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로 기억되고 싶어서

by 이숨



벌써 지난달의 일이다.

남편의 개원 1주년을 맞아 작은 케이크를 주문했다. 1년째 주6일을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작은 기념회를 열어주고 싶었다. 얼굴이 또렷한 사진을 챗GPT에게 부탁해 도안으로 만들었고, 뜻밖에 괜찮은 그림이 나와 케이크숍에 전달했다. 케이크에 그려진 캐릭터가 귀여웠다. 한 사람만을 위한 기념일 분위기가 나서 좋았다.



그날은 아이가 생후 70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초보 부모의 주말은 언제나 정신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숨쉴 틈을 만들어 거실 테이블에 케이크를 올렸다. 언제 썼는지도 가물가물한 삼각대도 찾아냈다. 사진을 찍는 건 늘 부담되지만 기록하고 싶었다. 엄마가 되고 난 뒤로는 현재의 모습이 어떻든 남겨 두자는 마음이 커졌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살펴보다 문득 놀랐다.

피로에 찌든 와중에도 내 웃음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적어도 사진에서는 지금껏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억지로 지은 미소도 아니었고 얕게 깔린 긴장조차 없었다. 그저 편안했다. 마치 오랜 시간 그 표정으로 살아온 듯 자연스러웠다.



나는 무표정이 언제나 뚱하다.

심지어 인생에 한 번인 웨딩 촬영 때 “살면서 오해 많이 받으셨겠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이다.

어린 한때는 차가운 표정을 방어막처럼 쓰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편안한 미소가 타인의 마음을 얻는 진정한 무기라는 것을. 그 즈음부터 이목구비보다 사진 속 표정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러나 매순간 거울을 보는 게 아니니 신경을 써도 며칠 이상은 가지 않았다. 그러니 뚱한 표정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일이 생기면 최선을 다해 웃었지만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그런 내가 출산 70일 만에, 인생 처음으로 자연스러운 웃음을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아기를 낳고 난 뒤부터 의식적으로 웃었다. 특히 수유하며 아기와 눈을 마주칠 때.

양치조차 후닥닥 끝내고, 머리 감기가 사치스러운 일이었던-지금도 마찬가지지만-지난 두 달. 표정에 쓸 에너지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내 무표정이 얼마나 차가운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더욱 웃으려 했다. 아기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볼 엄마의 얼굴이 따뜻하기를 바랐다. 세상에게 환영받으며 자랐으면 했다. 물론 다 나만의 기억이 되겠지만.



발달에 도움이 된다니까, 애착 형성을 해야 아기에게 좋다니까 더 표정을 관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 속 웃음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결혼식 날조차 엉엉 울어서 예쁘게 웃은 사진 하나가 없는데 머리만 겨우 감고 찍은 이 사진에 인생 최고의 웃음이 남았다니.

아, 난 지난 두 달 간 참 행복했었구나.



부모가 자식을 키우지만 자식도 부모를 키운다고 한다. 예전엔 그 말이 추상적이고 다소 과장된 문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주 조그만 아기, 그 작은 사람이 엄마의 아주 오래된 습관을 바꾸고 있었다는 것을.

매 순간 인식하지 못했을 뿐 마음이 먼저 변했고, 얼굴은 그 마음을 따라간 것뿐이었다. 아마도 그동안 짓지 못했던 표정을 아기가 먼저 끌어낸 것일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낮에는 안달복달, 밤에는 나의 미숙함을 자책하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 수유를 하다가도, 잠결에 울음을 달래다가도 문득 ‘내가 잘하는 게 맞는가’라는, 당장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미완성이다. 하지만 아기가 이 서투른 초보 엄마를 바꾸고 있다.



그날 찍었던 사진을 다시 꺼내본다.

남편과 생후 70일의 작은 사람. 그리고 70일 만에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웃은 나.

카메라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기 옆에서 나는 이미 새로운 사람이 되어간다. 아마 이 작은 아기는 앞으로도 나를 많이 바꿔 놓겠지. 어디까지 변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아이 덕분에 더 편안히 웃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 사실이 요즘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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