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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Dec 21. 2022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주의!!: 긴 글을 힘겹게 읽어도 부자 되는 방법은 안나옴)

입대한 지 일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무료한 일요일을 보내던 나는 진중문고 주변을 서성거리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란 책을 빼내들었다. 책이 소설인지 수필인지도 모르는 채 무턱대고 읽기 시작했다. 저자의 가난한 아버지는 성실한 월급쟁이였지만 죽을 때까지 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의 아버지는 커다란 사업체를 몇 개나 운영하며 풍족한 삶을 누렸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 아버지에게서 돈에 대한 수업을 들으며 성장한 저자는 돈에 대해 독자적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었다. 미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다 전역한 그는 금융컨설팅 사업으로 수백억을 벌어들였고 40대 중반에 은퇴했다. 이후에는 돈버는 법에 대한 책을 쓰고 강연을 했다. 그가 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전 세계에 4천만부 이상 팔렸다.


부자 아버지에 따르면 부자들은 부자가 되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할 뿐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아서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자가 되려면 두려움울 통제하는 법을 익혀야 하며 돈 버는 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부자는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일에서도 기회를 포착하는 안목있는 사람들이다.


당시의 나는 부자아빠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졌다. 군인월급 6만원이 수입의 전부였으면서 탄약고에서 야간근무를 설 때 후임에게 재테크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저자는 성공담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전역할때까지 이 책을 세 번 더 읽었다. 읽을 때마다 취한 것처럼 살짝 마음이 들떴다. 이제껏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 책은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도 돈 걱정 없이 펑펑 놀면서 살 수 있다! 이런 좋은 책을 왜 이제야 보게 된 걸까!


전역한 후에는 재테크 공부를 해보려고 워렌버핏의 가치투자전략, 회계 무작정 따라하기 같은 책을 샀다. 경제일간지를 받아보았다. 도서관에서 주식투자에 대한 책을 빌려다 매일 밤 꾸벅꾸벅 졸면서도 읽어보려 애썼다. 라디오에서 경제뉴스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주식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재테크 공부는 별 발전없이 지지부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같다. 투자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우선 소액이라도 주식을 사서 직접 부딪쳐보거나 부동산 법원경매라도 구경해봐야 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서 책만 뒤적이고 있으니 재테크 공부가 별로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또 돈을 모으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알바였지만 나는 부모님이 학비와 용돈을 대주고 있어서 절실하게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입으로만 재테크와 주식을 말하고 다녔지 실제로는 돈을 모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2008년도 미국발 경제위기의 여파로 한국증시또한 타격을 받았다. 이천포인트를 돌파할 거라고 기대되던 코스피지수가 연일 뚝뚝 떨어지더니 천백 포인트까지 떨어졌다. 뉴스에는 연일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쏟아졌다. 내가 다니던 경영대학의 한 교수는 오히려 지금이 장에 들어갈 적기라고도 했다. 아버지가 주식계좌에 수천만원을 넣어두었다는 한 지인은 매일 수백만원 가까운 돈이 날아가자 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매일 다툰다고 했다. 작은 운동용품점을 운영하던 분이었는데 우연히 들른 증권사직원의 권유로 주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욕망은 순전히 한 사람의 내부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주입되기도 한다. 20대의 나는 돈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보고 나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부자아빠가 심어준 욕망에 따라 10억쯤은 모아야 한다는 막연한 목표를 가지게 되었고 재테크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큰 돈을 벌면 행복해질까? 아니, 그전에 이것이 진짜 내 욕망이기는 할까?’같은 물음은 던져보지도 않았다. 이 책은 사람이 큰 돈을 욕망하는 건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당연하다는 전제에서 쓰여졌고 나는 그 전제까지 의심없이 수긍해버린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나는 한 개인으로서 재테크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 돈을 좇는 사회적 흐름에 휩쓸렸던 것 같다. 내가 군대에 있던 이천년대 중반은 ‘일단 벌고보자’는 사회적 흐름이 거세지던 시기였다. 코스피 지수가 큰폭으로 상승했고 적립식 펀드를 권유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중대장은 훈화시간에 주식투자로 돈 번 얘기를 자랑처럼 하며 우리에게도 주식에 관심을 가지라고 권유했다. 미국에서 출간된 재테크 서적이 진중문고에 있었던 것도 그런 흐름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성실하게 자영업만 하던 지인의 아버지가 주식투자를 하게 된 것도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전혀 상관없어보이는 지인의 아버지와 나는 같은 물결에 휩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옆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급류에 휩쓸리고 있었다.


돈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어서 돈을 벌라고 부추기는 사회적 압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걸 느낀다. 경제전문 프로그램에서만 다루던 부동산 이야기가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유튜브에는 자칭 돈의 현자들이 투자를 안하면 뒤쳐진다는 불안감을 조성한다. 지하철을 타면 휴대폰 주식창을 들여다보는 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부의 상한도 훨씬 늘어났다. 이천년대 중반만 해도 십억정도 있으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40~50억원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트코인이 500%, 1000%, 3000%의 수익률을 내는 걸 경험한 사람들은 더 이상 10%의 투자수익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의 욕망은 예전보다 훨씬 덩치가 커졌다. 


이 압력은 직접적으로 투자를 권유하는 방송과 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기처럼 우리의 일상을 감싸고 있다. 그것은 ‘내 연봉이면 누구랑 결혼할 수 있을까’같은 결혼정보회사의 광고문구에, 유명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외제차 사진에, ‘나도 예전에는 최저임금 노동자였다’는 유명유튜버의 말에 은근히 스며 있다. 이 문화는 돈을 좇으라고 등떠밀면서 그것을 좇으면서 감내해야 하는 불안과 고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한 사회의 집단적인 의식과 분위기는 구성원들 개개인의 사고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말만 해도 주변에 주식투자 하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때는 섣불리 주식에 손댔다간 쪽박찬다는, 투자에 대한 경각심이 남아있던 시기였다. 전역 당시 내가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또래 친구들은 나를 별종으로 보았고, 쓸데없는 데 관심갖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조언했다.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재테크는 일종의 대중문화가 되었다. 주식과 부동산은 스포츠나 연예인이야기 만큼이나 흔한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 주변에 주식 안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안정지향적이라 절대 주식같은 건 안 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도 주식을 한다. 주식을 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자유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 작동하고 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주식을 하는데 나만 안하고 있으면 뒤쳐질까 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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