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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itdaa Dec 21. 2015

#9. 누구나 행복을 위해 달려간다

소셜멘토링 잇다 김태진 멘토님


# 안녕하세요.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김태진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 드리고 싶은 내용은 각자의 행복 기준에 대해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너무 다를 뿐이죠. 그래서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기도..좋은 직업을 가지고 싶어하기도..사회적 지위를 얻고 싶어하기도..권력을 갖고 싶어하기도..여행을 떠나고 싶어하기도..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기도 하지요.



이렇듯 정말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갑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보통 자신의 행복기준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과 비교하고 남이 가라는 길을 강요당하고 남에게 뒤처지면 패배자가 되어버립니다.


제가 저만의 행복기준을 가지게 된 이야기를 조금 들려드려볼까 합니다.



저는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수저계급론으로 따지면 흙수저 중에 흙수저이지 않을까 싶은 환경이었답니다. 대학 졸업때까지 기초수급자였답니다. 고등학교를 올라가며 어머니와 신문배달을 같이 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2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고 학교에 등교를 했었는데 고등학생이란 이유로 그 생활을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었답니다. 심지어 공부를 그렇게 확 잘하지는 않았었지만 나름 중상위권 수준이었는데 수능을 망쳐주었답니다. (모의고사 점수보다 100점가량 떨어졌으니.......) 그렇게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직업적인 꿈까지 접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남들 하는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토익을 위해 도서관에 앉아 있었고 입사 서류를 쓰는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토익 점수가 낮아 무토익으로 서류를 쓰다 어떤 한 대기업 서류전형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렇게 한방에 최종합격까지 해버렸습니다.(사무실 방문, 포트폴리오, 셀프 추천서 등 면접 관련 팁은 기회가 된다면 따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처음엔 너무 좋았습니다. 졸업도 하기 전에 대기업 공채에 합격을 하였으니까요. 그 때 제 나이가 26살이었습니다. 벌써 5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때 당시에 초봉이 3000만원이 넘어갔었습니다. 제 차도 사서 몰고 다녔었습니다. 단지 또래에 비해 돈을 꽤 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엔 마냥 좋았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채 반년이 가지 않더군요. 제가 삶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삶에 끌려가는 느낌을 너무 강하게 받고 일단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1년 남짓한 회사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백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회사를 나오면서 목표 하나를 세웠습니다. 바로 재밌게 살자!였습니다.(물론 처음에는 회사라는 곳을 아예 나왔다기보단 1~2년 후 다시 들어갈 생각으로 나왔었습니다만 퇴사 후 제 삶은 너무 다르게 변해버렸습니다.)



저에게는 회사를 먼저 그만두고 저를 기다리고 있던 제 친한 친구가 한명 있었습니다. 우리는 뭘하면 재밌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커피트럭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직접 트럭을 만든 후 커피를 팔며 전국을 여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름 내내 제주도에 머물며 도민놀이를 하기도 하였고 대한민국을 시계 방향으로 돌며 전국 곳곳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좋은 추억이 생겼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일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언론에 나오기 시작했고, 강의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대기업사원에서 노점상 상인이 되었는데 너무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돈도 못 벌고 다녔는데도 말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며 삶에 대한 그리고 행복에 대한 기준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회적 기준, 남의 기준보다는 내가 원해서 무언가를 하면 훨씬 행복할 수 있구나 라는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은 눈앞에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전국일주를 끝낸 후 무얼 해야될지 방황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몇달을 방황 후 조급한 마음에 또 입사서류를 쓰기 시작하였고 대기업과 외국계기업에 서류가 합격하여 면접을 보러 서울을 가게 되었습니다. 면접 전 날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하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이야기가 나왔고 전 거기에 마음이 꽂혀버렸습니다.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제가 그때부터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준비하고 세계일주라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았고, 언제 나갈지 시일을 고민하던 중 여자친구가 함께 가고 싶어해서 급하게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같이 받아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자친구도 영어를 못하였고 심지어 여유자금도 없이 호주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후 어찌저찌 바로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고 양공장에서 6개월간 열심히 외국인 노동자로 지냈었습니다.(호주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한 곳에서 최대 6개월까지 있을 수 있음) 그리고 모은 돈으로 뉴질랜드, 미국을 거쳐 중남미를 육로로 여행하고 유럽까지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어 몇달간 폐인 생활 좀 해주다 식당을 맡아서 운영도 해보고 제주도 승마장에 취직해서 말도 열심히 탔었습니다. 그러다 독일어는 커녕 영어도 잘 못하는 저에게 독일에서 사업제의가 들어와 작년 가을 독일로 떠났었다가 잘 진행이 되지 않아 동유럽 여행을 하고 올해 2월말에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번에 걸쳐 30개국을 여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한국의 기준, 사회적인 기준에 갇혀 힘들어하는 한국 청년, 청소년들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청년들을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문화기획으로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공간의 필요성 또한 느끼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만드려면 돈이 필요하였기에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운용하는 청년창업자금이라는 프로그램(대출입니다.....ㅠ)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7월 중순에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열심히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철거부터 지금까지 직접 공사를 진행하느라 많이 더디지만 이제 어느정도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였습니다. 공간의 이름은 '동네줌인'입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고, 수능이 백점 떨어졌으며, 사랑하는 여자친구와도 헤어졌습니다. 어찌보면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삶이 만족스럽고 너무 행복합니다. 제가 하고싶은 일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더불어 함께 하는 멋진 친구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제 이야기를 들려주러 여기저기 달려다니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자기 자신의 행복 기준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남하고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자신만의 행복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싶은 일을 찾고!하고싶은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향해 한 발자욱 내딛을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가진 멋진 청춘들이 많이 늘어나길 바래봅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합니다. 언제든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공감해드리고, 하고싶은 일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응원해드리고 싶습니다. 광주에 오시면 꼭 '동네줌인' 방문해주셔요.


대한민국 청춘을 응원합니다!!^^


 소셜멘토링 잇다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멘토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잇다 멘토가 되어, 청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세요.

잇다 멘토 참여방법은 아래 링크를 통해서.

http://itdaa.net/notices/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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