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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Nov 04. 2022

그곳의 백화점, 여기의 시장

사진 속 풍경이 돼버릴지 모르는

내가 다니는 직장은 시장통에 있다. 오일장이 열릴 때면 시장 골목은 상인과 손님들로 붐빈다. 할머니, 추리닝 입은 아저씨, 초등학생, 공장 점퍼 입은 이주노동자, 엄마손을 잡은 아이... 길목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 급한 일이 있어도 빨리 갈 수가 없다. 앞사람 발걸음에 맞춰서 주위를 살피며 걸어간다. 굽이굽이 시장통을 매우고 있는 수백의 인파가 하나같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고 상상하면 웃음이 난다. 이 느린 속도가 묘한 위안을 준다.     


상담소에서 한참 동안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머리 좀 식혀야겠다 싶을 땐 시장 구경을 나온다. 목 좋은 곳에 있는 분들은 자릿세를 냈을 것이다. 매번 장날 때마다 같은 분들이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자릿세를 받는 곳인 만큼 행상들이 고시원의 방 배치처럼 오밀조밀 붙어있다. 정류장 근처 가게 앞에 자리를 편 할머니들은 가게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것 같다.      


쪼그려 앉은 할머니 앞에 돌나물, 도토리묵이, 쑥이 담긴 작은 갈색 딸기대야가 놓여 있다. 쪽파가 햇볕을 받아 시들시들하다. 저 쑥 한 바구니를 마련하려고 어느 풀밭에 쪼그려 앉아 한참이나 쑥을 캐고 다듬었을 것이다. 정류장 근처 할머니들의 장사에도 암묵적인 관습과 질서가 있다. 우선 이곳에서 야채를 파는 건 할머니들밖에 할 수 없다. 할아버지나 삼십대 남성이 정류장 근처에 쪼그려 앉아 고구마순을 까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이십대 여성이 이 일을 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일은 뽀글뽀글 파마를 한 할머니들에게만 허락된 것 같다.     


장이 서기 전에 농사지은 것들을 끌차 한가득 힘겹게 밀고와서 저녁까지 장사를 한다. 할머니들은 야채말곤 팔지를 않는다. 닌텐도게임기도, 라디오도, 만화책도, 외장하드도 아닌 애호박, 늙은호박, 깐파, 깐마늘, 홍시, 상추를 판다. 땅에서 나온 순수한 작물을 곧장 요리할 수 있게 깔끔히 다듬어 내놓는다. 일차상품을 그대로 팔기에 생산해서 판매하기까지 누군가를 착취하지도,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마늘과 고구마순 껍질을 까고 천원, 천오백원 더 얹어받을 뿐이다. 이렇게 정직하고 착한 일은 할 사람은 할머니들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장사꾼 중에는 말을 맛깔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큰 목소리로 손님을 끌 때면 멈춰서서 유심히 들어본다.     


들어보소, 일단 첫째는 돈을 받고 팝니더, 돈 안받고는 안줍니다. 둘째는 남자분들 전립선으로 고생하는 분들한테 직빵이고, 여자분들 전립선에도 직빵입니더.(여자에게도 전립선이 있나?) 아이고, 맹구엄마다, 맹구엄마. 칠천원짜리를 오천원에 준다해도 안사가네.     


할매, 이거 콜라겐은 영양소 보충에 좋고, 피부에도 좋습니더.     


이 놈의 돈벌어가 뭐할라고 내가 이지랄을 하는가 몰라.     


사람들과 안부딪치려 조심하며 앞사람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횟집 앞에 주차된 일톤 트럭 짐칸을 괜시리 손등으로 통통 두드려본다.

이쁘장한 베트남 여인을 힐끔 곁눈질한다.

막 튀겨져 나온 노란 튀김옷을 입은 고추튀김

붉은 양념의 떡볶이와 오뎅를 주걱으로 휘젓는 주인아줌마

드셔보시고 가세요~

군복무늬 잠바를 입고 담배를 태우며 유튜브를 보는 계란장수     


네모난 양철통마다 듬뿍 담긴 시뻘건 양념의 오징어젓, 명란젓, 총각김치 

이집트 산 병아리콩, 중국산 참깨, 올벼쌀, 서리태, 호랑이콩

방금 씻은 듯 뽀얀 콩나물, 모락모락 흰 김 나는 두부, 다라이 가득 넘쳐나는 취미역

토란, 꽈리고추, 아삭이고추, 단배추, 얼갈이, 노지시금치     

철제 우리에 갇혀 있는 빨간 눈의 토끼 세 마리, 쉴새없이 뺙뺙뺙뺙 소리 내는 중병아리들

청둥오리 두 마리는 서로를 부리로 툭툭

종이박스안에서 서로의 몸에 얼굴을 파묻는 새끼 똥개 네마리     


예전부터 시장이 좋았다. 시장통을 돌아다니면 왠지 마음이 편했다. 오랫동안 그 까닭을 몰랐는데 최근에야 알았다. 이곳에선 멋지고 잘나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으리으리한 건물에 윤나는 바닥에 직원들도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다. 백화점은 구질구질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걸인과 구걸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곳에선 왠지 나도 못나선 안될 것 같아 긴장하게 된다. 그곳에 가려면 통장에 돈도 어느정도 있어야 되고, 옷도 멀끔해야 해. 잠바 상표택에 55만원이라고 적힌 걸 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돌아설 수 있어야 해. 여기선 얕보이면 안돼.     

