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함께 어울려 웃음이 피어나고 배움이 일어나고
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이와 어른, 그리고 어른들끼리도 서로 별칭을 부르며 평어를 쓴다. 부모와 교사 간은 물론 경력 차이가 나는 교사들끼리도 평어를 쓰니 이를 보고 들으며 자라는 아이의 일상에서 평어는 언어 이상의 문화다. 나는 아이가 또래뿐 아니라 부모, 선생님, 이웃 등의 어른들과도 평어로 서로 대화하는 관계 속에서 더 넓은 세계를 품게 됐다고 생각한다.
평어 사용으로 나 역시 공감의 지평이 넓어졌다. 어린이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 아이보다 먼저 내 별칭인 '이텔'을 부르며 달려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할 말이 많아 다급한 아이들에겐 간혹 이태리라고 불린다. ㅎㅎ) 아이들처럼 선생님과 다른 아이의 부모들도 나를 '이텔'이라고 부른다. 아이를 단지 맡겼다가 호출해 데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 손을 잡고 나를 부르는 사람과 하나하나 눈 마주치면서 다정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텔은 러시아 캄차카 반도에 사는 소수민족 '이텔멘(itelmen)'에서 아이 이름 '이현'과 라임을 맞춰 앞 두 글자를 딴 것이다. 언어와 문화 등 삶의 양식 대부분이 러시아에 동화된 이 부족의 이름 뜻이 '내가 여기 산다(I live here)'라는 것에 크게 감명받아 이메일 아이디, 브런치 작가명 등 인터넷상 필명으로도 오래 써왔다.
막상 어린이집에 들어왔더니 '누룽지' '달팽이'와 같이 알기 쉽고 부르기 쉬운 별칭이 대부분이라 무안했다. 이텔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설명이 좀 길다고 하면 "그럼 다음에"라며 듣기를 한사코 고사해서 내 별칭의 뜻을 제대로 아는 이도 없다. 누군가 물었을 때 남편조차도 "아프리카 부족 이름일 걸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웃음) 어쨌든 뜻이 어떻건 알건 모르건 누구에게나 'OOO 엄마' 또는 이름 석 자가 아닌 특별한 별칭으로 호명된다는 것은 새롭고 즐거운 일이다. 아이 어른할 것 없이 힘을 빼고 서로 눈높이를 맞추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공동육아에 더해 나는 공동체주택에 살고 있기도 하다. 서로를 돌보는 12명의 어른들과 14명의 아이들, 고집 센 4마리의 고양이와 착한 1마리 강아지를 든든한 이웃으로 두고 있다. 일반적인 주거 형태와 크게 다를 것 없지만, 마찬가지로 서로 별칭과 평어 사용을 하면서 자주 만나 한데 어우러져 논다는 것이 조금 특별한 점이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팬데믹으로 움츠러들어야 했던 2020년에 집을 지은 우리들은 그 집에서 삼삼오오 놀며 숨을 나누고 텄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정말 문지방 닳게 드나들며 (싸우고) 놀고 (싸우며) 논다.
내가 이런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이에게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안전망으로써의 거주환경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과 보육기관, 동네가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고, 아이가 가족 품 이외에도 또래 친구들과 좋은 어른들 틈 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우리집 아이가 다른집 형제와 더불어 자라며 부모와 가까운 가족 이외에도 더 많은 어른에게 배우며 지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이와 내가 안전한 공동체에서 함께 자라는 시간도 중요했다. 내 아이를 일이 아니라 친구로 보는 교사, 내 집 아이와 함께 옆집 아이를 돌보는 이웃, 아이가 격의 없이 손 흔들며 인사했을 때 “배꼽인사해야지”라고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 흔들며 인사해주는 동네 어르신들과 가게 사장님들까지. 아이를, 사람을 환대해주는 마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배부른 행복감을 준다. 그리고 이 행복감을 지탱해주는 원천이 바로 평어라고 생각한다.
평어를 일상적으로 쓰고 삶 속에서 관계로 풀어내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잣대를 더는 경력이나 나이, 직급, 학교 성적, 서열, 자산 수준 등이 아닌 "이 사람은 아이를 어떻게 존중하며 대하는지" "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말할 때 어떻게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지"에 두게 됐다. 또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역할에만 갇히지 않으니 더 나은 어른, 지역 사회에서 더 나은 개인이 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게 된다.
세상에 처음 나와 익히게 된 언어가 평어인 내 아이 역시 모든 생명이 동등하다는 생각, 그래서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나아가 누구에게든 배타적으로 되지 않는 힘의 감각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달라도 괜찮아 얼굴 말투 나이 상관없이 (중략) 함께 어울려 웃음이 피어나고 배움이 일어나고” 오늘도 아이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함께 익히면서 따라 부른다. 계속 시선을 마주하고 나란히 걷기 위해!
나무가 스스로 물을 먹고 자라듯이
꽃들이 스스로 해를 보고 자라듯이
달라도 괜찮아
얼굴 말투 나이 상관없이
햇빛과 바람 물 흙 속에서
놀아야 하죠
학교가 끝난 어른도
세상은 온통 새로움이
별처럼 가득해
함께 어울려 웃음이 피어나고
함께 어울려 배움이 일어나고
나누고 채우며 마을을 이뤄가면서
함께 어울려 더 행복한 사람들
오늘은 들꽃이 무슨 얘길 들려줄지
걸어가 만나고 맡아봐야 알 수 있죠
빨리 해라 잘해라
비교하는 시선보다는
팔과 다리 쭉쭉쭉
어디까지 늘어나는지
학교가 끝난 후에도
친구와 마음 나누는
공간이 필요해
함께 어울려 웃음이 피어나고
함께 어울려 배움이 일어나고
나누고 채우며 마을을 이뤄가면서
함께 어울려 더 행복한 사람들
함께 uh!
함께 uh!
함께 uh!
함께 uh!
함께 어울려 웃음이 피어나고
함께 어울려 배움이 일어나고
나누고 채우며 마을을 이뤄가면서
함께 어울려 더 행복한 사람들
*Littor릿터 독자 수기 공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