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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Jul 12. 2019

1년의 시간

내 인생의 꼰대들을 생각해보다가, 놀랍게도 내게 선배랍시고 주름잡던 그 인간들이 지금 내 나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직책을 맡고 제일 열심히 일을 하고, 얕게나마 알은체 하기 딱 좋은 때가 서른 중반인 건가. 팀 운영 초반에는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어떤 본이 되어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 자체가 ‘꼰대스럽’다는 생각에 뜨악했다.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이는 것이 본인데.


"이렇게 하세요"가 아니라, 그렇게 내가 그냥 하는 것. 나는 꼰대가 된 것인가.


팀을 꾸린 지 1년이 됐다.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리가 주어졌고, 엉겁결에 되기야 했지만,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나를 조급하게 하기도 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그러니까 나의 팀원이 (나의 상사에게)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나를 위해 일했으니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어디까지가 격려이고 무엇이 질책인지 헷갈렸고 헤맸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조금 정리가 된다.  


그저 팀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말이 되게끔 일을 벌리는 것. 허들을 먼저 발견해주고 가급적 제거해주는 것. 그게 어려울 경우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하는 것. 그밖에 내가 할 일이 많지 않다는 것. 실은 그것만 제대로 하기도 버겁고 어렵다는 것.


사실 최근 팀, 그러니까 일에 더해 사람으로 힘들었다. 지나고 보니 어느 정도 알게 되는 것도 있고 이쯤이면 잘하고 있다고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누적돼 있는 관계의 피로가 보였다. 권위와 서열을 없애려고 했던 것이 가장 기본적인 질서나 약속의 엇박으로 나타났다. 곱씹어 보면 결국 리더로서 내 판단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결론이었다.


완벽한 팀빌딩이라며 확신과 오만에 찼던 것이 그저 바람을 빼면 맥없이 쭈그러드는 풍선 같았다는 생각에 두둥실하던 기분이 구겨졌다.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나의 고질적인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문제(사람)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아닌가 스스로 책망했다.


혼자 위로하며 내린 (나를 위한) 답은 이렇다. 사람에 있어 맞고 틀림은 없다. 그냥 다른 거고,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개인이 모인 것이 조직이다. 당연히 균열이 있기도 하고 필요에 의한 긴장 관계가 있기도 하다. 개입할 수 있지만 그 틈을 내가 다 메꿔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업무 역량에 대한 스킬업은 각자 하는 거다.


나는 매니저지 보모가 아니다.


<팀워크의 배신> 저자는 조직이 갈등을 겪으며 지금 현실을 부정해야 앞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좋은 팀워크의 비결로 오히려 갈등과 불화, 충돌을 꼽는다는 대목에서 나는 다시 위안의 단서를 찾는다.


왜.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에서 오는 좌절보다 환희가 여전히 조금 더 크고 많기에. 그냥 지금 내가 할 일을 하면서 다시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면 나의 팀원들도 그렇게 하겠지 하고 믿으면서. 최소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극복하기 바라면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게 좋은 의미로든 아닌 의미로든 맞는 말 같다. 1년 동안 많이 배웠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 때문이든 일 때문이든 “그저 기다려야 하는” 때가 있다. 감사하게도, 그 지루한 시간들에도 나를 일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간 매니저의 입장이 되어 보니 나를 일하게 하는 팀원과 보스는 얼마나 큰 동기부여가 되는가 알게 됐다. 이 맛에 직장생활을 하고 직급을 갖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빈칸을 적어놓고 알려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고, 빈칸을 채우기 위해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빈칸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지금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에 감사하며, 다시 일을 한다. 서른다섯의 경계에서.


이 과정을 넘어서면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무엇을 갈망하고 있을까.  



덧.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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