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람들이 나를 싫어했던 게 아니라

by 쓰는 사람

글쓰기와 마음관찰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 겨울바람 부는 강변로를 걷고 돌아온 나는 여느 때처럼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린 시절 한 시점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이유 없이 자주 떠올랐던 장면이었다. 서랍 한구석에 내버려 뒀던 물건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기억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주방 식탁 앞에 서 있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햇볕이 들지 않아 낮인데도 실내가 어둑하다. 목이 바짝 말라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마음이 착 가라앉아 있다. 이 정도로 마음이 무감각하고 무덤덤한 게 이상하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나는 금방 2년 동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뺨을 맞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친구 한 명을 막 잃은 참이기 때문이다.


소도시의 초등학교에 전학 와 처음 사귄 친구였다. 누군가와 이토록 깊게 친해진 건 처음이었다. 우린 매일 붙어 다녔다. 서로의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함께 전자오락을 하고, 야구 관람을 하고, 밤의 저수지로 놀러 갔다. 친구와 어울리는 게 이토록 즐거운 일이란 걸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활발하고 축구도 잘했던 그 아이는 내 단짝이면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참 좋아했다. 집에 마음 붙일 구석이 없었던 만큼 내게 그 애는 소중한 존재였다. 한편으로 난 그 애에게 미움받을까 무서웠다.


학년이 달라지고부터 나를 대하는 그 아이의 태도가 냉담해졌다. 자주 짜증을 냈다. 사사건건 나를 무시했고 표독스러운 말을 뱉었다. 도벽이 있던 그 애는 우리 집에서 돈과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나는 13살짜리 꼬마일 뿐이었다. 난생처음 생긴 친구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아이의 날 선 태도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친구를 두둔했다. 그 애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돈과 물건은 내가 부주의해서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친구의 도벽은 점점 정도가 심해졌다. 구멍가게 잡동사니에서 시작된 좀도둑질은 점차 대담해졌고 나중에는 훔친 장난감과 생활용품을 방바닥에 가득 쌓아놓을 정도가 되었다. 친구가 다른 아이 한 명과 어느 가정집의 문을 가위로 따로 들어가던 날, 난 그 애들 옆에 있었다. 난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들이 따놓은 문으로 들어갔고 화장대에 놓인 500원짜리 동전을 집어 들고 웃었다. 훔친 삼십만 원을 친구가 제멋대로 쓰며 돌아다닐 때 나는 같이 돌아다니면서도 내심 초조해했다. 며칠 후 새벽녘에 자고 있는 나를 엄마가 깨웠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마음속 막연한 불안은 차가운 현실이 됐다. 그 애들이 집에 두고 나온 주방용 가위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나는 공범이 됐다.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다음날 부모님은 경찰서에서 빌고 또 빌었다고 했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그 아이와 어울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부모의 말을 전했을 때 그 애는 내 뺨을 때렸다. 어떻게 친구를 배신하는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우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고 했다. 뺨은 그리 아프지 않았다. 마음도 아프지 않았다. 마취주사를 놓은 것처럼 몸과 마음에서 감각을 느낄 수 없다. 그때의 나를 그저 바라본다. 왜 아무렇지 않은 걸까? 왜 화나거나 슬프지 않은 걸까? 오래전에 물었어야 할 물음을 십수 년이 지나고서야 묻는다. 오래된 과거가 유물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해선 안될 말을 했고, 화가 난 그 애는 관계를 끊었다.' 그 아이는 그런 식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편이 죄책감을 덜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알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에게 나는 친구가 아니었단 것을. 그 아이는 나를 질려했으니까. 그 애에게 이번 사건은 끈덕지게 달라붙는 나를 잘라낼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과연 아이들끼리의 관계는 단순한가? 아이들의 인간관계는 어른들의 그것보다 얕은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그땐 왜 아프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고통을 회피하고 외면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외롭고 작은 아이였다. 눈앞의 진실을 그대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명백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 눈을 돌린다.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프지 않다. 아니, 아파선 안된다. 은밀하게 깊은 구덩이를 판다. 고통을 폐기물처럼 쏟아붓고 허둥지둥 흙을 덮는다. 별 일 아니었던 것처럼 스스로 기만한다.


