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운명을 부수는 용기

영화 < 가타카> 리뷰 해석

by 잇다

세상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모든 운명을 데이터로 정해버린다면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살아가게 될까요. 매트릭스의 통제와 her 의 완벽한 인공지능을 지나 도착한 일곱 번째 질문은 바로 유전자 알고리즘이 계급을 결정하는 세상, 영화 가타카입니다. 가까운 미래, 세상은 더 이상 신분이나 자본이 아닌 유전자 데이터로 사람의 가치를 매깁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리즘을 통해 질병, 수명, 지능이 완벽하게 조작된 적격자들이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자연 임신으로 태어나 결함을 안고 있는 부적격자들은 하층민으로 밀려나 육체노동만 하며 살아갑니다. 이 영화는 완벽한 데이터로 통제되는 차가운 세상 속에서, 오직 의지 하나로 정해진 운명을 뚫고 나가는 한 인간의 아름다운 저항을 비춥니다.






안전한 계산을 뛰어넘는 무모한 용기






주인공 빈센트는 심장 질환 발병률 99퍼센트, 예상 수명 30세라는 열성 유전자를 안고 태어난 부적격자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열망이 있었죠. 그는 우주항공 회사 가타카에 들어가기 위해,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우성 인간 제롬의 신분과 DNA 데이터를 돈을 주고 삽니다. 매일 자신의 각질과 털을 박박 긁어내고 제롬의 피와 소변으로 신분을 위장하며, 심장이 터질 듯한 훈련을 견뎌냅니다. 빈센트에게는 완벽한 우성 유전자를 가진 동생 안톤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바다 수영 시합을 하면 늘 동생이 이겼지만, 어른이 되어 치른 마지막 시합에서는 죽을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빈센트가 동생을 이기고 맙니다. 어떻게 이겼냐고 묻는 동생에게 빈센트는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고 헤엄쳤다고 답하죠.

알고리즘과 데이터는 늘 안전하고 효율적인 계산 값을 내놓습니다. 돌아갈 체력을 계산하며 한계를 긋는 동생 안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적은 계산을 넘어설 때 일어납니다. 내일이 어떻게 되든 오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인간의 그 무모한 비효율성. 흠집 투성이의 맨얼굴을 기꺼이 세상에 드러내고 내던지는 용기만이 데이터가 정해놓은 한계를 부술 수 있음을 우리는 이 바다에서 목격하게 됩니다.






완벽한 데이터의 절망과 불완전한 인간의 희망




가타카 2.png



신분을 빌려준 제롬은 유전학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우성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는 수영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후, 상실감에 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하반신을 마비시켰습니다. 완벽하게 설계되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축복이 아니라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족쇄였던 셈이죠. 알고리즘이 보장한 완벽함 속에는, 역설적이게도 실패를 딛고 일어설 내성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빈센트는 언제 심장이 멎을지 모른다는 데이터의 저주 속에서도 우주를 향한 맹렬한 목적의식 하나로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연장해 냅니다. 제롬은 결국 자신의 완벽한 유전자와 신분을 빈센트에게 온전히 넘겨주고 소각장으로 들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결점 없는 완벽한 스펙이 행복을 담보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발버둥 치는 흠집 투성이의 맨얼굴 속에 진짜 살아갈 이유가 숨어 있음을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은 뼈아프게 보여줍니다.






데이터를 무너뜨리는 단 하나의 빈틈, 인간의 마음



가타카 3.png



영화의 대미, 마침내 우주선에 오르기 직전 불시 소변 검사가 진행됩니다. 준비해 둔 제롬의 소변이 없었던 빈센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진짜 소변을 제출하죠. 모니터에는 부적격자라는 붉은 경고가 뜨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검사관 라마는 말없이 화면의 데이터를 적격자로 조작해 우주선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줍니다. 사실 라마는 오래전부터 빈센트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묵인했던 이유는, 라마의 아들 역시 데이터 상으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부적격자였기 때문입니다. 라마가 규정을 어기고 거짓말에 동참한 것은 거창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 아이와 같은 처지의 청년이, 저 견고한 한계를 뚫고 우주로 날아오르는 기적을 직접 증명해 주길 바라는 한 아버지의 간절함이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통제되는 차가운 세상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 시스템의 가장 치명적인 빈틈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이 장면은 웅변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압도적인 한계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묵묵히 응원하게 됩니다. 불가능에 몸을 던지는 그의 무모한 비행이, 결함투성이인 채로 오늘을 버텨내는 우리 자신의 팍팍한 삶에도 기적의 증거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운명을 다시 쓰는 법




가타카 4.png



누군가 당신의 한계를 숫자로 규정하고 안 되는 이유를 합리적인 데이터로 들이밀 때, 가타카의 빈센트를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운명은 태어날 때 바코드처럼 찍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세상과 부딪히고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그 용기 사이에서 매일 새롭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용기 있는 자들만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그 결과는 남들이 매겨놓은 수치나 역사에 적힌 것만으로는 섣불리 단정하거나 판단할 수 없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기꺼이 한 걸음을 내딛는 당신의 그 용기가, 알고리즘은 절대 예측할 수 없는 당신만의 위대한 역사가 될 것입니다.

이전 06화상처받지 않는 사랑은 허울뿐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