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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Jun 07. 2018

차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영화 <디트로이트>

내게는 흑인 친구가 몇 있었다.


이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그들과 친구인 채로 지내지 못하고 어떤 지점에서 멈추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멈추기도 했고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줄이기도 했다. 짧은 경험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나의 흑인 친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은 ‘피해의식’이었다. 그들은 작은 행동에도 분노했고, 세계와 스스로를 자조했다. 조심스레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오랜 차별의 역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도 똑같아. 나를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아.”라고 스치듯 했던 말을 기억한다.


1967년 여름. 자동차 공업이 발달한 공업도시 디트로이트에서는 인종갈등이 폭발해 폭동이 일어난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빈곤한 흑인들이 모여 있는, 범죄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이 폭동을 계기로 급진적 흑인운동이 전개됐으며 그 이후 흑인음악은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소울'로 변하게 된다. 영화 <디트로이트>는 이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다.


 당시 폭동은 심각했다. 분노한 흑인들은 관공서를 불태우고 상점 유리를 깨부숴 식료품부터 비싼 전자제품까지 훔쳤다. 그 결과 폭동으로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군 병력이 투입되기에 이른다. 영화의 전반부는 '디트로이트 폭동'이란 사건을 모르는 관객도 전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객관적 사실을 차근차근 전달한다. 제3자의 입장이었던 영화는 어느 순간 클로즈업하듯 알제 모텔로 포커스를 집중시킨다.


 밖은 군 병력이 깔리고 초비상상태인데 알제 모텔은 다른 세상인듯 한가롭다. 이곳에는 취한 흑인들과 휴가 온 백인 여자 둘, 그리고 폭동에서 피신해 온 래리와 마이클이 있다. 취한 흑인들 중 하나가 장난감 총으로 '맛 좀 봐라!' 하며 총성을 울리게 되고 잔뜩 긴장해있던 방위군과 경찰은 저격수를 찾아 알제 모텔로 모여든다. 그리고 저격수를 찾기 위해 호텔에 묵던 사람들을 1층으로 모아 놓고 폭력을 행사한다. 총을 소지한 사람이 없는데 총을 내놓으라며 협박하다가 결국 3명의 흑인을 죽이게 된다. 경찰들은 살인죄로 기소되지만 경찰들은 결국 모두 무죄로 판명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이며 아직도 관계된 이들의 증언이 확실치 않아 몇몇 장면은 재구성했다고 한다. 영화는 불필요하게 길다고 느껴질 정도로 알제 모텔 사건 이후의 지리한 법정 싸움, 그리고 무죄로 판명나는 과정까지를 보여준다. 관객들로 하여금 흑인들이 느끼는 무력감에 공감할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일테다. 영화 속 래리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오래 남아 영화가 끝나고 실존 인물을 찾아봤을 정도니까.


래리의 삶은 알제 모텔 사건 이후 완전히 파괴됐다. 래리는 ‘드라마틱스’라는 흑인 밴드의 실력 있는 보컬이었으나 친구인 마이클이 경찰에게 죽고난 이후 더이상 무대에 서지 못한다. 백인들을 상대로 공연을 하고 싶지 않았고 경찰과 마주할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신 디트로이트에서 지금까지도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실제 인물 larry reed와 배우가 함께 부른 뮤비영상)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각자의 입장을 다층적으로 다루는 태도였다. 차별로 인한 인종 갈등이라는 사건을 두고 가해자와 피해자 이분법 프레임으로 몰아가기보다는 양쪽의 입장을 차근차근 보여 준다. 도시를 파괴시키는 폭도들과 무고하게 죽어가는 디트로이트의 흑인들은 같은 시민들이다. 또, 인권을 생각하며 발포를 하지 않으려던 경찰과, 무식한데 신념만 강한 또라이 경찰 역시 같은 백인 경찰이다. 알제 모텔에서 도망 나온 이들을 데리고 응급실로 데려간 이 역시 백인 경찰이었다. 폭력 현장에서 내내 경찰에 협력하는 태도를 보였던 흑인 경비는 사건 이후 용의자로 지목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시감이 들었다. 백인 경찰을 군부 정권으로, 흑인들을 광주 사람들 혹은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로 치환하면 우리 역시 같은 장면을 수없이 보지 않았었나. 그래서인지 이들의 분노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은 40년 전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영화 속 약자들에 공감하지 않을자가 누가 있을까. 나 역시 해외에 나갈 때마다 동양인 여성으로서 약자의 위치에 놓일 때가 많으니까. 요즘 세상에 차별이 어딨냐고 말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당신은 한번도 차별 받아본 적이 없나요?

 남성이지만 동양인이어서 차별받아본 경험이 없는지, 그때마다 같은 인간인데 왜 차별받아야 하는지 억울하지는 않았는지, 이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았는지.


내가 차별받은 경험이 없다고 해서 세상에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화 <디트로이트> 속 인종차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파리 공항에서 청소복을 입고 있던 덩치 큰 흑인 남성의 슬픈 눈빛을 또렷이 기억한다. 해외 워킹홀리데이 리스트를 보며 인종차별 당하지 않을 나라는 어디일지 고르던 스스로를 발견하고 조금 슬퍼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내가 어디서든 차별받지 않고 싶다면, 최소한 내가 모르는 차별들에 있어 미안해하고 알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차별을 경험한 사람에게 있어 가장 상처가 되었던 말은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무력해진 상태로 들었던 엔딩곡을 함께 들었으면. 슬프면서도 분노에 차있다.(브런치에는 유튜브 링크 바로 거는 방법은 없나요?ㅜ_ㅜ)


https://youtu.be/dv2G7V-2f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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