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상상의 발견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도 뭔가 텅 빈 것 같았다. 해가 저물면 마당 구석 낡은 의자에 앉아 누군가와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며, 그날의 일과 주변 일들을 얘기하다 조용히 잠드는 집에 살고 싶었다. 근데 이거, 신해철 노래 '일상으로의 초대' 가사잖아?
집에 대한 나의 상상은 대체로 '표절'한 이미지들의 모음이었다.
방송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 반해 한참을 정신 못 차렸다. 효리네를 빼 박은 집에서 살고야 말겠노라 황당무계한 꿈을 진지하게 꿔댔다. 사춘기 소녀였던 나에게 김치 싸대기를 날린 첫사랑 '버스맨'의 붉은 벽돌집은 오랜 시간 상상 목록 상위권을 차지한 워너비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타임 피드를 압도하는 고급 인테리어에 디자이너 가구로 채워진 공간은 화려하게 날 감쌌다.
만약 내가 저 공간에 산다면, 만약에 저 집이 내 집이라면. 'If 가정문'으로 도배된 비장한 상상은 일확천금 획득을 향한 결심으로 이어지곤 했다. 고백건대 로또가 생긴 이래 하루라도 1등 당첨이라는 당찬 포부를 져버린 날이 없다. '돈'만 있다면 집짓기를 향한 황당하고 사치스럽고 비현실적인 모든 가정과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 쓸모없는 상상
끝없이 이어지는 허랑방탕한 상상 뒤는 허탈했다. 로또를 안 사는데 5000원이라도 당첨될 리 만무했고 청약통장도 없는 처지에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 리 없었다. 주식, 코인 등으로 재산 증식하는 스토리는 무능한 소시민에겐 연예인 열애설처럼 딴 세상 이야기였다. 여기저기 털어 봐도 현생에서 일확천금은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였고, 꿈꾸던 상상 속의 집은 신기루처럼 나타나 연기처럼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왜 이 모양 이 꼴이냐'는 자기혐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효과적인 방법은 '필요 없잖아?'라고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사실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정성껏 반복했던 집짓기에 대한 상상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집(정확히는 아파트)은 평수와 가치를 늘려가는 투자처여야지, 행복하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은 필요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바람은 사교육과 정보,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는 물정 모르는 철없는 로망이었다. 시골에 집짓기란 상식에 맞지 않은 '불필요한' 짓이야, 다들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살아, 평범하게 사는 게 안정적이야, 마땅한 논리로 합리화했다.
첫째 아들이 뱃속에 생겼을 때부터 네 살까지 주말부부로 지냈다. 임신했을 때는 혼밥이 일상이었고 출산 하루 전까지 출근했다. 아이를 낳고 백 일이 지나기도 전에 일터로 복귀했다. 남들처럼 성실하게 일하며 애 키우고 따박따박 저금하면서 애써 견뎠다.
문득문득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었지만, 이게 아니라면 다른 어떤 길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먼 미래의 안정된 날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갖추기 위해서라면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에 균열이 시작된 건 어쩌다 꽂혀서 홀린 듯이 질러버린 전망 좋은 양파밭 덕분이었다.
양파밭에 집 짓겠다고 전 재산 탕진한 일은, 지금껏 했던 일 가운데 가장 무모하고도 세상 불필요한데 돈 많이 드는 일이었다. '필요'가 아닌 '욕망'을 위한 선택의 결과는 놀라웠다. 아등바등 모은 소중한 재산을 하등 쓸모없는 일에 때려 박았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세상도 나도 결코 망하지 않았다!
집을 설계하면서 마주한 욕망
생각 속에서 수백 채의 집을 지었다 부쉈다. 간절히 원하면서도 선뜻 집짓기에 나서지 못한 채 우물쭈물했던 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빈곤한 상상력이 문제였다.
집 짓고 삶이 달라졌다는 말도 그제야 이해됐다. 집짓기까지 온갖 심리적·물리적 장벽을 넘어 시련과 고난을 뚫고 상상하다 보면 다른 삶의 방식을 만나게 된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면 큰일이 날 줄 알았는데 별일 없더라는 생활의 발견은 삶을 샛길로 이끌었다. '해야 할 것'에 억눌려 있던 '하고 싶은 것'을 끄집어냈다. 집을 설계하는 과정은 필요 없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총망라하고 그 일에 돈을 펑펑 쓸 작정을 실행하는 거룩한 시간이었다.
그간 수없이 상상했던 '내 집'은 가짜였다. 나의 욕망, 나의 꿈, 나의 삶, 나의 미래가 빠진 집은 나의 집이 될 수 없었다. 창문을 어디에 몇 개 낼 것인지, 방을 몇 개를 만들지, 그 공간에서 나는 무엇을 할 계획인지. 집을 설계하면서 수 백 가지의 시시한 질문에 답을 찾다 보니 그간 버려졌던 갖가지 욕망을 들여다보게 됐다.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재밌는 집
'욕망 실현' 원칙에 입각해 우리 부부는 유쾌한 집을 그려보기로 했다. 일단 네 명의 우리 가족이 살기에 바닥 면적은 20평이면 충분했다. 대신 층고를 높게 해서 집이 작다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게 잔머리 굴렸다.
방의 크기를 줄여가면서 쓸모없이 긴 복도를 고집했다. 용도 불분명한 '죽은 공간'을 구석구석에 일부러 만들면서 꼭 필요하다는 수납장과 붙박이장은 설치하지 않았다. 게으른 나에게 수납장이란 이사 오는 날 한 번, 이사 가는 날 한 번 열어보는 미지의 세계였다. 몇 년간 열어보지 않은 벽장에 어떤 생명체가 자라나고 있을지 두려워하는 일은 그만하고 싶었다.
1.5층, 2.5층을 비롯해 거실, 주방, 한실 등 곳곳에 단차를 둬서 성가시게 오르락내리락하도록 설계했다. 무엇보다 화룡점정은 집 한 가운데 설치한 난간이다. 이 난간 덕분에 티브이 자막이 가려져 예능 프로그램의 원활한 시청에 애로 사항이 많고, 아들 두 놈이 매달리고 뛰고 못살게 굴어서 이사 1년 만에 페인트는 벗겨져 미관을 해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간을 만든 건, 그냥 하고 싶어서였다. 거실에 떡하니 난간이 자리 잡고 있는 집이라니, 너무 낭만적이니까.
'꼴리는 대로' 설계한 낭만적인 우리 집의 이름은 '오락(Oh~樂)'이다. 남편이 지은 이름인데 듣자마자 이거로구나, 무릎을 쳤다. 한글 파괴 선봉에 선 듯 국적 불명의 외계어 같아 보이지만 영어와 한자가 만나 동서양의 화합을 상징하는 다국적 미래지향성이 맘에 쏙 들었다. 보통 우리 집을 '오락실'이라고 부르는데 그때마다 매번 즐겁다.
무릇 오락실이란 어떤 곳인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삼수생 정봉이가 게임 끝판왕으로 대접받는 짜릿한 곳이다. '한스밴드' 노래의 오락실은 실직한 아버지가 삶의 쓸쓸함과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시험 망친 딸과 함께 벌이는 게임 몇 판으로 위로받는 공간이다.
우리 가족에게 집이란 오락실 같았으면 좋겠다. 동네 오락실처럼 하찮고 쉽게 오가며 편하게 비빌 수 있는 그런 집구석이 되기를 쓸데없이 또 상상해 본다. 상상은 자유고 게다가 무료니까 너도나도 두려워 말고 '필요 없는 것들'에 관해 맘껏 상상하기를, 그저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