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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부부 Jul 23. 2022

내가 세상에 없는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

안녕, 엄마



상처를 직면하여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상처와 공존하여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엄마를 떠나보낸 후, 삶과 죽음에 대한 글을 많이 읽었다. 상처가 점점 깊어져 소리내 울 힘조차 없을 때 나는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 를 접했다. 88년, 사고로 아들을 잃은 후 비극의 가운데에서 짐승의 심정으로 쓴 글. 그런 글이 필요한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다.


매일 마시는 술로부터 최소한의 칼로리를 수혈받는 나날들 속에서 매일 밤 가능한 모든 언어를 동원해 자신이 믿어온 신을 모욕하고, 자식을 잡아먹은 애미로서 자신을 경멸 하면서 미쳐지지 않아서 토해내듯 글을 썼다.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미쳐지지 않아서 글을 썼다. 나는 이 말에 공감을 한다. 어쩌면 나도 작가처럼 미쳐지지 않아서 '엄마의 죽음'에 대한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글의 소재로 사용하냐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처를 직면하여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상처와 공존하여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함을, 나는 쓰면 쓸수록 느꼈다. 힘든 감정을 글로 쓰면 쌓여있던 것들이 쓸려내려가는 희열을 느낀다. 다만 없는 사람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이 남은 가족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쓸 것이다.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슬픔을 드러내고 회피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엄마 역시 아흔을 훌쩍 넘겨 숨을 헐떡이는 처지였기에 당신 딸이 ‘암’이라는 몹쓸 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계셨다. 외할머니는 항상 우리 엄마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내쪽으로 옮겨 내 손을 붙잡고 눈물을 훔치곤 하셨다. 당신 자식 중 가장 힘들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아픈 손가락이었음을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인지하고 계셨던 것이다. 두 사람은, 아니 우리는 서로를 안쓰러워 하다가 끝끝내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 눈물이, 시선이 버거워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자주 찾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한 세기를 살아낸 노모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당신 딸의 죽음을 아셨다. 당신 딸이 아팠다는 사실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아차린 할머니는 까무룩 정신을 잃으며 당신조차 세상을 등질뻔하여 가족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여섯 자녀 중 당신의 귀한 막내딸을 작별 인사도 없이 가슴에 묻은 할머니는 어김없이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부르짖으며 마른 눈물을 쏟아내고는 한동안 앓으셨다고 했다. ‘암시롱 않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도, 할머니들의 ‘내가 빨리 죽어야지.’라고 내뱉는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도 이제는 다 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날, 남은 자와 떠난 자들 사이에서 나는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한 이의 삶도, 오래도록 헐떡이며 연명해온 이의 삶도, 남겨진 우리의 삶도 별반 다를 것이 없구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별의 인사를 남기거나, 벼락처럼 떠나 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삶. 그 둘 중 하나가 우리의 삶인 것이다. 어떤 이별도 결코 가벼울 수 없으며 크고 작음을 재고 따질 수 없다. 



우리는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단 한 가지 공평한 것은 우리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이다. 한없이 비교하며 치열한 삶을 살다가도 이 근본적인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는 삶이 조금 편안해졌다. 여러 번 겪어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슬픔이지만 결국 남은 자는 슬프기만 하던 시간을 헤쳐나와 씩씩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연달아 떠나보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죽음은 우리가 이겨 내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머나먼 이야기가 아닌, 어쩌면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2W 매거진에 안녕, 엄마 를 연재중 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원고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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