뻥!!! 

초등학교 후문쪽에는 장날마다 뻥튀기 장수가 옥수수며 쌀보리를 튀겨준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늙은 아저씨 옆에서 그의 아들인지 조카인지 모를 통통하고 덩치 큰 청년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을 거든다. 그 옆의 엿장수 아저씨는 과장되게 편곡한 뽕짝을 큰 소리로 틀어놓고 가위춤을 춘다. 일부러 빨강, 파랑 누더기를 덧댄 두사이즈는 작아보이는 마이를 입고, 볼엔 주근깨를 찍고, 입술주변엔 온통 시뻘겋게 루즈를 칠한 채로. 

어느 중년의 아저씨는 박스도 깔지 않은채 바닥에 철푸덕 다리뻗고 왼손에는 부침개 조각을 들고 뒷벽에 등기대 앉아 소주를 마신다. 과일파는 할머니는 입가에 노란 콩가루를 묻히며 시루떡을 먹고, 여러번 사용해 루즈자국이 남아있는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 마신다. 나도 언젠가 이들처럼 늙을 것이다. 피부는 볕에 그을려 시뻘개지고, 주름이 깊게 패일 것이다.     


이 풍경은 정겨우면서도 어딘가 서럽다. 뻔한 전개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왜이러지 눈물이 나는 <선생 김봉두>같은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직업도 변변찮고 농담도 썰렁한 내 오래된 친구를 보는 것 같다. 쉬는날 종일 머리도 안감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드라마를 보는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이곳이 편했던 것 같다. 허름해도, 추레해도 괜찮은 이곳, 패딩 점퍼안에 꼬질꼬질한 흰 런닝구 하나 입고 나와도 그려려니 하는 곳. 얼굴 시꺼먼 장사꾼들이 농을 하고, 마실나온 할머니들이 장사꾼과 한담을 나누는 이곳이 편했던 것 같다. 인터넷과 티브이는 끊임없이 이쁘고 잘생기고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여주니까. 외제차를 몰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게 정상적인 삶이라고 말하니까. 그걸 보다보면 그러지 못한 나를 부끄럽게 여기게 되니까. 2022년인 지금 이곳만 1980년이나 1985년인 것만 같아서. 아주 어렸을 때 살던 동네로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했던 것 같다.     


언젠가 이곳이 사진속 풍경이 되버릴까 겁난다. 초라해도 아무렇지 않은 곳, 자신의 초라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들이 없어질까봐. 밝은 조명아래 깔끔히 비닐랩핑된 야채들, 냉장고마다 칸칸이 채워진 가공식품들, 얼마예요? 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현금과 카드와 상품의 교환만 있는 그곳만 남을까 겁난다.  뻥!!! 뻥튀기 소리와 시끌벅적하고 들뜬 분위기. 이것들을 볼 시간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을까봐 겁난다. 그건 내가 시장에서 본 그들이 많이 나이들었기 때문이고, 밝은 표정에도 불구하고 다소 지쳐보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 도시의 터미널근방에서도 던킨도너츠와 베스킨라빈스와 씨유편의점을 볼 수 있다. 어느 소도시를 가도 주변풍경이 엇비슷하다. 세련되고 거대하지만 획일적인 것들이 작고 고유한 것들을 자꾸 밀쳐낸다. 풍경이 똑같이 바뀌면서 오랫동안 가꿔온 지역의 문화와 관습과 삶이 사라져 간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사람들의 삶을 지켜주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빼앗겨왔다. 산과 강이 그렇고 구멍가게와 골목길이 그렇고 이웃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다. 이웃과 친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불안해서 돈에 매달린다. 예전부터 시장은 물건을 사기위한 장소만은 아니었다. 시장은 민중들이 수백년에 걸쳐 만들어온 생활문화의 총체다. 전통시장이 사라지면 우리는 좀 추레해도 괜찮은 공간,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도 되는 공간, 내가 나인채로 머물 수 있는 공간 하나를 또 잃게 된다.          


* 이 글의 제목은 ‘그곳의 밤, 여기의 노래’라는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제목을 모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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