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관계 맺는 일은 운전연습과 같아서

by 쓰는 사람


독서모임에 처음 나가던 날, 난 카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 동안 입구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내게는 무척 드문 일이었다. 워낙 폐쇄적으로 살아온 터라 사람 대하는 데 서툴렀고 아는 사람이라곤 중고등학교 때 친구 몇 명이 전부였다. 사회성이 한참이나 떨어지는 소심한 사람이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려니 겁이 나고 떨렸던 것이다.



모임에 나가게 된 계기는 몸이 아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였다. 조금씩 회복되던 건강이 대학 졸업 후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소화기능이 떨어졌고 척추의 불편함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어렵고 글자 많은 책을 볼 때면 가슴이 갑갑하고 속이 미식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더 이상 취업준비를 할 수 없었다. 당시에 내 신체증상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의사나 전문가는 없었다. 목 근육 경직이 워낙 심해 머리 쪽으로 피가 잘 돌지 않아 생긴 증상이란 걸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처음 맞닥드린 불행은 어떻게든 견딘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 자체가 상황 개선을 위한 노력의 동력이 된다. 끔찍한 건 예상한 시점을 넘어 끊임없이 연장되는 불행이다. 초기에는 불행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삶을 되찾겠다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속되는 고통은 인간을 갉아먹는다. 살면서 고통밖에 느낄 수 없을 때 당사자는 어떤 노력도 소용없으리란 회의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굳이 이렇게 애써서까지 살아갈 필요가 있는 걸까? 몸이 다시 나빠졌을 때 한동안 무기력감에 시달렸다. 이불더미에 머리를 처박은 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든 걸 외면하고만 싶었다.



인간 내부의 깊은 곳에는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등 떠미는 끈질긴 힘이 있다. 그 힘은 당사자가 절망에만 취해있지 않도록 어깨를 두드리고 말을 건넨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그 힘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이라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이런 상황이어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인간의 역량을 게임 캐릭터처럼 수치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 게임에서 조자룡의 무력이 99, 제갈량의 지력을 100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나는 체력이 3, 지력이 22였고 관계 수치는 5 정도였다. 내 캐릭터의 '관계' 역량은 너무 수치가 낮아 어떤 군주도 등용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몸이 아프니 남들처럼 직장에 다닐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은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과의 마찰이 두려워 더 이상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 했던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고생하면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됐다. 특별히 목적의식을 가지고 독서모임에 나간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꽤 많은 책을 읽었다. 나는 책 읽는 게 좋았다. 내성적인 내가 사람들을 만나려 할 때 책은 좋은 매개가 되어줄 것 같았다.



처음 몇 달간은 모임에서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무언가 말하려 하면 혀가 굳었고 사고의 흐름이 정지됐다. 허둥 9단처럼 진땀을 흘리다 어수선한 문장들을 내뱉기 일쑤였다. 여럿 앞에서 말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만은 아니었다. 내겐 '말하기'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려 하면 걱정과 긴장이 뒤범벅돼 나를 덮쳤다. 과거의 나는 늘 경직돼 있어서인지 말하고 난 후 좌중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럴 때 짓궂은 사람들은 나를 경멸하거나 비웃었다. 이런 경험이 여러 차례 누적되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행위 자체에 반사적인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어떤 연령대의 집단이든 타인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상대적으로 무리에 섞이는 걸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가 집단에서 힘없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지 살펴보면 된다. 그들을 무리 안으로 함께 끌어안으려 하는지, 아니면 배척시키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주류가 되고 싶어 했던 비주류였다. 사람들 틈에 섞일 능력이 없는 나는 집단에서 약자였고 얕은 인간들이 약자에게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음을 보았다. 내가 살아오며 거쳐왔던 사회집단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냉정하고 삭막했다. 많은 사람들은 비주류를 포용하려 하기보다 배제시키고 짙밟으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성숙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다. 개개인은 자신의 몸뚱이로 사회를 체험할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 한국사회는 성마르고 몰인정한 공간이었다. 9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를 피부로 겪어본 사람이라면 내 견해에 어느 정도는 동감할 것이다.



