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신적 성장은 그가 평생에 걸쳐 관심을 가진 주제였다. 그의 글에는 '나무'를 사용한 비유나 표현이 수도 없이 사용되는데, 이는 그가 스스로를 나무처럼 쑥쑥 자라게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감옥이란 폐쇄된 공간에서 자신을 키우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외부세계와 단절된 많은 이들이 그렇듯 그도 성장을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문제에 부딪쳤다. 앉아서 한정 없이 읽는 책은 현실감을 잃게 하고 관념성을 강화할 뿐이었다. 책 무더기에 한 권을 책을 더하는 행위처럼 허무해질 뿐이었다.
책은 관념이며 이론이다. 이론은 실천을 통해 현실적합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이론은 실천을 통해 보완되고, 보완된 이론은 실천을 통해 다시 재검증된다. 이론과 실천은 이러한 끊임없는 순환상에 있을 때 건강함을 유지하며 지속될 수 있다.
감옥은 실천의 조건이 제한된 곳이다. 사방이 벽으로 닫힌 좁은 공간은 몸뿐만 아니라 생각마저 웅크리게 한다. 감옥에서 무언가 이뤄보려던 이들은 막힌 벽에 부딪쳐 이내 무기력해진다. 실천 없는 이론은 한 발로 걷는 걸음처럼 현재의 위치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의족을 사용한다. 관념의 과잉과 실천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고심하던 그가 택한 방법론은 타인의 과거 실천을 목발로 삼는 것이었다. 감옥 생활 몇 년 만에 그가 힘겹게 깨달은 건 자신이 절도, 폭행, 사기 등의 죄명을 가진 죄수들을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규정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대상화가 동료 죄수들과 가까워질 수 없었던 원인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는 일상의 작은 영역에서부터 자신을 바꿔가기로 결심한다. 감방 동료들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죄명 너머에 있는 속 사람을 만나기 위해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나’에서 ‘우리’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자 한 것이다. 관념성을 벗어버리기 위해 삶의 현장에 섰다. 재단 기술을 배워 동료들과 밤늦게까지 미싱 작업을 하고 양화 공이 되어 구두를 만들었다. 그는 동료들 한 명 한 명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길면 몇 번에 걸쳐서라도 전체 이야기를 들었다. 생 전체를 파악해야만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저마다가 삶에서 건져 올린 진실에는 책의 이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육중한 힘이 있었다. 그는 타인의 실천에서 배운 것들을 자신의 삶에 이식해 와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실천'은 자신의 몸과 맞지 않아 초기에는 목발로 걷는 것처럼 어색하고 절뚝거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요령이 붙고, 뒤뚱거리던 걸음도 모양새가 잡혀갔다. 목발은 제2의 다리가 되었고 그는 목발로 요령껏 걷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자신이 예전보다 훌쩍 커졌음을 자각했다. 타인에게 얻어온 과거의 실천이 자기 삶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크나큰 감동이었다.
그는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는 한편 내면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겪었던 사건을 내면에서 어떻게 갈무리하느냐에 인간의 성장 여부가 달려있단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과거는 단지 지나간 일이 아니었다. 과거는 현재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미래로 연장된다. 정돈되지 않은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삶을 예속하고, 앞으로 걸어갈 수 없게 한다. 현재의 전진을 멈추고 과거의 무덤으로 숨어버릴 위험만 잘 경계해낸다면 ‘과거의 추체험’은 사람을 자유롭게 해방하기도 한다.
교도소의 긴 겨울밤마다 그는 살아오며 만나고 헤어졌던 수많은 사람을 한 명 한 명 떠올렸다. 그에게 자신이 어떤 의미였는지, 자신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묻고 또 물었다. 재복원한 과거는 기존의 기억과 딴판인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몰랐던 사건의 의미를 알게 되거나 망각했던 사실을 되찾았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매번 만나게 되는 건 알지 못했던 자신의 이러저러한 모습들이었다.
이 책을 알고 몇 년이 지난 다음 스스로에 물어본 적이 있다. 어려운 한자말이 가득하고, 심각한 글도 많고, 깊은 생각이 담겨 있어 이해하려면 되풀이해 읽어야 했음에도 나는 왜 이토록 이 책에 빠져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자 알 수 있었다. 그건 내가 스스로를 갇혀 있는 사람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나는 감옥이 아닌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 병든 육체라는 감옥에 수감돼 있었고 병든 마음의 족쇄에 묶여 있었다. 도무지 나라는 감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이 감옥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안고 있던 내게 신영복 씨의 책은 등대와도 같았다. 그는 성장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고 그만큼 많이 넘어졌다. 숱한 시행착오의 기록은 내 삶을 비춰보기에 더없이 훌륭한 교본이었다. 훌륭한 책들이 대게 그런 것처럼 이 책 또한 곧바로 답을 제시하는 종류의 책은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살아라'거나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라는 등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가장 낮고 담담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이 감옥에서 겪고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검은 황소와 고양이 꽃순이, 야간작업 중 나눈 잡담, 축구, 여름 감방, 불교 집회 때 떡 받아온 이야기를 했다. 별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감방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기존에 당연하거나 중요하게 여겨왔던 세상과 삶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무너졌다. 그의 이야기에는 독자가 자신의 삶을 근본적인 지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년의 감옥생활을 학교로 삼아 보다 지혜롭고 성숙한 인간이 됐다. 그의 책을 읽으면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 사람처럼 커다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를 가장 흔들었던 건 그가 20년의 수형생활을 통해 도달한 결론이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인간을 불신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형성한다. 내가 겪어온 삶에서 인간은 믿을 수 없는, 믿어선 안 되는 존재였다. 난 사람을 신뢰할 수 없는 뒤틀린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 없어도 행복한 게 가능하다면 그 편을 택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삶엔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했다. 자신의 감옥생활을 통해 인간의 구원은 오직 인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부단히 타인들 사이에 자신을 세워야 함을 알려주었다. 그는 관계를 통해 도달하는 인간성의 어떤 절정을 이야기했다. 수많은 죄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근거를 획득한 그의 인간학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그에게 저항했지만, 끝내 설득당하고 말았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이성에 앞선 감성의 영역이며 머리에 앞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영역이다. 그의 말에 설복된 후 나는 좁은 껍질을 깨고 나와 세상 사람들을 만나보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완전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인간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믿어도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저마다의 논리와 이유로 저울질하며 살아간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인간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다만, 이전보다 확고하고 자란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신뢰가 커진 만큼 내가 이전보다 여유 있게 잘 웃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네가 길을 잃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나무를 생각해라. 그들의 성장 방식을 기억하렴. 잎이 많고 뿌리가 적은 나무는 바람만 불어도 뿌리가 뽑히는 반면, 뿌리가 많고 잎이 적은 나무에서는 수액이 제대로 흐르기가 힘들다. 뿌리와 나무는 비슷한 양으로 성장해야만 돼. 그래야만 그늘과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고, 적당한 계절에 꽃과 열매를 마음껏 피울 수 있단다.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되는 대로 아무 길이나 들어서지 말고 앉아서 기다려라. 네가 세상에 나오던 날 내쉈던 자신 있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네 마음속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마음이 네게 이야기할 때 마음 가는 곳으로 가거라.
수산나 타마로의 <마음 가는 대로> 중에서
*이번 글의 제목은 신영복 선생님 글의 제목을 그대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