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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May 29. 2018

너도 나처럼 조용히 울고 있구나

영화 <케이크 메이커>

빵, 죽음, 위로라는 키워드만 대강 읽고 갔기 때문일까. 영화 <케이크 메이커>가 레이먼드 카버의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과 비슷한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small good thing)은 빵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상실을 보듬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이다.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가 나와 있는 예쁜 포스터도 근거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케이크 메이커>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짙고 처절했다. 케이크의 달콤함이 영화의 슬픔을 보듬어주지 못할 정도로.


 베를린에서 작은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토마스와 그의 단골 손님이었던 오렌. 두 남자는 케이크를 계기로 사랑에 빠진다. 토마스는 오렌에게 예루살렘에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안다. 어느날, 오렌은 사고를 당하게 되고 토마스는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를 떠나보내게 된다. 그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토마스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오렌의 아내인 아나트의 카페에서 맴돌다가 아나트와 함께 일하게 되고, 토마스가 남편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아나트의 가족은 그를 천천히 이스라엘 사회로 받아들인다.


때로는 주인공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애인의 아내를 찾아갔으며, 아내의 카페에서 함께 일까지 하는가? 그것도 독일인인 자신을 적대시하는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그리고 아나트는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듦에도 그를 받아들이는가?


 

그러나 이내 수긍하게 된다. 상실을 겪은 자는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행동엔 이유가 없다. 받아들일 수 없는 연인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토마스는 그의 흔적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이었고, 연인이 가족을 만나러 갈 때마다 사들고 가던 쿠키와 케이크를 가족에게 대접하는 것이었으리라.


토마스가 예루살렘에서 보내는 시간은 곧 오렌과 함께 하는 나날들이다. 카페에서 일하는동안, 자신이 만든 쿠키를 먹고 아나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나트와 친해져 그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도 토마스는 오로지 오렌을 떠올린다. 오렌이 아나트에 대해 했던 말들. 아나트가 죽은 남편의 옷을 토마스에게 줬을 때, 토마스는그 옷을 입고 오렌처럼 조깅을 한다.토마스만의 애도의 방식이며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그를 이해되지 않는다고, 미쳤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에는 대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직 표정과 행동으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그래서 더 슬펐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고도 누구 하나 오열하지 않지만, 사실은 매 장면에서 무너지는 가슴으로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게는 <케이크 메이커>가 조용히 통곡하는 영화로 느껴졌다.


 

다소 당황스러운 결말이긴 했으나, 어쨌든 <케이크 메이커>는 사랑과 상실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케이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은 각종 사회적 규율에 둘러싸여 있다. 우선 오렌과 토마스는 동성애인데다 불륜이다. 오렌과 아나트가 속한 유대 사회는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코셔)부터 음식을 먹는 기간(샤벗)까지 정해져 있을 정도로 율법의 세계다. 그리고 케이크 메이커, 토마스는 이 규율들을 넘어서 규율을 벗어던진 인간 그 자체와 사랑을 한다. 그 경계를 넘게하는 매개가 바로 케이크인 것이다.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은 아주 평범하다. 오렌은 출장 차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먹은 케이크가 너무 맛있어서 토마스 가게의 단골이 됐고, 이방인에 대해 날을 세우던 이나트와 친척들, 유대 손님들 모두 케이크를 먹고선 미소를 짓는다. 이유는 그냥 ‘맛있으니까’다. 본능적이고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토마스는 인종, 차별, 문화 차이, 성별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이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얼마전 들었던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이 떠올랐다.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라는 부제로, 세월호 유가족이 대한민국에서 또다른 사고를 겪은 유가족과 대담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세월호라는 끔찍한 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같은 사고를 겪은 유가족들이었다. <세상 끝의 사랑> 1화에서 예은이 아빠는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 군에게 묻는다. "요즘은 형이 무슨 말을 하나요?". 그러면 이한솔 군은 바로 웃으며 "꿈에 자주 나오는데 요즘은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러더라고요".


타인의 고통을 마주할 때마다 여전히 할말이 사라진다. 상실을 경험한 이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연대를 응원하는 것이 상실을 경험한 이들을 위한 최선의, 유일한 위로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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