쥐어짜 냈다. 생뚱맞은 대화 주제를 꺼내고 전혀 궁금하지 않은 상대의 일상을 물었다. 마을버스에 탔을 때 일부러 운전석 뒤에 앉아 처음 보는 기사에게 말을 건 적도 있다. 대개의 경우 대화는 잘 이어지지 않았다. 이런 노력을 대한 사람들의 대게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말라거나 대놓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관계, 인맥, 화술, 성격 등의 주제를 다루는 온라인 카페에 자주 들락거렸다. 그곳에는 외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온갖 방법론이 나열돼 있었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꾸준히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게 그 카페에 올라온 글들의 논지였다. 코미디언 이봉원도 심하게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는데 '노력 끝에' 외향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카페 글들 눈여겨보던 나는, 어느 날 성격 개선을 위해 지하철 승객들 앞에서 말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지하철에 올라탄 후 한참 동안 눈치를 보며 사람 수가 적당히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객차에 대여섯 명쯤 남았을 때 나는 덜덜 떨며 일어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향적인 성격을 바꿔보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는 말은 학창 시절에 괴롭힘을 당했던 이야기로 이어졌고, 앞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겠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야기를 끝내니 50대 아저씨 한분이 격려의 의미로 작게 박수를 쳤다. 다음 역에 도착하자마자 화끈거리는 얼굴로 도망치듯 객차에서 내렸다.


버스킹(?) 같은 지하철 말하기 연습은 잠시 풍선처럼 부풀려진 자신감을 주었을 뿐 근본적으로는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다.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꿔보려고 스피치학원도 다녔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사람들을 대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고, 말솜씨도 늘지 않았다. 이런 시도가 반복될수록 맥이 빠지고, 마음이 텅 빈 듯 공허해졌다. 외향적인 사람이 되는 건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과연 내가 올바른 노력을 하고 있는 걸까? 때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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