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나고 난 후에 이전보다 넉넉해진 가슴과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스승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굳이 학교 선생님으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스승은 우연히 보게 된 한 편의 영화일 수도 있고, 속 깊은 친구일 수도 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한 권의 책으로 신영복 씨를 만난 후 그는 나의 스승이 되었다.
1968년의 여름 그는 남산 취조실로 끌려갔다. 반국가단체에 가담해 체제에 위협을 가했다는 억울한 혐의가 그에게 씌어졌다. 협박과 고문과 치욕이 뒤범벅된 무더운 여름이 지났다. 육사생도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치던 젊은 강사는 한순간에 무기수로 전락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징역 생활이 시작됐다. 규율과 강제, 힘과 굴종의 논리가 지배하는 감옥은 그로서는 처음 겪어본 공간이었다. 그곳은 예민하며 지적인 젊은이의 가슴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책과 글을 사랑했던 청년은 자신의 출렁이는 마음을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죄수는 종이와 펜을 소지할 수 없다. 한 달에 한 번 보낼 수 있는 편지는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 한 달 내내 내용을 구상했다. 글감을 고르고 생각을 가다듬고 초고를 쓰고 거듭해 퇴고하는 일은 전부 머릿속에서 이뤄졌다. 간수 앞에서 편지를 쓰는 건 이미 머릿속의 완성된 글을 그대로 옮겨 적는 작업일 뿐이었다. 그의 감옥생활은 그렇게 편지의 형식으로 세상에 미리 출소했다. 내가 읽은 책은 그가 20년 20일 동안 감옥에서 쓴 편지의 모음집이었다.
그의 편지에 원망과 한탄, 비관과 증오의 말은 없었다. 불운을 맞은 사람이 어쩜 이렇게 의연하고 담담할 수 있을까. 인간을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불행에 맞닥뜨린 사람에겐 자신의 고통이 제일 크고 버겁다. 그는 감옥의 다른 죄수들이 불행을 구태여 부풀리지 않는 걸 목격했다. 그들은 불행을 드러내 주목받거나 위로를 끌어내려하지 않았다. 죄수들이 감옥의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그저 살아가는 게 그에겐 충격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다른 수많은 죄수들보다 더 괴로워할 권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생각을 한 뒤부터 저자는 자신의 아픔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세상 수많은 아픔의 한 조각임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이 책을 읽은 건 몸이 한창 아플 때였다. 마음의 병과 몸의 불편함 때문에 오랫동안 괴로워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 독기를 품어왔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많은 이들이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괴로운 일을 당해야 하는가. 분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양호한 처지의 사람들만을 비교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내 사고엔 배 부르고 등따신 생활이 인생의 기본값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세상에는 이유 없는 불행이 참 많았다. 나에게 저 불행한 사람들보다 더 괴로워할 권리가 있는가? 그는 '나의 아픔을 세상 수많은 아픔의 한 조각처럼' 여기려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인데, 한 번도 이런 식으론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아픈 것만 생각했지, 다른 아픈 사람의 구체적 고통을 만져보려 한 일은 없었다. 내 아픔만 붙잡고 내 아픔만 곱씹으며 살아온 나란 사람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장기간 심한 고통에 시달린 사람은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려보게 된다. 이건 ‘자살해선 안된다’ 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같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다. 인내심엔 분명 한계가 있다. 괴로움이 임계치를 넘어서면 자살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조차 '죽고 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 또한 초인은 아니었다. 학자로서의 보장된 삶이 시작되려던 시기에 차갑고 좁은 감옥에 갇힌 그에게도 죽음이란 단어는 떠올랐을 것이다.
그가 죽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햇볕이었다. 한평 남짓한 독방의 조그만 창으로 하루 한 시간 정도 햇볕이 들어왔다. 조그만 점에서 시작된 햇볕은 점점 커져 가장 넓을 때는 신문지 반장 크기가 됐다. 해가 비칠 때면 창을 등지고 앉아 등에 햇볕을 쬇다. 춥고 외로운 겨울 독방에 비친 한 장 햇볕의 온기는 그에게 크나큰 위로였다. 28살의 무기수는 생각했다. '아주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햇볕도 맞을 수 없었겠지. 그렇다면 태어난 것만으로도 손해는 아니다. 따뜻한 햇볕 한 장 만으로도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내일도 살아서 이 햇볕을 맞고 싶다.'
두 번째는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자신의 괴롭고 억울한 삶은 죽음으로써 완결될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은 기나긴 고통의 시작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다.
세상에... 사람이 햇볕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가려 하다니. 그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에 너무 쉽게, 습관처럼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얼굴이 빨개질 만큼 부끄러웠다. 그의 책은 읽는 이를 끊임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나는 그가 햇볕 때문에 죽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결심은 햇볕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였다. J.D. 샐린저가 쓴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 닥친 커다란 고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내려 한 것이고,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조차 긍정적인 무엇을 발견해 낸 것이다. 빛 한 줌 없는 컴컴한 방에 감금되었더라도 그는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찾아냈을 것이다. 사실 고통 앞에서 내가 떠올린 '죽고 싶다'는 생각에는 고통을 외면하고픈 심리가 숨어있었다. 고난을 헤쳐가려니 막막하고 방법을 모색하려니 골치가 아프다. '죽고 싶다'는 말을 뇌까리며 좌절된 이미지로 숨어버리면 눈앞의 괴로움과 투쟁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죽고 싶다'는 사실 '모든 어려움을 외면하고 도망가고 싶다'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벼랑 끝에 서서 이처럼 허황된 낙관을 갖는다는 것이 무슨 사고의 장난 같은 것이지만 생명을 지키는 일은 그만큼 강렬한 힘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것이다. 개인의 생명이든 집단의 생명이든 스스로를 지키고 지탱하는 힘은 자신의 내부에, 여러 가지의 형태로, 곳곳에 있으며 때때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내가 지금부터 짊어지고 갈 슬픔의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감당해낼 힘이 나의 내부에,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풍부하게, 충분하게 묻혀 있다고 믿는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이번 글의 제목은 신영복 선생님이 쓴 글에서 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