이 독서모임의 공기는 왠지 모르게 관용적이고 따뜻했다. 마음씨가 곱고 성숙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책을 읽어오며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온 사람들이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곳 사람들은 내 버벅대는 말투나 어색한 태도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주었다. 말 없는 나를 배려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들은 보릿자루마냥 앉아있던 나를 한 명의 사람으로 존중해주었다. 새 신도를 맞이하는 교인들의 당위적인 친절이 아닌, 몸에 밴듯한 자연스러운 호의였다.



이곳에서는 사회가 정해놓은 평균의 범주에 속하지 못해도 소외되지 않았다. 흠있고 모나고 엉성해도 괜찮은 이 모임은 주류와 비주류의 구획을 나누던 사회집단과 달랐다. 사람과 관계맺는 일은 운전과 같아서 처음 하는 사람은 못할 수밖에 없다. 이곳 사람들의 마음엔 비틀대는 초보운전자를 배려할 수 있는 여분의 배려가 있었다.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지지 못했던 내가 책모임에 꾸준히 나갈 수 있었던 건 이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시에 모임에 나왔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불신과 가식과 경쟁에 지친 사람들은 '다정한 진심' 에 허기졌을 것이고, 이 공간에서 바깥에는 없는 온기를 쬐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옆집 아주머니의 애정어린 손길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함처럼 말이다. 그들과 함께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얼어있던 내 마음이 서서히 녹았던 것 같다.



몇 개월이 지나면서 말수가 이전보다 늘었고 이야기하는 게 한결 편해졌다. 완전히 해동된 건 아니었지만 상온에 꺼내 둔 냉동고등어처럼 조금은 말랑해졌다. 가끔씩은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았고 사람들을 웃게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웃다니... 이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말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갖은 노력을 해왔다.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고 인터넷 유머를 검색했다. 수십만 원을 내고 화술학원에도 등록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었던 물건이 살다 보면 발견되는 것처럼 다방면으로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었던 문제의 힌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됐다.



'말하기'를 나의 콤플렉스로 규정하고 말을 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 근본문제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내가 스스로를 덜떨어지고 못난 사람으로 여긴다는 거였다.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거란 환상을 만들었다. 나는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에 압도돼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말하기에 대한 콤플렉스는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에 딸린 부차적인 증상일 뿐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못하는 한 내 삶은 개선되지 않을 터였다.



사람은 혼자서는 어둠 속에 있을 때처럼 스스로를 볼 수 없기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이미지를 형성한다. 타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삶에서 타인에 비친 내 모습은 수치스럽고, 비참하고, 어리버리하고, 숨고 싶고, 의기소침하고, 초라했다. 독서 모임의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를 아는 게 많고, 생각이 깊고, 은근히 재밌고,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봐주었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 말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스스로를 병신으로 여기며 살아온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모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해갔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들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대해주는 경험을 하며,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괜찮게 여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람은 평생 스스로와 함께 있어야 하기에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삶은 무척이나 버겁다. 나 또한 스스로가 참 싫었기에 날 선 자학의 말로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내 마음은 모순적이었다. 칼로 피부를 긋는 것처럼 자학이 아팠음에도 그 행위를 멈추는 건 쉽지 않았다. 습관이 된 자학의 말은 마음속에서 온종일 메아리쳤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단순한 금언을 받아들이는 게 내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여정이었다.



지금 내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진 못하겠다. 다만 이전처럼 자신을 혐오하지는 않게 되었다고, 못나고 추레한 모습 또한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는 답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궁핍한 자신을 예전보다는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사막의 선인장이 공기 중에서 수분을 빨아듯이듯 스스로를 긍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이제는 안다.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는 힘겨운 노력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어렵고 긴 시간이 걸리지만 충분히 해볼 가치가 있다.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만 스스로를 좋아하겠다고 조건 짓는 게 아니라, 초라한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모습 그대로를 껴안으려 시도해야 한다. 동시에 스스로 노력하는 만큼이나 좋은 사람들에게서 애정을 받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내게 독서모임 사람들이 건네준 온기가 없었다면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참 어려웠을 것이다. 한 인간의 인격은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타인의 애정을 자양삼아 자란다. 그리고 그 성장은 한 시점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죽을때까지 이어지는 것임을 나는 안다.




언니, 저를 기억해주어 고마워요. 그리고 제게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전 그런 얘기를 들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럴 자격이 없는데... 제가 오늘 언니에게 무얼 받았는지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써요. 언니는 그게 뭔지 알고 있을 테지만. 언니가 준 것과 내가 받은 것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김애란의 <서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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