깊고 깊은 내부에서 폭발하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격렬한 울음이다. 내가 우는 게 아니라 마치 울음이 나를 통해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눈물은 수십 년 동안 강한 압력으로 응축된 듯 뜨겁고 짜다. 소리 지르듯이, 토하듯이 나는 운다. 아무리, 울고 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주 오래전에 터트렸어야 할 울음, 너무 늦게 터진 울음, 이제라도 울게 되어 다행인 울음.


오열하는 와중에 한편으론 모든 상황이 명료하고 또렷해진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없었는지. 왜 사람들과 친밀감이란 걸 가져볼 수 없었던 건지. 난 사람들이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랑 가까워지길 원하지 않고 내 곁에 있는 걸 꺼려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잘못된 존재이니까.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했던 게 아니라, 내가 사람들을 밀어낸 거였다. 집 안에도, 집 밖에도 의지할 사람은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타인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좋아했던 사람을 잃는 건 가슴을 난도질당하는 경험이구나. 진심으로 대한 누군가가 나를 밀어내는 일은 너무 비참하고 참담하구나. 이제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겠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을 거다."


다시는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내 주위로 담을 쳤다. 거칠고 단단한 회색 벽돌을 높이 쌓고 시멘트로 덧발랐다. 담장에는 문이 없으니 누구도 이곳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내가 나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고통을 다시 겪을 바에야 죽는 편이 낫겠지. 두터운 담장 뒤에 숨어 작은 구멍을 뚫고 세상을 바라본다. 좁고 답답하지만 이곳이 내겐 가장 안전한 장소다.


마음의 고통은 너무 크나큰 것이라 차마 들춰볼 수 없다.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작정한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 따뜻함을 그리워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난 무감각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되면 기쁨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린단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때 습득한 태도로 난 이후의 생을 살았다. 스스로 마음을 닫은 줄도 모른 채,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없단 사실에 괴로워하며. 직면하지 않고 회피한 마음의 고통은 마음을 병들게 했고 내부에서부터 나를 갉아먹었다. 상처는 부패해 썩고 다른 부위로 번져갔다. 오래도록 목욕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내겐 악취가 난다. 아무리 말끔한 옷으로 나를 감싸도 내 몸에서 나는 썩은 내를 숨길 수 없다.


나의 좁은 울타리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누구에게 마음을 주는 일은 없다. 누군가가 손을 내밀 때면 반사적으로 뿌리친다. 나는 그런 친절을 받기엔 너무 더러운 사람이니까. 마음을 여는 건 너무 무서우니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상대를 살피고, 상처 입게 될까 봐 거리를 둔다.


울고 또 울면서 마침내 명징한 진실에 도달한다. 갇힌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 삶은 무척이나 쓸쓸했다는 걸.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 왔다는 걸. 나는 두려움에 스스로를 가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기를 너무나 원했다.


한참을 미친 사람마냥 울었더니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 처음 경험해보는 맑고 고요한 마음이다. 명치 깊숙한 곳에 수 십 년간 박혀 있던 답답한 응어리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눈물과 함께 몸 밖으로 배출된 것이리라. 돌이켜보면 이 날은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깨달음은 어떤 결심으로 발전했다. 난 이날부터 나의 완고한 벽을 허물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의 걸음은 의족으로 걷는 듯 비틀거리고 나의 인사말은 처음 외국어를 발음하는 사람처럼 더듬거린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부터 천천히 배워나가면 될 일이었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더 좋은 책, 더 좋은 왕도(王道)는 없습니다. 한 마리 작은 새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 그렇습니다. 어미 새의 체온과 바람과 물 그리고 수많은 밤들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어느 날 아침 문득 빛나는 비상으로 날아오릅니다. 고뇌와 방황으로 얼룩진 역경의 어느 무심한 중도 막에 그때까지 쌓아온 회한과 눈물이 어느 순간 빛나는 꽃으로 피어오릅니다. 독서도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책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고뇌와 성찰의 작은 공간인 한 언젠가는 빛나는 각성(覺醒)으로 꽃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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