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주도 여행 곱씹기
나는 제주도가 정말이지 너무 좋다. 재작년부터지만 일 년에 최소 두 번은 제주도 여행하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제주도에 미친자로 재작년에는 세 번, 올해는 두 번을 다녀왔고 내년 삼월 항공권을 예매해 놓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제주도에 나의 집터를 찜해 놨는데, 그 집터는 사방이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소도로만 건너면 바로 바닷가, 걸어서 십 분 거리에는 제주도 삼대 김밥인 ‘송송 김밥’이 있는, 맛과 멋이 있는 정말 사랑스러운 장소이다. 로또 당첨이 선행되어야만 하는 커다란 함정이 있기는 하지만, 나의 꿈 ‘제주도민으로 살어리 살어리랏다’는 꼭 이루어지리라.
예전에는 제주도의 귀함을 모르고 돈과 시간이 모이면 해외로 나가곤 했었다. 제주도는 웬만한 국외보다 비싼 국내 여행이란 인식이 강했고, 사실 제주도를 일상이 아닌 여행지라고 느끼는 순간 주머니가 빠르게 비어져 나가는 것은 사실이다, 나중에 다리에 힘 빠져 장시간 비행이 고민될 때 갈 여행지로 동남아와 함께 남겨둔 여행지이기도 했다.
아이의 첫 사춘기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춘기는 매해 갱신이 되더니, 재작년 고등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그동안의 사춘기적 행동은 귀엽게 생각될 정도로 ‘미친 사춘기’ 반열에 올랐다. ‘가출’과 ‘자퇴’를 무기처럼 내밀어댔고 학교는 숨 쉬듯이 빠져댔다. 이러다가는 유급까지 고려되는 상황이었고 미친 사춘기와 마주치기에는 집이 너무 좁고 숨이 막혔으므로 겸사겸사 떠나게 된 제주도 여행이었는데, 제주도에 도착과 동시에 아이는 ‘혼자 여행’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홀로 숙소에 남겨진 나는 극도의 불안상태에 빠져 처음 이틀은 울다 먹기를 반복했다. 울다가도 때가 되면 겸연쩍게도 배가 고파왔고 그래서 먹으면 아이는 좀 먹고 돌아다니나 걱정이 됐고 이 와중에도 잘 처먹고 있는 나란 엄마여서 아이가 이렇게 사춘기를 힘들게 앓고 있나 싶어서 또 울었다. 울다가 배고픔에 찾은 곳은 제주도 삼대 김밥 맛집인 ‘송송 김밥’이었다. 때마침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로, 울면서 찾아가기 적당한 위치였다. 울면서 한두 개 집어 먹다 보면, 제주도 삼대 김밥답게, 하지만 눈치는 없게,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 잠깐 기분이 좋아졌고 그때 눈앞바다가 보였다. 그러니 김밥은 더 맛있어졌고 더 맛있게 먹었단 사실에 자책하며 또 울면서 숙소로 향하고, 이걸 반복하는 사이에 아이는 생각보다 ‘혼자 여행’을 잘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뭘 하다 왔는지는 모르지만, 늦은 밤이든 이른 새벽이든 어쨌든 숙소로 건강하게 잘 돌아왔고 혹시 몰라 사둔 김밥을 다 먹고 잠이 드는 아이를 보며 그의 ‘혼자 여행’에도 서사가 있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그렇게 이틀을 겪다 보니 나의 불안도 조금씩 잦아들었고, 더 이상 울지 않았고, 그래서 더 맛있어진 ‘송송 김밥’을 사서 근처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완전 마음에 드는 책방 ‘도토관’도 발견했고 책방에서 책을 읽는 동안은 조금 더 행복해지면서, 그렇게 나도 난생처음의 ‘혼자 여행’을 했다.
그렇게 제주도 여행에서 우리 둘은 각자의 첫 ‘혼자 여행’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여행지에서 돌아오자마자 모든 것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 아이의 미친 사춘기도 역시 변함이 없었으므로, 몇 달 후에 처음과 같은 ‘겸사겸사’의 이유로 아이와 다시 제주도로 떠났다. 이번에는 비행기 시간도 다르고 숙소도 따로 얻어 온전한 ‘혼자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그럼에도 아이만 혼자 보내지 않고 동일 기간에 내가 제주도에 있어야 했던 이유는 아이의 숙소로 예약해 둔 호텔에서 미성년자 혼자서는 숙박을 할 수 없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 가서 체크인하고 룸키는 로비에 맡겨두고 내 숙소로 이동하는 정말 철저히 분리된 이 여행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결과적으로는 같이 있는 시간이 오히려 늘고 더 가까워지는 뜻밖의 결과물이 있었다. 지난번 여행에서는 숙소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연락 두절이었던 이 친구가 밥시간에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엄마 지금 ‘올레시장’에서 회 먹는 데 사다 줄까?” 질문과 함께 먹고 있는 음식사진을 보내니 인심 쓰듯 그러라고 회신이 왔고, 난 귀찮았지만 근데 신나서 아이의 숙소로 음식을 들고 가서 같이 먹었다. 비행기 시간도 숙소도 달랐던 완전 각자의 여행이었지만, 함께 밥 먹는 여행이 되었다. 밥때뿐인 것이 조금 치사했다가도 그렇게 만나서 같이 밥 먹고 나면 ‘혼자 여행’이 더 즐거워졌다. 이 빠진 동그라미처럼 여유롭게 주변과 나를 돌아보며 가족들과 함께 할 때면 절대 갈 수 없었던 완전 내 취향 듬뿍 담긴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가족들과 여행할 때는 내가 아닌 가족들이 좋아할 만하고 핫한 장소와 맛집을 검색해서 일정을 준비하고 추진했다. 여행지와 음식점을 즐길 새 없이 다음 일정을 살폈다. ‘어디를 가면, 무엇을 먹으면 가족들이 즐거워할까’만을 생각했던 여행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기회도 필요도 전혀 없었는데, 지금 나는 안다. 내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일단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타인의 눈치를 엄청 신경 쓰는 나이기에,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게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 예쁜 북카페와 성지를 찾아다니는 것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여행 내내 즐겼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장소들이 듬뿍 있는 제주도가 너무 좋고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동전에게도 양면이 있고, 신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 문을 열어주신다고 했던가. 아이의 미친 사춘기는 나에게 ‘혼자 여행’을 선물해 줬고, 덕분에 나는 내 여행 취향을 알 수 있었고 사랑스러움 한도 초과인 제주도에 빠지게 해 줬다.
이젠 로또 차례다.
“로또님아, 나에게 1등 당첨을 통해 나의 찜콩땅을 선물해 줄 거지?”