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씨의 변화
사회적으로는 회사에서 팀장이고 생물학적으로는 45세 중년 여성이 바로 나이다. 예전에 나는 무늬만 어른인, 나이만 많지, 하는 행동은 초딩보다 유치하고, 하지만 인정은 받고 싶고 결코 어른이 될 수 없음에도 어른인 척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들과는 다르게 진짜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몇 잔씩 (속으로만) 들이켠 라테 덕분에 마음이 터질 것 같은, 역시 나이만 조금 더 먹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해야 할 말도 꾹 참고 내일로 미루는 멋진 팀장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너희는 꼭 니네 퇴근 전에 꼭 보고서 검토해 달라고 내밀더라. 그러고 퇴근해 버리면, 나 야근하라는 거니? 내가 벌써 몇 번을 고치라고 말했는데 여전히 수정 없이 그대로 보고서를 올리는 너희들! 도대체 얼마나 더, 몇 번을 더, 말해야 알아먹을 건데? 알아먹지를 못하는 거니, 알아먹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거니? 그리고 이건 진짜 치사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팀장이라서 밥을 사면 그래도 최소한 ‘커피는 저희가 살게요’라고 말은 하고 싶지 않니? 아니, 그리 말한다고 내가 또 ‘그래’ 하면서 덥석 받아먹겠니? ‘아니’라고 내가 사지. 몇 번을 사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주 한마디 말도 없이 잘만 먹는구나. 그 흔하디 흔한 말 있잖니,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너희는 아주 빚이 산더미야, 산더미.
진짜 오늘도 할 말 가득한 하루였지만, 진짜 해야 할 말인지, 라테인 건지 확실하지 않아서 꾹꾹 눌러 참아냈던 오늘 하루, 내가 변할 걸까.
팀장이기 훨씬 전, 나는 엄마가 되었고 워킹맘이 되었다. 사실 나는 내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데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이 4시간을 들여 일을 한다면 나는 8시간을 들여 최소한 내 마음에는 들 때까지 일을 하는 단무지였다. 그런데 엄마가 되었다고 역할이 늘었다고 내게 주어진 시간도 함께 늘어나는 것이 아니니, 난 엉망진창이 되었다. 전에처럼 업무에 시간을 들일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일을 포기하고 육아에만 전념할 수도 없는 성격이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부족한 시간을 메우고 싶은 마음에 회사에서는 아이 생각, 아이 앞에서는 회사생각하는 진짜 바보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내 몸과 마음은 병이 들었고 아이는 작년에 사춘기를 크게 앓았다. 아이는 내게 일 중독자인 엄마라며 자기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냐고 따져 물었다. 집에서도 사랑 못 받는 자기가 어떻게 밖에서 사랑을 받겠냐며 그런 이유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왔고, 그래서 자퇴하겠다고 했다. 가출하겠다는 협박도 해댔다. 싸우고 달래고 여행도 가보고 다시 싸우고, 그렇게 반복하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힘든 일 년을 보냈다. 지금은 다행히 겉보기로는 무난한 모자 사이로 보일 만큼은 관계 회복을 했고 아이도 무사히 학교를 다니고 (말 그대로 ‘다니고만’) 있다. 그래서 내가 변해서 또는 아이가 변해서 지금의 안정기를 맞게 되었나 생각해 보면, 또 그거는 아닌 것 같다. 아이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변했다기보다는 그냥 안 싸우도록 조심하고 있으니까. 일 년 동안 전쟁을 치르며 아이가 싫어할 말, 태도 그리고 행동 등 경험치가 쌓여 싸움을 피하는 방법을 익혔을 뿐, 사실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해도 적응되지 않는 사회생활과 아이의 사춘기로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던 작년, 나는 소파에 누워 책만 읽었다. 책 속으로 도피를 했던 것 같다. 장르도 소설 단 하나. 그냥 남의 삶 속에 빠져 소파와 일체가 되어 가던 어느 날, 퇴근해 집에 온 남편이 “복붙이냐? 아침에도 그러고 있던데, 하루 종일 그러고 있었던 거냐 “라고 걱정 반 짜증 반 섞인 말을 했다. 진짜 이러다 진짜 소파가 되어 버릴 거 같기도 해서 그동안 SNS에서 눈팅만 했던 동네북카페 ‘안녕 책다방’에서 주최하는 독서모임을 신청했다. 혼독을 좋아했고, 그때 당시에는 대인 기피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 만나는 게 귀찮고 싫었기에,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독서모임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밑도 끝도 없이 ‘안녕책다방’이라면 좀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SNS 속 ‘안녕책다방’은 온기 가득 따뜻해 보였고, 어쩐지 마음이 아픈 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거 같았다. (‘안녕’ 이름 때문인지 어떤지) 그리고 책방 온기는 SNS가 만들어 낸 개구라이고 역시 독서모임이 별로였더라도, 오늘은 소파와 떨어졌던 것으로도 충분하지 아니한가.
그렇게 큰 기대 없이 간, 나의 동네책방 그리고 첫 독서모임 ‘안녕책다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핸드폰 화면을 뚫고 나왔던 따뜻함은 ‘안녕책다방’에 실존하는 것이었다. ‘안녕책다방’에는 차가운 사람 출입금지인지(앗, 나는 어떻게 갔지?) 정말 무해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독서모임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이 나의 부족함을, 아픔을 그들은 무해한 얼굴과 넓은 이해심으로 포근히 감싸주었다. 한 권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니, 책 한 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어 뿌듯했고, 독서모임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곁들여져서 한 권 아닌 다독 같은 한 권의 느낌으로 머리까지 꽉 찬 기분이었다 그 첫 시작이 정말 행복하고 따뜻해서, 많이 건강해진 지금까지도 계속 ‘안녕책다방’ 독서모임에 다니고 있다. 혼독만 고집하던 내가 이젠 혼자 읽는 책은 그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음이 아쉽고,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싶은 의문도 생긴다. 이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듣고 싶어진다. 또, 독서모임 지정책을 위주로 읽다 보니, 소설 한 놈만 파던 내가 이제는 잡식성이 되어서, 최근에는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은 것도 같다. 이렇게 재밌는 책이 많았다니, 이 좋은 책들을 진작에 알지 못했음이 아쉬워서,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사 쟁기니 같이 독서모임하는 소라님 말씀이 우리는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란다. 속도 없이 기분이 좋다. 그냥 ‘안녕책다방’에서 책을 고르는 것이, 그리고 읽는 것이, 또 그러다 ‘안녕책다방’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는 이 변화가 기분이 좋다. 이 변화만큼은 확실히 알겠고, 그 변화가 반갑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