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영웅이 아닌, 선택의 무게를 견뎌낸 인간 안중근

영화 <하얼빈> 리뷰

by 잇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이들의 흔적을 영화 <하얼빈>을 통해 들여다보려 합니다. 우리는 흔히 안중근 의사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흔들림 없는 무결점의 영웅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영웅의 동상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선택이 불러온 끔찍한 참극 앞에서 울부짖어야 했던 한 인간의 심연을 쫓아갑니다. 역사책의 설명 뒤에 가려져 있던, 치명적인 오판과 뼈아픈 죄책감을 견뎌내야 했던 지극히 서글프고도 위대한 인간의 궤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만과 싸우기 위해 야만이 되기를 거부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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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너를 들여다볼 것이다."


철학자 니체의 이 경고는, 독립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원칙의 뼈대를 관통합니다. 영화의 비극은 바로 이 고결한 원칙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전투에서 생포한 일본군 포로들을 만국공법(국제법)에 따라 살려 보냅니다. 누군가는 이를 치명적인 오판이라 부르겠지만, 그 이면에는 잃어버린 조국을 향한 긍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영토를 빼앗긴 캄캄한 식민지 신세지만, 언젠가 반드시 주권을 되찾아 세계 속에 온전한 하나의 국가로 다시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라는 굳은 믿음.

그렇기에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성에 똑같은 짐승의 방식으로 맞서지 않고, 사람다움의 선과 독립군의 정당성을 지켜내려 했던 것입니다. 이는 절망적인 시대에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미리 내다본 투사의 고결한신념이었습니다.






자신의 이상이 동지들의 무덤이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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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국주의는 그의 긍지를 무참히 조롱합니다. 목숨을 건진 포로들은 일본군 토벌대를 이끌고 돌아왔고, 안중근의 곁을 지키던 수많은 동지들이 눈 덮인 산속에서 처참하게 학살당합니다. 내가 지키려 했던 그 알량한 법과 이상이, 나를 믿고 따르던 동지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뼈아픈 자각. 동지들의 시체 더미 위에서 살아남은 리더가 겪어야 했을 죄책감의 크기는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때부터 조국 독립이라는 거창한 대의보다, 매일 밤 죽은 동지들의 환영에 시달리며 영혼이 갉아먹히는 한 인간의 지옥 같은 형벌을 집요하게 비춥니다.





죽은 동지들과 함께 당긴 속죄의 방아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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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그가 어떻게 다시 하얼빈 역에 설 수 있었을까요? 흔들림 없는 애국심이나 초인적인 의지로 단숨에 마음을 다잡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 때문에 억울하게 눈을 감은 동지들의 환영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그 원망마저 자신의 몸뚱이에 기꺼이 새겨 넣기로 결심합니다. 무너져 내리는 정신을 붙잡으며 아마 그는 깨달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이 울부짖다 스스로를 파괴해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피 흘리며 죽어간 동지들의 희생을 아무 의미 없는 죽음으로 끝맺는 가장 무책임한 회피라는 것을요. 그래서 그는 눈밭에 흩뿌려진 동지들의 피와 그들이 이루지 못한 열망을 오롯이 자신의 굽은 등 위로 짊어지기로 합니다. 살아남은 리더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애도는, 동지들이 멈춰서야 했던 그 무덤에서 다시 일어나 기어코 적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는 것뿐이었으니까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울려 퍼진 세 발의 총성은 단순히 식민지의 울분을 터뜨린 물리적 결단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 치명적인 오판이 불러온 비극으로부터 눈 돌리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의 무게를 오롯이 제 목숨과 맞바꾸겠다는 처절한 책임의 증명이었습니다. 완벽한 영웅의 호기로움이 아니라, 바닥까지 부서진 마음을 간신히 긁어모아 죽은 동지들과 함께 방아쇠를 당긴 한 인간의 굽은 뒷모습은 그 어떤 위인전의 활자보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찌릅니다.




선택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의 오늘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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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심리적 궤적을 쫓으며,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끊임없이 머뭇거리는 우리의 오늘을 조용히 겹쳐봅니다. 지금 우리는 유독 실패와 책임에 가혹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퇴사나 이직, 인간관계의 단절, 혹은 직장 내 작은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는 일 앞에서도 우리는 늘 숨 막히는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내 잘못된 판단으로 지금껏 쌓아온 일상이 무너지면 어떡하지?','결과를 책임질 자신이 없는데, 차라리 가만히 중간만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는 매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기꺼이 선택하는 법을 잊어버린 채 스스로 내 삶의 방관자로 도망치곤 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인물조차 치명적인 오판을 했고, 그 참혹한 결과 앞에서 짐승처럼 울며 무너져 내렸습니다. 진정한 용기란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무결점의 삶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닥까지 부서진 후에도 자신이 만든 결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 무거운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진 채 다음 걸음을 내딛는 태도. 그 피투성이 발걸음 자체에 있음을 영화는 일러줍니다.


오늘 하루, 당신을 짓누르는 선택의 무게가 버겁고 두렵게 느껴진다면 얼어붙은 하얼빈으로 향했던 그의 고독한 걸음을 함께 상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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