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글쓰기 모임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책 한권 낸 사람이 무슨 글쓰기 모임인가? 내가 그만한 역량이 있나?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함께 써가는 사람의 정체성을 가진다면
이 모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올해도 여름부터 가을까지 거제4동 해맞이글방에서 <나에서 출발하는 글쓰기> 모임을 진행했다. 얼마전에 마지막 모임이 끝났다.
모임 제목이 <나에서 출발하는 글쓰기>인 건 이 글쓰기 모임이 참여자들이 스스로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좋은 글의 소재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화려한 장소나 큰 규모의 사건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에, 일상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내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기에, 자신에 대한 글은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며 후련해지고, 스스로를 잘 알게 되고, 성장하길 바랐다. 글쓰기라는 쉽지않은 과정을 거치며 글쓰기의 즐거움과 보람, 글쓰는 맛을 알게되길 바랐다. 모임을 하면서 문장, 문단, 비유 같은 글쓰기에 대한 기술적인 면을 말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써온 글에 공감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개인은 불완전하다. 인간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고립된 상태로, 혼자만의 노력으로 온전해지기는 어렵다. 글쓰기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누군가에 공감받지 못하면 자기확신을 가지는게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글써온 맥락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모르는 건 물어보며 사람들의 마음을 더듬어보려 애썼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정확하게 공감해주는 게 참 쉽지 않다.(공감에 대한 공부와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진행을 하는 나도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타인에 대해,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새롭게 배웠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저마다 절절하고 안타깝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오랫동안 가꿔온 생각과 고유한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의 삶과 생각의 결과 취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왔지만 저마다 일정한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을 통과해왔다는 점에서는 어느정도 닮아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일상적 대화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실제 모습과 글쓰기는 내 예상을 항상 뛰어넘었다. 이 사람의 글쓰기 수준은 이정도구나, 짧은 시간안에 향상되기가 쉽지 않겠구나 예상했던 사람이 몇차례의 모임후엔 이전의 자신을 뛰어넘는 글을 써왔다. 사람들은 몇차례의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도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란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다면 경계해야 할 건 내 선입견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 선입견 이상이다, 이 사람은 이러저러한 사람이란 규정 자체가 타인의 모습을 제대로 못보게 하고, 그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글을 쓰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글이든 처음 쓰듯 새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사람을 볼 때도 부지런하게, 매번 새롭게 봐야 한다,
모임은 다행히도 잘 마무리 됐다. 2주에 한번씩 일곱편의 글을 쓰는 동안 사람들은 성실하게 참석해주셨고, 매번 글도 정성껏 써오셨다, 은유작가가 글쓰기 모임을 하다보면 글을 안써오는 사람도 있어서 속상하다고 했는데, 은유씨같이 역량있는 분 모임에서도 글 안써오는 분이 있는데, 우리 모임에는 대부분 글쓰기 과제를 성실히 해오셨다. 현장 참석이 어려웠지만 온라인으로 빠짐없이 글써주신 분도 있고, 일정이 있어 참석이 어려울 때도 글만은 성의껏 작성해 보내주신 분도 있었다. 이렇게 훌륭한 참가자들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진행자로선 복받은 일이다.
사람들의 소감
- 글쓰기 시작하며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지만 내면에서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 나보다 힘있는 사람에게도 내가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게 됐다
- 글쓰기가 간편하면서도 강력한 자기수행의 도구란 걸 느꼈다
- 멋모르고 모임에 참여했는데 글도 몇 편 쓰고 사람들 얘기에서 많은 걸 배웠다
- 피할 수 없는 주제를 겨루기하듯 썼다, 쓰고나니 무거운 짐 내려놓은 듯 맘이 가볍다
- 이 공간에선 나를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나로 가득찼던 마음에 타인의 말을 들을 공간이 생겼다
- 멈췄던 글을 다시 쓸 수 있어 기뻤다
"선생님이 신경안쓰시는 것 같아도, 정말 잘 들어주시고, 정말 성의껏 읽어주신다. 그게 큰 힘이 됐다" 이 말이 모임 진행하는 사람으로는 참 큰 위로가 됐다. 정성이 별거아닌 듯 해도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이란 철호님 말씀을 이번 모임을 통해 실제로 확인했다.
이 모임은 내가 이끌었다기보다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갔다. 사람들은 글쓰기를 통해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아픈 기억들을 드러내고 스스로의 어두운 마음과 용기있게 대면했다. 성심성의껏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조심스레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감정에 공감했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마음을 내서 열심히 쓰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부지런히 써야겠다는 조바심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