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 사람 Dec 12. 2018

나는 .... 희망한다.

<쇼생크 탈출>을 보고

탈옥 능력은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이 타고나는 재능이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의 대부분은 형기를 채우는 편을 선택한다. 그래서 탈옥을 시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빠삐용,프리즌 브레이크 까지..'쇼생크 탈출'은 제목 그대로 쇼생크 감옥을 탈출하는 내용이지만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명작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탈옥에 대한 이야기여서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한 명의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약 앤디가 스스로의 입으로 감옥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면 관객들은 그다지 큰 감흥을받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앤디는 자신의 수감생활을 자랑하듯 
떠벌릴 사람이 아니다. 이야기는 쇼생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살인죄를 인정하고 20년째 수감생활중인 레드의 입을 빌려 진행된다.  

 

새로 들어온 죄수가 악질 간수장 하들리에게 심하게 구타당한뒤 머리가 깨져 의사도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죄수들은 말을 잃는다. 그들은 죽은 죄수가 감옥에 온 첫날 밤 눈물을 흘리느냐를 놓고 담배 내기를 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앤디만이 묻는다.
 '그의 이름이 뭐였죠?.' 


 앤디가 목숨을 걸고 하들리에게 동생의 유산을 세금 한푼 안내고 상속받게 해준 뒤 요구한 사항은 자신의 동료들에게 시원한 맥주를 마시게 해주는 것이었다. 앤디는 동료들에게 '피가로의 결혼'의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기 위해 한 달동안 독방에 있기를 선택했다.
 그는 갇혀 있는 동료들에게 자유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회색의 차가운 벽에 갇혀 있더라도사람의 마음속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우리가 희망을 가져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레드는 앤디의 생각을 부정한다. 희망처럼 이쁜 말은 바깥세상에서야 의미가 있겠지만 수십년 혹은 평생을 혹독한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에겐 현실감각을 잃게 만드는 위험한 단어일 수 있다. 레드의 생각에는 일리가 있다. 


 사실 앤디로서도 희망을 가지는 일이 그리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내와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징역 초반의 2년간 수시로 나쁜 무리에게 구타당하고 강간당했다. 교도소장은 그 자신의 탐욕을 위해 유일하게 앤디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토미를 살해한다. 앤디는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쇼생크에서 19년을 보냈다. 

 
 앤디는 위험을 감수하며 탈옥을 감행했다. 포스터로 감춰놓은 기다란 구멍을 지나
축구장 4개 길이의 악취나는 하수관을 기어서 그토록 원했던 자유로운 공간에 도달한다.
앤디가 탈옥한 직후 어둠속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오물에 찌든 죄수복을 벗어버리고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은 관객의 시선을 빼앗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정말 주목해야 부분은 앤디가 탈출을 위해 19년 동안 작은 조각망치로 굴을 파왔다는 사실이다. 앤디의 희망은 현실의 삶 속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희망에 대해 지독하게 냉소적이었던 레드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국경을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친구를 만나 악수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기를 희망한다.
나는 ..... 희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공시생의 단기알바 체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