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안녕 엄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리부부 Jan 12. 2021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억지로 울었다.

 엄마의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상복을 갈아입었지만 코로나의 상황으로 썰렁한 장례식장이 쓸쓸하게 느껴질 뿐 내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나는 억지로 눈물을 쏟아내려고 흐느끼고 있었다. 억지로 울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더 격하게 목놓아 울었던 것 같다. 한바탕을 울고 나보다도 더 걱정이 되었던 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렸는데 생각해보니 성인이 되고서 처음으로 잡아본 아버지의 거친 손이었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 나는 감히 상상도 안되지만 부모를 잃은 나의 슬픔보다 곱절은 고될 것이라고 그의 공허한 눈빛에서 짐작만 할 뿐이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친척들이 하나둘씩 도착했고, 위로의 인사말을 건네주었다.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장례 절차를 마치고, 장례비 계산을 하고 화장터로 향했고 엄마와 진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가 따뜻한 한 줌의 재가 되어 내품으로 왔다. 엄마가 점점 식어갔고, 차가운 땅속에 영원히 잠들었다. 엄마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사방에 흩어진 약봉지며 힘겨운 항암치료의 흔적들이 집안 곳곳에 남아있어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발버둥을 쳤을 엄마가 겹쳐 떠올라 그때서야 어쩔 줄을 몰랐다. 특히 화장실에서 엄마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면서 소리 없는 눈물을 삼켰는데 비록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엄마의 마지막 흔적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손으로 치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 끝까지 자식 생각만 하다 가신 우리 엄마. 엄마의 흔적들을 정리할수록 엄마의 추억은 더욱 또렷해졌다.




장례식장에서는 억지로 울었지만 진짜 눈물은 뒤늦게야 터져서 오래도록 참 힘겨웠는데, 잠들 때, 밥을 먹다가 또는 그냥 멍하니 있다가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멈추기가 힘들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이 나는 바람에 옆에 있던 남편이 참 많이 난감해했지만 울 수 있을 때 실컷 울고, 마음껏 슬퍼하기로 했다. 이 감정도 언젠가 무뎌질 테니까. 나처럼 아버지도 가끔 얼굴이 울긋불긋하실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우리 집 강아지 똘이를 아버지 무릎에 앉혀 드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함께 하게 된 강아지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었는데 이 작고 소중한 존재 덕분에 우리 모두가 슬픔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참 미웠지만 지금은 혼자 남은 아버지가 먼저 간 엄마보다 안쓰럽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잘 지켜드려야겠다. 누가 봐도 정말 괜찮구나 싶게 우리 씩씩하게 살아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