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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Feb 20. 2021

종류가 다른 무식함, 스몰 타임 크룩스

레이는 궁색한 인생을 단박에 뒤집어보고자 친구들과 범죄를 공모한다. 은행 근처의 피자가게에 세를 얻어 장사를 하는 척 하며 은행 아래로 땅굴을 팔 작정이다. 남편 레이와 친구무리가 못미더운 부인 프렌치는 코웃음을 치며 그들의 계획을 말려보지만 레이의 의지가 워낙 강경해 등떠밀려 허락하고 만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4인조의 작업실력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지도를 거꾸로 보고 작업을 하는가 하면, 땅굴 안에서는 안전모를 어떻게 쓸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드릴로 수도관을 잘못 건드려 물이 폭포처럼 뿜어져 나올 때 레이 일행이 상황을 진정시키려 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지미는 쟁반으로 물줄기를 반사하고 레이는 간이의자를 갖다 댄다.) 일행이 은행털이에 성공할 확률은 이들이 회계사 시험에 합격할 확률만큼이나 낮아보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프렌치는 범죄진행을 감추기 위해 카운터에서 직접 구운 쿠키를 파는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그녀의 쿠키가 맛있어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 것. 그녀의 쿠키가게는 뉴욕의 맛집으로 소문이 나고, 품절되어 팔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더니, 골목식당? 같은 유명 티비 프로그램에 출현하기에 이른다. 쿠키를 사러 자주 들락거리던 순경은 레이 일당의 땅굴 범죄를 현장에서 포착하지만, 범행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자신에게 쿠키가게 체인점을 내주기를 요구한다. 체인점은 1년만에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프렌치와 레이 일당은 미국 제과산업의 거물이 된다.



부자가 된 프렌치가 재력에 비해 덜떨어진 교양 수준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교양을 습득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느낀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미술품 도매상 데이빗에게 족집게 교양 과외를 받으려 하지만 레이는 원근법이니 모짜르트니 하는 교양이 몸에 맞지 않는 옷마냥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레이는 송로버섯과 달팽이를 먹는 부유하지만 갑갑한 생활보다 기름진 중국음식을 먹고 코카콜라를 들이켰던 예전 삶에 향수를 느낀다. 생활방식에 대한 견해가 달랐던 부부는 점점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데...



이 영화에 거창한 주제의식이나 풍자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애초에 그러려고 만든 영화는 아닌 듯 하다. 물론 이 영화에서 우디 앨런은 상류층이 액세서리처럼 걸치려 하는 교양에 냉소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고전문학과 와인에 해박해 보이는 상류층은 사실 돈욕심에 눈먼 속물들이다. 프렌치에 접근하는 예술계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된 그녀에게 기부금을 뜯어내는 일에 골몰한다. 그들에게 교양은 명품 구두, 캐시미어 코트와 다를 바 없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치장일 뿐이다. 그토록 떠받드는 교양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그들은 묻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간간이 등장하는 행위예술이나 첼로 연주 장면은 공허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이런 비판적인 시각에 깊게 빠져들 필요가 없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을 킬킬거리며 웃게 하려는 게 감독의 의도다. 이 영화의 웃음은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간에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황당한 상황설정에서 나온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식하고 덜떨어졌다. 이 무식한 인물들이 웃음을 자아내는 이유는 인물들이 저마다 ‘종류가 다른’무식함을 지니고 있고, 영화의 초반부터 종반까지 인물들이 뚜렷한 개성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때문이다. 


 
 우디앨런의 코메디에는 여유와 능숙함이 있다. 그는 코미디에는 억지로 밀어붙인 웃음뒤에 찾아오는 허무와 피로감이 없다. 그는 사물을 보는 색다른 시각이 재미를 만든다는 걸 체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저녁식탁에서도 상점 지하실에서도 얼마든지 관객을 웃게 한다. 지치고 머리가 복잡해 생각없이 쉬고싶을 때 ‘스몰 타임 크룩스’를 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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