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리부부 Dec 10. 2021

남편이 이탈리아 영주권을 받았다.

인생 2막 

남편이 2014년 1월 17일 이탈리아에 오고 8년 만에 이탈리아 영주권을 받았다. 

2021년 12월 10일 남편의 인생 2막을 기념하여 이 글을 쓴다. 


사실 이탈리아는 영주권이라는 개념이 없다. 학생 또는 노동비자로 1년, 2년마다 한 번씩 체류허가 갱신을 하며 나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물론 현지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예외이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은 누구나 캔에 붙은 '유통기한'처럼 각자의 유효기한에 맞춰 생활을 하고 또 연장하는 일을 반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 나라에 살았을 때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아도 될 일인데 살아보니 해외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체류허가 문제였고 이것이 연중행사처럼 나를 괴롭혔다. 이탈리아처럼 까다로운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내는 일은 정말이지 피눈물 나는 노력이 요구된다. 내가 끈질기게 붙잡지 않으면 8까지 끌어올렸다가도 다시 0이 되는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합법적인 틀 안에 들어가려고 노력해 왔다. 



노동비자 소지자는 소득 신고 후 5년이 지나면 영주권이나 다름없는 장기 거주증(Permesso di Soggiorno Lungo Periodo)을 취득할 수 있다. 이렇게 말로 하면 쉬워 보이나 체류허가증 갱신을 하면서 스트레스로 살이 쭉쭉 빠지기도 했다. 합법적인 거주지와 매 달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업주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집주인과의 관계도 중요했다. 그놈의 합법적인 '집'을 위해 집에 있는 환풍구, 창문, 침대 개수까지 맞춰야 했다. 그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으나 이를 박박 갈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여행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라지만 행정업무가 느리고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나라임을 실감케 했다. 정확히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어떤 과정이 요구되는지 누구도 명확하게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행정 직원들조차도 사람마다 말이 다 달랐다. 이민국에 가야 하는 날에는 심장이 떨려 잠도 못 자고, 말을 못 할 때는 수없이 무시도 당했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언어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말은 종이에 써서 달달 외워야만 했다. 체류허가증을 신청하고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지장을 찍고 받기까지 8개월, 그리고 4개월 뒤에는 다시 체류허가증 신청 절차. 이 무시무시한 일을 어쩌면 남편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배우자인 나에게는 2년의 유효기한이 생겼다. 오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동안 수고한 우리를 위해 파티를 해야겠다. 수고했다. 이상호 김혜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