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괴로워도 계속 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무거운 군장을 매고 끝없이 걸을 때처럼, 오토바이로 외곽도로를 달리다 차가운 소낙비를 만났을 때처럼. 난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했다. 치료를 시작한 후엔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관찰했다. 관계없는 타인이 나를 보듯이 스스로의 말, 생각, 행동을 바라보았다. 내가 가진 생각을 도덕적 잣대로 재단해 스스로를 규범적인 틀에 가두는 일이 없도록 조심했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거듭해 물어서 마음의 작동원리와 생각의 근원을 알아내려 애썼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글로 적었다. 과거의 사건을 반복해 기록하면서 얻은 성과는 내게 일어난 일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게 된 것이다. 어두운 경험을 쓰는 일은 당시의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해 주었다. 글을 쓰기 전에 나는 끔찍한 경험 자체에 파묻혀 있었다. 매몰된 상태에서는 고통, 끔찍한 기억에 휘둘릴 뿐 사건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기는 어렵다. 아픈 경험을 거듭 복기함으로써 그 사건에서 나를 끄집어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마치 연기한 장면을 녹화영상으로 보는 배우처럼, 상황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당시의 풍경, 다른 사람들, 사건 전후의 맥락이 보였다. 그 일들은 일어나지 말아야 했던, 겪지 않았어야 했던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었던, 어쩌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음을 알게 됐다.
아픈 기억을 비교적 잘 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어서 안 좋은 일들을 쉽사리 잊지 못했다. 어두운 기억에 매몰돼 있을 때 상대는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일 뿐이다. 내가 아프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일을 겪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하지만 과거 사건의 인과관계를 꼼꼼히 따져보면 내가 순수한 피해자이기만 한 경우는 드물었다. 전후 맥락을 따져보면 내게도 원인이 있었다. 선철先哲 맹자의 말처럼 나는 '스스로를 모욕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어두운 기억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이들 중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 이는 드물다. 나는 청소년기부터 아버지에 대한 강한 반감을 품고 살아왔다. 마음을 치료하기 시작하고 과거의 기억이 생생해지면서 증오는 더욱 강렬해졌다.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 인간관계의 막막함, 현재의 어려움이 모두 그 사람 때문인 것 같았다. 명령하는 아버지, 윽박지르는 아버지, 습관처럼 술주정을 했던 아버지,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했던 아버지가 미웠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미움의 감정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건 절망적인 일이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끙끙거리며 가슴앓이하던 어느 날 밤, 문득 감정의 진창에서 빠져나와 증오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생각이 지금까지와는 반대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불현듯 보게 된 건 모든 책임을 아버지에게 떠넘기고 있는 무책임한 나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어둠을 내게 쏟아 붙고, 징벌하고, 통제하려 했던 아버지의 양육이 내게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했다. 아버지로 인해 내가 자라나면서 인간관계에서 반복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모든 불행이 아버지의 책임인 건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겪는 특정한 사건마다 내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나는 28살이었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혼란은 내 책임이지, 아버지의 책임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영향이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 탓으로 돌려서 내게 이로울 건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일종의 회피였다. 나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아버지를 원망하는데 모든 정신에너지를 쏟으면서 내가 책임져야 할 영역에서 눈을 돌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전에도 표면적으로는 인생이 내 책임이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누군가를 원망하며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있길 바랐다.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니까.
입 밖으로 끄집어내 남들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난 내가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내가 도덕적으로 정당한 인간이라 여겼다. 마음을 바라보는 건 내가 그다지 좋은 인간이 아니었단 사실을 부단히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나의 비겁하고 나약한 모습은 부정하고 싶을 만큼 낯뜨거웠다. 내가 나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계속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성장하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어떤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었는지 깨닫자 신기하게도 증오심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랬다. '용서하자, 원망하지 말자'라고 거듭 되뇐다 해서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용서와 화해가 그토록 쉬운 일이었다면 용서와 화해에 대해 지금처럼 많은 책이 나오진 않았을 거다. 자신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깨달을 때 인간은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일이 깨우쳐준 건 의식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전까지는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당연히 나를 나타내는 것이라 여겼다. 실상은 달랐다. 나는 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직면하기 괴로운 진실에서 달아나려고 스스로를 속였다. 그럴싸한 논리와 감정의 장막으로 진실을 보이지 않게 덮어두었다. 마음은 교묘한 꾀돌이다. 편한 걸 좋아하고 아픈 걸 싫어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만나야 한다. 진실을 만나기 위해서는 위장하고 속임수를 쓰는 마음을 관찰하고 어르고 달래야 했다. 나는 성장하길 바랐지만 한편으로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지독하게 성장을 거부했다. 내가 평생 동안 스스로를 속여왔다면 나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해왔을 터였다. 나는 나를 속이고 있는 거짓말을 꿰뚫고 진실에 도달하고 싶었다. 마음속의 묻어둔 수많은 진실을 직면해낸다면 나는 내가 만난 진실의 개수만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등산이든, 바둑이든 뒤늦게 얻은 취미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나를 관찰하는 일에 취미를 붙였다. 기억에 남아있는 과거의 일들을, 흘러가는 상념을, 사람들과 마주칠 때 떠오르는 생각을 관찰했다. 내가 가진 생각 배후에 있는 생각을 추적해 분석했다. 갱도를 기어가는 광부처럼 컴컴한 마음속을 파내려 갔다.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마음을 보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해묵은 기억을 헤집어 외면하고픈 치부를 들춰내는 일은 통증을 동반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 정체된 상태에서 막막하게 시간을 흘려보낼 때도 있었다. 자유로워지고픈 욕망, 고통에서 해방되고픈 마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이 이 일을 지속할 동력이 됐다.
이 작업은 장기간에 걸쳐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다. 정신적 성장은 공장에서 공산품을 만들듯이 짧은 시간에 뚝딱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땅을 갈고, 퇴비를 쓰고, 잡초를 뽑고, 때에 맞춰 순을 따줘야 하는 농사처럼 꾸준한 노력과 긴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서경』「태갑」 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