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의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욕하고 싶지는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곳 이탈리아에 남기로 결정했고, 이 상황을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긍정적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월 중순, 한국 그것도 청도에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특히 패닉이었는데, 부모님이 퇴직 후 청도에 터를 잡으셨기 때문이다. 정말 믿기 힘든 뉴스들 속에서 부모님 걱정도 앞섰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 월셋집 계약 만료가 더 걱정이었다.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에 아시아인은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이들 때문에 월셋집 구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여러 부동산들에게 보기 좋게 퇴짜를 당하고, 부동산 사기까지 겪다 보니 코로나 보다도 집 구하기가 우리를 더 힘들게 했다. 이러다 정말로 땅바닥에 나앉겠다 싶어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정신줄을 붙잡고 매달린 결과 2월의 마지막 날 우여곡절 끝에 마음에 드는 새집을 계약하고 한시름 놓고 나서야 코로나의 위기가 살갗으로 다가왔다. 가장 큰 걱정은 여행업에 종사하는 남편의 일이 2월 말부터 종료가 되었고, 3월 4월.. 언제 다시 재기될지 기약이 없어졌다는 것과 혹시나 우리가 아프면 어떻게 하나? 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
모르겠다, 일단 집 문제부터 해결하자! 우선 집 계약은 끝이 났다지만 이사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닌 이탈리아의 여러 행정 절차들을 차례대로 처리했다. 주소지 이전, 전기, 가스, 인터넷 신청도 새로 하고, 새 집에 필요한 여러 물건들을 채우고 나니 3월 11일 늦은 밤 전국 봉쇄령이 내려졌다. 이전 집주인을 만나 보증금까지 돌려받고 모든 일을 끝내자마자 전국의 슈퍼마켓과 약국 주유소 등 필수 시설을 제외하고 모두 영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거다. 하루만 늦었어도 모든 일이 다 꼬일 뻔했는데 이렇게나 운이 좋을 수가! 종교가 없는 우리지만 정말 하늘에 우리를 위한 신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며 감사를 드렸다.
3월 12일을 기점으로 집 밖을 나설 땐 진술서에 개인 신상 정보와 목적을 기술해야 한다. 심지어 생필품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거나 반려견 산책을 시킬 때도, 슈퍼마켓 앞에서는 간격 1m를 유지하여 입장해야 하기 때문에 줄을 서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고 요즘은 반려견 산책을 시킬 때도 집 밖으로 200m 이상을 나가지 말라는 등의 강경한 정책을 매일매일 내어놓고 있다. 하루하루 분위기가 급변하고 정책은 왜 매일 저녁 늦게 내어 놓는지.. 필요한 한국 식품도 못 샀고, 새 집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들도 사지 못해서 이사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이 집은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이다. 왜 온라인 주문을 안 하냐고? 이탈리아는 한국이 아니다.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서서히 이탈리아도 배달을 시행하는 마트나 상점이 늘고는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배송비가 비싸다. 결정적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배송 문화에 익숙하지가 않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사야 한다. 이곳에서 6년을 살아온 우리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상황이 더 장기화되면 우리도 집에서 손가락만 까딱하면서 장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 배송은 세월아 내월아 기다리겠지만....
지금은 도시 봉쇄뿐만 아니라 외출 금지령을 시행한 상태이기 때문에 한 가정에 한 명만 장을 볼 수 있다.
매일 장을 보러 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슈퍼마켓에서 사재기를 할 수밖에 없지만 물건은 넉넉히 있어서 생필품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라고나 할까?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생존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지금까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끌어 앉고 살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요즘 날씨는 매일 이렇게나 좋다. 집 밖을 못 나가니 사람들은 오후 6시만 되면 발코니에 나와서 안부를 묻고 노래를 부른다. 이 시국에도 참 긍정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새로 이사 온 집 앞마당에는 누군가가 집토끼를 풀어놓고 키우는데 매일 아침 눈을 뜨고 그 작은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요즘은 큰 위안이 된다.
그나저나 불과 몇 주전 까지만 해도 청도에 계신 부모님을 걱정하던 내가 지금은 걱정의 대상이 되었다니!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요즘은 유튜브에 영상도 매일 찍어 올리고, 봉쇄된 김에 봉쇄 일기도 매일 써볼 생각이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는 늘 기회도 함께 있는 법이다.
우리의 조국은 대한민국이지만 우리의 터전은 이탈리아이다. 이곳 이탈리아에서의 살 집을 구하느라 우리는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타이밍을 놓친 것도 아니고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었다면 새 집을 이를 악물고 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월셋집이지만 이곳에 우리 집이 있으니 우리는 최대한 집에서만 머물면서 이탈리아 정부를 믿고 이 시기를 잘 버텨볼 생각이다. 다만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임시 항공편을 타고 조국으로 귀국하는 우리 동포에 대한 분노의 시선은 부디 거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