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펴기'란 운동을 새로 시작했다. 허리 아래에 방석을 깔고 누워있거나 등 뒤로 깍지를 껴는 간단한 동작이었다. 몸은 조금씩 느리게 펴졌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을 했음에도 척추는 한 달에 0.01cm 정도씩만 변하는 것 같았다. 운동을 시작한 지 세 달쯤 지난 후엔 20,30분씩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됐다. 나로서는 커다란 진전이었다. 이전까지는 의자에 도무지 앉질 못했다.
현미를 발효시켜 만든 효소를 먹고 소화력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몸이 허약해지면 장기가 기본적으로 만들어야 할 효소가 줄어드는데, 발효 효소가 나 대신 음식을 소화해주는 듯했다. 체하는 경우가 점점 줄었다. 식후 내복약처럼 매 끼니 효소를 챙겨 먹었다. 불씨가 사그라들던 아궁이에 작은 불꽃이 피어난 것 같았다. 불을 피우려면, 장작을 넣고 바람을 불어야 했다. 다시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십분 거리의 대형마트 앞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차차 거리를 늘려 1시간 정도를 걸을 수 있게 됐다.
대학 졸업을 위해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등록했다. 불편하지만 앉을 수 있으니 어떻게든 수업은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에 한 친구는 이 시절의 내가 '유니세프 캠페인의 난민' 같았다고 했다. 팔은 연약한 나뭇가지 같았고 살이 없는 허벅지는 바지 안에서 휘적거렸다. 가끔씩 목욕탕에 갈 때면 사람들은 뼈만 남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살이 워낙 없어 강의실 의자에 앉으면 딱딱한 엉치뼈가 피부를 짓눌렀다. 지하철 의자에도 아파서 앉을 수 없었다. 얇은 방석으론 두세 시간 강의를 버틸 수 없었다. 사 센티 두께의 두꺼운 라텍스 방석을 사서 백팩에 묶고 다녔다. 두꺼운 백팩을 메고 지리산 등반하듯 계단을 오르는 깡마른 복학생은 사람들 눈에 띄었을 것이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 칸막이에 들어가 경직된 근육을 이완하고 자세를 바로잡는 운동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수업을 듣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해내기 위해 상당히 부지런을 떨어야 했지만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년 넘는 시간 동안 워낙 고생을 해서인지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졌다.
재학 중인 대학생은 학교 지정 장소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 장산역 근처에 있는 군부대는 집에서 지하철로 두 시간 거리다. 일찍 나온다고 서둘렀지만 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촉박했다. 정시에 도착하지 않으면 30분 늦게 돌려보낸다. 한 시간을 늦으면 훈련에 참가할 수 없다. 마음이 다급해져 걸음을 재촉했다. 같은 방향으로 가던 예비역들이 불안감을 느꼈는지 쫓기는 패잔병들마냥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다른 패잔병들을 따라 뛰었지만 총 맞은 부상병처럼 무리에서 점점 뒤처졌다. 나는 악에 받친 조교들의 먹잇감이 될 터였다. 내 허벅지는 근육이 다 빠져서 무거운 군화를 들어 올리기엔 턱없이 빈약하다. 심장이 명치에서 목구멍까지 오르락내리락한다. 살아있기에 급급했던 심장과 폐가 몇 년 만에 해보는 격렬한 뜀박질에 요동친다. 아무리 힘껏 공기를 들이마셔도 가쁜 숨이 진정되지 않는다. 입이 마르고 목구멍이 따끔거린다. 한편으론 오랜만에 느껴본 속도감에 기분이 들뜬다. 달린다는 건 , 팔을 앞뒤로 크게 흔들고, 땅을 박차면서 다리를 앞으로 뻗는 건, 심장이 아프도록 쿵쾅거리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었구나. 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몇 년간 굶주리고 적은 양을 먹어 버릇하며 혀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음식을 조금밖에 먹을 수 없게 되면 아무리 적은 양의 밥과 반찬이라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콩자반을 반찬삼아 쌀밥 한 공기를 먹는다. 검보라색 콩자반 국물이 흰 쌀에 배이는 걸 바라본다. 한 숟갈 퍼서 천천히 씹는다. 적당히 딱딱한 콩의 식감을, 짭조름하면서 달콤한 양념을, 찧은 깨의 고소한 향을 즐긴다. 이전에는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왜 다른 군인들이 짬밥을 싫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은 라면을 왜 맛없다고 하는지도 몰랐다. 난 이제 남들보다 섬세한 식감을 가진 사람이 됐다. 남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미묘한 맛의 차이를 분별한다.
활동량이 늘어서인지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식욕이 왕성해졌다. 그동안 못 먹었던 음식 목록을 전부 내장에 적어 두기라도 한 양 나는 게걸스럽게 음식에 매달렸다. 깡말랐던 몸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필사적이었다. 끼니마다 자신도 놀랄만한 양을 먹었다. 뱃속에 나 말고 한 사람이 더 들어있는 것 같았다. 밥을 먹을 때면 호박무침 한 젓갈, 감자조림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양념까지 숟가락으로 긁어먹었다. 커다래진 식욕은 눈앞에 음식을 모조리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했다. 식욕은 나에 속한 것이었지만 나보다 수십 배는 컸다. 식욕은 나를 쥐고 흔들었다. 걸신들렸다는 옛말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오랫동안 굶주렸던 사람 내부엔 먹을 것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생긴다. 노동수용소, 감옥, 조난자, 전시상황을 그린 작품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음식을 그리워하고, 음식을 상상하고,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묘사한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고, 더 퍼와서 먹는다. 빵집에서 사 온 크림치즈 빵, 단팥빵, 샌드위치를 종류별로 잘라먹는다. 쿠키를 먹고 우유를 먹고 홍시를 먹고, 요구르트를 먹는다. 끝도 없이 음식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매 식사는 한정된 기회 같았다. 이번 끼니에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다음 끼니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수업에 늦게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식사를 거르는 법은 없었다.
