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가 더 이상 고립된 인간이 아니라면(2)
친구의 행동 중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내 단점을 일일이 지적하려 든다는 점이었다. 친구는 내 특이한 억양, 거슬리는 습관, 선을 넘는 언행을 매번 지적했다. 난 그 애가 내 행동거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참 싫었다. 내 특성을 단점으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격과 습관을 어떻게 다룰지는 타인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몇 가지 사소한 갈등을 제외하고 우리는 대체적으로 잘 지냈다. 3학년이 되어 반이 바뀌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우리는 계속 연락하고 만났다.
대학 때는 마음을 터놓는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마음을 열어라'는 단순한 금언이 내게는 감옥을 탈출하는 것만큼이나 실천하기 어려웠다. 아파서 집에 있다 보면 시간이 많다. 나는 습관처럼 글을 쓰며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과 예전에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곤 했다. 감옥에 갇힌 무기수가 인생의 사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는 것처럼. 풀지 못한 인생의 질문을 붙들고 오래도록 골몰했다. 규호는 왜 그렇게 내 단점을 지적했을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많았는데 왜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었을까.
규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그렇게 집요하게 단점을 지적하는 거냐고.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나쁜 인상을 줄지도 모르니 자신이 미리 말해주는 거라 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규호는 친한 사람들에게 단점이 보이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 때문에 아이들과 종종 얼굴을 붉혀야 했음에도. 상대의 단점을 지적하는 건 사실 당사자에겐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껄끄러운 말을 하려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관계가 소원해질지도 모르는 불안도 감수해야 한다.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의 단점일수록 그에게 직접 언급하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상대의 결점을 내버려 둔다.
친구의 지적은 합당할 때도 있었지만 사리에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친구의 일관된 행동에는 한 가지 진실이 담겨 있었다. 상관없는 사람의 단점을 고치기 위해 열을 내는 사람은 없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내 단점을 말했던 건 규호가 나를 중요한 친구로 여긴다는 거였다. 그 아이의 지적이 옳았건 틀렸건 상관없이 그 애는 나를 염려하고 있었다. 사실 내 단점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준 사람은 없었다. 나는 대게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으니까.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아이들이 여전히 규호를 좋아했던 까닭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은 지적 너머에 있는 진심을 느낀 것이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 이면에 감춰진 무엇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다. 아픈 마음은 썩어가는 고기와 비슷해서 몇 겹으로 포장해도 냄새가 퍼진다. 아팠기에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없었고 누군가는 다가왔다가 다시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갔다.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무기력에,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졌다. 일정 시점부터 사람을 만나려 노력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내게는 기대가 한탄으로 마무리되는 경험밖에 없었으니까.
새로운 사람들 앞에 설 때면 이전까지 인간관계에서 쌓아왔던 나쁜 경험이 나를 내리눌렀다. 내게는 사람들이 날 싫어하고, 귀찮게 여길 거라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그 생각을 좀처럼 떨쳐낼 수 없었다. 두려움은 나를 사람들 앞에서 더욱 움츠리게 했다. 잔뜩 주늑든 채로 자학을 반복하는 내게 호감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바깥으로 나가려 할 때 타인의 애정이 큰 도움이 되는데, 마음이 아픈 사람이 누군가의 애정을 받는 건 참 어렵다는 것.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싫어한다.
규호와 지내면서 알게 된 건 내게도 밝고 우스운 구석이 있다는 거였다. 다른 사람 앞에선 늘 주눅 들어 있었지만 규호 앞에서는 웃고 떠들 수 있었다. 나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걸 규호를 통해서 확인했다. 스스로가 수치스러워 사람들 앞에서 숨고 싶었을 때 규호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내가 자신을 미워할 때조차 규호는 친구로 있어주었다. 새카만 어둠 속에 오랫동안 홀로 있어야 했을 때 친구의 존재는 내가 자신을 완전히 내팽개치지 않도록 해주었다. 친구와 보냈던 시간이 마음속에 작은 등불처럼 켜져 있었다. 저렇게 좋은 애가 나를 괜찮다고 말해주는데, 긴 시간 동안 친구로 있어 주었는데, 나도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지 않을까.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지 않을까.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믿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어둠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게 하는데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군가의 작은 온정, 작은 우정...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진실을 품고 있다면 당사자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준다. 내가 더 이상 이전처럼 고립돼 있는 자폐적인 인간이 아니라면 그것은 나 혼자 해낸 일이 아니다. 창문 없는 컴컴한 방에 웅크리고 있을 때 몇몇 친구들이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노올자, 어서 나와 노올자. 바깥은 햇볕이 쨍쨍하고, 날씨도 좋다. 왕따처럼 그러고 있지 말고 나와서 우리랑 놀자... 친구들이 했던 말이 귓가에 왕왕 울렸다. 친구들의 선의는 거대하고 무거운 체념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도록 나를 등 떠밀었다. 두터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때까지 나를 지켜주었다.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빛이 되는가,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죽고 싶지 않도록 만드는가.
<신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