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더 이상 고립된 인간이 아니라면(1)
몸 상태가 나빠진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둔 뒤 우리 집은 부산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전학으로 교복을 구하지 못해 처음 며칠간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했다. 나는 다른 지역에 살다 와서 아는 얼굴이 없었고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 만큼 붙임성 있는 사람도 못 되었다. 반 분위기는 삭막하고 냉랭했다.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내게 말을 거는 아이는 없었다. 초반 이주일 정도는 아이들과 말을 섞지 않고 지냈다.
한 달쯤 지나자 우리 반은 몇 개의 계층으로 나뉘어졌다. 교복 바지를 줄여 입은 등빨 좋은 양아치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입김이 셌다. 만만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습관적으로 손찌검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는 무리 지어 누군가를 심하게 놀리거나, 누군가의 약점에 대해 뒷담화를 하거나,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어내는 풍토가 있었다. 단체로 누군가에게 심한 짓을 하면서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까 봐 내심 두려워했다.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이 옳았던 걸까? 우리는 대체 누구에게 이런 못된 짓을 배웠던 걸까?
1학년 때 반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함께 어울린 무리가 있긴 했지만 친구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나를 무시하고 홀대했다. 주먹으로 등을 힘껏 때리고 도망가거나 화장실에서 오줌을 눌 때 어깨를 붙들고 흔든 적도 있었다. 보통의 아이라면 그런 경우에 화를 내고 싸울 것이다. 나는 헝겊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는 양보와 자기희생에 익숙했지만 나를 위해 싸우지는 않았다. 화를 냈다가 사이가 나빠지고 얇디얇은 관계의 끈마저 끊어질까 겁이 났다. 나는 혼자가 되더라도 싸워야 했으리라. 어느 만화가의 말처럼 존경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들과의 관계를 수차례 곱씹어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내게 함부로 대하기 이전에 이미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2학년이 되었다. 규호와 처음 말을 섞게 된 계기는 낡은 양말이었다. 그날 나는 신은 지 오래돼 물 빠지고 늘어난 양말을 신었는데 옆 분단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수업시간 내내 양말을 쳐다보았다. 추레한 양말이 부끄러워 양 발을 꼬아 발을 가렸음에도 여전히 보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양말 관찰자가 다가오더니 내가 살색깔 양말을 신었다며 놀렸다. 나는 갈색 양말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우리는 종종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치는 사이가 됐다.
그 아이는 모난 데가 없었다. 나처럼 다른 아이들과 감정싸움을 하다 사이가 틀어지는 일도 없었다. 명랑하고 농담을 잘해서 그 아이가 있으면 주변 분위기가 밝아졌다. 아이들은 그 애를 좋아했다. 그 애는 발랑 까진 애든, 조용히 공부만 하는 애든, 교실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규호와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은 대게 순하고 무던했다. 규호와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레 그 친구들과도 어울리게 됐다. 함께 교실에서 장난도 치고 가끔 농구도 했다. 외로웠던 학교생활에 조금의 떠들썩함과 약간의 웃음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라는 게임에 빠져 살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어려워해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내가 게임에 빠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현실은 암울했지만 게임하는 시간은 달콤했다. 현실의 나는 허약하고 인기 없는 소년이었지만 게임에선 레벨업을 하고 무언가를 달성할 수 있었다. 게임하는 시간만큼은 쓸모없는 존재라는 자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외면하고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세네 시간씩 게임을 했고, 새벽까지 스타크래프트 중계방송을 보다가 수업시간 내내 졸곤 했다. 규호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내가 답답해 보였던 모양인지 나를 집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했다. 주말마다 학교 운동장으로 축구하러 나오라고 채근했다. 나는 '축구 못해, 배워도 안 늘거야. 너무 멀어' 라고 답하며 주로 집에 있는 쪽을 택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지금부터 꾸준히 해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2학년이 되면 아직 늦지 않았다며 야자를 시키고, 3학년이 되면 마지막까지 포기해선 안된다며 밤 열 시까지 붙잡아 놓는다. 이건 흡사 홈쇼핑 쇼호스트의 수법이 아닌가? 고등학생들에겐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어 선생들이 하는 말에 혹한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여름방학이 되자 규호와 나는 보충수업을 들은 후 다시 독서실에 가서 공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오가며 낭비되는 시간이 상당했음에도 규호는 자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동네에 있는 독서실에 다녔다.
하교 후에 규호와 함께 집에 돌아오면 나는 늘 라면을 끓였다. 변변치 않은 반찬을 친구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서였다. 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심하게 의식하는 아이였다. 매일같이 먹는 신辛라면이 지겨웠지만 라면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요리였다. 땡볕을 맞으며 한참을 걸어가 독서실 의자에 앉으면 졸음이 쏟아졌다. 한잠 자고 일어나 책을 조금 뒤적이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우리는 주로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컵라면에 물을 부어 독서실의 휴게실에 가니 웬 여고생 두 명이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그때는 ‘더파이팅’이라는 권투만화를 투니버스 채널에서 저녁 시간대마다 방영해주고 있었다. 친구가 오늘은 못 보겠다며 체념하려 할 때 내가 나섰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더파이팅이라는 만화가 방영되는데 채널을 안되겠느냐'고 여고생들에게 굽신거리며 사정했다. 여자애 둘은 황당한 표정으로 휴게실을 나갔고, 우리는 일보가 잽으로 나뭇잎 열 장을 낚아채는 명장면을 볼 수 있었다. 친구는 나의 엉뚱함을 두고두고 놀렸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어른들은 비가 오면 얼큰한 걸 먹곤 한다. 매일 라면만 먹는데 질렸던 나는 짬뽕을 시켜먹자고 제안했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고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초인종은 좀처럼 울리지 않았다. 이주 정도를 라면과 컵라면으로 살아온 데다 가진 돈도 얼마 없었던 우리가 배달음식에 거는 기대는 컸다. 게다가 비 오는 날의 뜨겁고 매콤한 짬뽕이었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배달원은 비 오는데 무슨 배달을 시키냐며 내게 짜증을 냈다. 국물은 다 식어 있었고 면발은 가락국수처럼 팅팅 불어 있었다. 밍밍한 밀가루 반죽을 씹는 것 같아서 반도 채 못 먹고 젓가락을 놓았다. 태어나서 먹어본 중국집 음식 중에 제일 맛이 없었다. 오징어 짬뽕 맛 라면이 200배는 맛있을 것 같았다. 최악의 짬뽕을 비싼 돈 주고 사 먹어야 했던 친구는 우울한 표정으로 면발을 꾸역꾸역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