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엄마를 만나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며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엄마 영상도 많이 찍어두려 했는데..
결국 엄마는 저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2020년 10월 22일, 안개가 자욱하던 날의 아침 엄마가 영면하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동생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엄마가 아팠지만 이렇게 갑자기 가버릴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엄마와의 마지막 통화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엄마? 누구 엄마가? 누구 엄마가 죽었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는데... 믿어지지가 않아서인지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제가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남편이 가족들과 회사 동료들에게 차례로 알리고 대사관에 문의하여 자가격리 면제서를 요청하고 이탈리아에서 당일 저녁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우리는 해외 입국자 그중에서도 인도적 차원의 자가격리 면제 대상자로 분류되어 공항에서 코로나 검사를 진행 후 7시간 대기와 또 4시간여 택시를 타고서야 발인 당일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엄마의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이제는 엄마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요.. 30시간을 달려오면서 먹지도 자지도 않았는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마저 잊게 만드는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상태였습니다. 고맙게도 남편이 묵묵하게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옆을 지켜주고 절차를 진행해 주어서 엄마를 만나러 오는 그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큰일을 당하면서 남편이라는 존재의 거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쉽게 마음먹을 수 있는 일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다 보니 엄마와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보내었습니다. 오래도록 제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아가겠지요. 떠난 자는 말이 없고 남은 자는 빈자리를 오롯이 견디며 앞으로의 일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엄마를 보내고 집에 발을 디딘 순간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발버둥을 치던 엄마가 겹쳐 떠올라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울면 억지로 참던 아빠가 무너질까 봐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살아생전 변변한 옷가지 하나 없이 내 몸 하나 챙길 줄 모르고 허망하게 떠나버린 엄마.. 평생 고생만 하다 떠나버린 불쌍한 우리 엄마. 엄마의 흔적들을 정리할수록 엄마의 추억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억지로 잊으려 애쓰지 않고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기려고 합니다. 많이 아팠지만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히 쉬세요. 그리고 제발 내 꿈에 한 번만 나타나 줘.. 너무 보고 싶다.
엄마... 엄마..... 사랑해.
10월 말... 이탈리아는 확진자가 급증하여 2만여 명에 육박하며 2차 파동이라는 예상했던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도 이탈리아에서 아등바등 버텨내던 우리가 갑자기 한국에 머물게 되면서 이제는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 있을지가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죽을 때 까지도 우리 생각만 하며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조국에 머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대 할머니와 엄마를 연달아 잃은 이토록 다사다난하고 허망한 2020년 이라니...
사실 아직도 실감은 나지 않지만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봐 주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무너지지 않고 더 씩씩하게 살아내겠습니다. 어머니를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위해 위로해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