소화불량 때문에 식사량을 제한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한하고, 음식 앞에서 끝없이 인내하고, 안돼, 안돼,라고 스스로에게 수천번 되뇌고, 참지 못하고 한 숟갈 더 먹고, 체하고, 괴로워하고, 자책하길 반복하며 식욕을 관장하는 내 뇌의 어떤 부분이 변형된 것 같았다. 이전에는 먹는 행위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다 싶으면 그만 먹었다. 맛있는 음식이 없을 땐 대충 배만 채우면 그만이었다. 감자칩 한 봉지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내가 음식에 집착하게 된 건 음식을 금지하고 제한했기 때문이다. 식탐과 음식에 대한 갈망에 시달리면서 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에 사로잡히는지 이해가 됐다. 그건 그들이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생기는 결과였다. 음식은 금지의 대상이 돼선 안된다. 먹을 것에 대한 갈망은 인간 종의 유전자에 아주 깊게 새겨져 있다.
한동안 닭과 산양을 돌본 적이 있다. 먹이에 대한 그들의 열망은 대단하다. 새끼 산양은 밥때가 됐는데도 사료를 가져다주지 않으면 자기 앞에 사료를 가져다 놓을 때까지 끈질기게 운다. 만지는 걸 싫어하면서도 내가 들고 있는 먹이통에는 투우하는 소처럼 달려들었다. 닭들은 겁이 많아서 손짓만 해도 멀리 도망가지만 모이통에 먹이를 부어주면 광신도처럼 몰려들어 쪼아 먹었다. 그들에게 두 번의 식사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겁고 귀중한 순간이었다. 먹이에 달려드는 동물의 본성은 인간에게도 분명히 있다. 생명체 내부에는 어떻게든 생명을 보존하고 이어가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있다. 생명은 음식을 섭취해야만 이어갈 수 있으므로, 음식에 대한 갈망은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원초적이고 끈질긴 것이다. 내가 끼니를 챙겨 먹게 하는 힘과 동물들을 먹이로 달려들게 하는 힘은 근본적으로 같다.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죽는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먹어야만 살 수 있다. 문화, 법, 윤리, 규범 등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모든 조건들을 제거한다면 우리에겐 식욕과 성욕만이 남을 것이다. 음식은 가장 깊은 곳의 인간 정서와 뿌리 깊게 맞닿아 있다. 수만 년 전부터 음식은 인간에게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직관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음식 때문에 맘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음식으로 당하는 모욕과 차별은 위장 깊은 곳에 낙인처럼 찍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음식에 강박적으로 매여 있을 때 먹을 걸 앞에 두고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수치스러운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절대 보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모습이다. 무언가를 마구 먹던 기억, 멈추고 싶으면서도 통제할 수 없던 먹는 행위. 과식 뒤에 찾아오는 좌절감과 죄책감. 이어지는 자기 비하의 시간들. 난 어딘가에서 먹을 걸 잔뜩 사와 옆에 쌓아놓고 오래도록 먹었다. 비쩍 마른 몸이 영양소를 절실히 필요로 하기도 했겠지만, 정신적으로도 필요했던 행위였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음식을 억제하고 통제해왔다. 내겐 죄책감이나 후회 없이 자유롭게, 마음껏 먹는 행위가 필요했던 것 같다.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소화력이 향상된 데다 학교를 다니면서 활동량이 늘어나서인 것 같았다. 44킬로 정도였던 체중은 네 달 만에 57킬로가 됐다. 텅 빈 푸댓자루 같았던 옷이 차츰 몸에 맞아갔다. 급속도로 살이 붙으면서 몸에 이상한 반응이 나타났다. 온몸에서 털이 빠졌다. 머리를 감고 나면 빠진 머리카락이 수채 구멍에 가득 뭉쳐 있었다. 피부에서 각질이 하얗게 일어나고 껍데기가 떨어졌다. 머리가 빠지고 피부 각질이 일어난 건 몸이 급속도로 회복되고 새 세포가 왕성하게 만들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 같았다. 빼빼 마른 몸으로 겨울을 나는 건 끔찍한 일이다. 마른 사람은 체온을 보존해줄 지방이 없어 추위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살이 붙으면서 가장 안도했던 부분은 겨울을 이전보다 수월하게 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즈음 나는 기나긴 투병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생이라면 지긋지긋하게 했으니 이제는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헝겊으로 빵을 감싸 가지고 겨드랑이 밑에 꼈다. 부스러기 하나라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조금씩 빵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슈호프는 수용소에 들어온 후부터, 전에 고향 마을에 있을 때 배불리 먹던 일을 자주 회상하곤 했다. 감자를 번철 냄비에 몇 개씩이나, 야채를 넣은 죽을 몇 대접씩이나, 그리고 식량 사정이 좋았던 옛날에는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었다. 게다가 우유는 배가 터지도록 마셨다.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었다고 지금 슈호프는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음식을 먹을 때는 그 진미를 알 수 있도록 먹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조그마한 빵 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한다. 조금씩 입안에 넣고 혀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양쪽 볼에서 침이 흘러나오게 한다. 그렇게 하면 이 설익은 검은 빵이나마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
11년을 유형지에서 보낸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