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언터처블 1퍼센트의 우정> 해석, 리뷰
세상에는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파리 상위 1퍼센트의 부를 가졌지만 목 아래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전신마비 귀족 필립 그리고 건강한 몸뚱이 하나가 전부인 하위 1퍼센트 빈민가 출신의 전과자 드리스가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남자의 유쾌한 코미디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위한다며 건네는 조심스러운 배려가 오히려 사람을 고립시킬 수 있고, 반대로 투박하고 무심한 태도가 그 사람의 죽어가던 숨통을 다시 틔워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 사람을 진정으로 살려내는 진정한 연대란 과연 무엇일지, 두 사람의 기막힌 동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영화 초반, 간병인 면접장에 나타난 드리스는 다른 지원자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는 필립의 장애에는 관심조차 없고 그저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한 거절 서명만 요구하죠. 심지어 필립의 집에서 값비싼 장식품을 몰래 훔치기까지 합니다. 간병인이 된 후에도 드리스의 무심함은 계속됩니다. 울리는 전화기를 전신마비인 필립의 귀에 대주는 대신 무심코 손에 쥐여주려 하고, 필립이 다리에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겠다며 끓는 물을 붓기도 합니다. 보통의 시선으로 보면 아찔하고 무례한 행동이지만, 놀랍게도 필립은 이런 드리스의 곁에서 생기를 되찾습니다. 필립의 주변은 늘 다칠까 봐 조심하는 배려로 가득했고, 그것은 필립에게 당신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자라는 사실을 매 순간 확인시켜 주는 감옥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큰 실패를 겪거나 깊은 병을 앓고 난 사람을 대할 때 비슷한 실수를 하곤 합니다. 혹여나 상처받을까 봐 말을 아끼고 지나치게 눈치를 보죠.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을 다시 숨 쉬게 만드는 건,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고 때론 귀찮은 부탁도 하며 일상의 궤도로 툭툭 끌어당기는 무심한 태도입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이 고난을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타인과 평등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라고 했습니다. 드리스의 무심하고 거침없는 행동들은 필립을 특수하고 보호받아야 할 환자라는 편견으로부터 펄떡이는 생명력이 있는 삶으로 옮겨놓는 구원이 되었습니다.
이 만남은 필립만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드리스는 필립을 휠체어에 태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팝송을 크게 틀며 질주하지만, 동시에 필립의 세상에도 발을 들여놓습니다. 조용한 서재에서 클래식을 듣고, 오페라 공연장에서 나무 분장을 한 배우를 보며 숨넘어갈 듯 웃기도 하죠. 무엇보다 드리스는 붓을 들어 자신만의 추상화를 그리게 되는데, 필립은 이 그림을 지인에게 고가에 팔아주며 드리스의 재능을 세상에 인정받게 해 줍니다. 단순히 시간이나 때우려던 간병 일은 어느새 드리스의 진심이 됩니다. 거칠고 무질서한 삶을 살던 그는 누군가의 고통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묵묵히 인내하는 법을 배우며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는 어른으로 변모합니다.
심리치료 분야에는 이타 주의적 치유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타인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 도움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깊은 상처와 결핍이 치유되는 현상입니다. 누군가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행위는 내 어깨의 짐을 무겁게 하는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흔들리던 내 삶의 방향을 똑바로 잡도록 돕는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두 사람의 변화는 증명합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연 두 사람은 영화 속 여러 사건을 통해 그들의 연대를 더욱 단단하게 다집니다. 특히 드리스가 필립의 수염을 깎아주며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함께 숨이 넘어갈 듯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두 사람의 강력한 연대의 증거가 됩니다. 불쌍하게 여기는 시선을 거두고 한 명은 기꺼이 자신의 얼굴을 내맡기고, 다른 한 명은 그 얼굴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있는 교감은 서로를 타인이 아닌 동료로 대우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또 드리스의 과속으로 경찰이 쫓아올 때, 두 사람은 찰나의 눈빛을 교환하고 기막힌 타이밍에 함께 거짓말을 지어내 위기를 모면하죠. 이들이 보여주는 우정은 우리 삶에서도 꽤나 비슷합니다. 오랜 친구와 나누는 빛나는 기억은 대개 심오한 대화가 아니라, 함께 저지른 소소한 실수나 남들에겐 비밀인 유치한 농담들입니다. 함께 바보가 될 용기는 비바람 치는 삶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가장 단단한 무기가 됩니다.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건 바닷가 레스토랑의 장면입니다. 드리스는 극심한 우울증과 발작에 시달리는 필립을 구출해 내듯 차에 태우고 바다로 향합니다. 그리고 어느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평소처럼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더니, 돌연 나는 당신과 밥을 먹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뜹니다. 당황한 필립의 눈앞에는 오랫동안 편지로만 마음을 나누며 장애 때문에 만나기를 두려워했던 여인 엘리노어가 나타나죠.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빙그레 웃고 돌아서는 드리스의 뒷모습은 먹먹한 감동을 줍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뒤에서 안장을 굳게 잡아주던 손길은 안도감을 주지만, 자전거가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그 손이 안장을 놓아버리는 두렵고도 결정적인 순간이 필요합니다. 드리스가 필립을 홀로 남겨둔 것은 필립이 다칠까 봐 평생 휠체어 뒤에 서서 세상을 대신 살아주는 대신, 스스로 타인의 눈을 맞추고 사랑을 쟁취하도록 꽉 잡고 있던 안장을 놓아준 것입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돕는다는 건 내 보호 아래 영원히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내 도움 없이도 자신의 삶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을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나 미소로 응원해 주는 일임을 우리는 이 장면에서 배우게 됩니다.
누군가의 삶에 온기를 더하는 일은 거창한 제도를 만들거나 대단한 희생을 치르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동정하는 시선을 거두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곁에서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것. 그러다 마침내 그 사람이 내 도움 없이도 혼자 힘으로 세상과 마주하며 미소 지을 때 뒤에서 조용히 박수 쳐주는 것. 영화 속 두 사람이 서로의 삶 가장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기적처럼 숨통을 틔워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내 곁의 누군가가 세상의 시선에 위축되어 있다면, 상처받을까 조심하는 위로 대신 그저 평범한 오늘을 무심하게 툭, 함께 살아내면 어떨까요? 그것이 우리가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다정하고 굳건한 연대의 한 가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